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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20. 2020

뒤뜰 냥이 신비, 삶의 변곡점에 서다

우리 집 뒤뜰에는 4마리의 냥이가 산다. 태희네 삼 남매(탄이, 강이, 신비), 그리고 예쁜이.


그중 신비는 구내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지난 5월 초에 나에게 발견되어(구내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발치 수술을 했다. 수술 후에 확실히 신비는 훨씬 편안해 보였다. 밥도 잘 먹었고 때깔도 훨씬 좋아졌다. 마음이 참으로 가벼웠다. 이제는 별일 없겠거니 생각했다. 한두 달이 지났을까. 자세히 지켜보니 구내염이 다시 재발한 모양새다. 깃털처럼 가벼워졌던 내 마음은 다시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발치 수술 후에도 구내염이 재발될 확률은 대략 15%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첫 번째 수술 후, 어느 날, 나에게 아주 살짝 곁을 내어 주었던 신비의 모습이다.

암담했다. 발치 수술까지 한 마당에, 뭔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집에 데리고 있는 냥이라면 뭐라도 해봤을 텐데, 손을 댈 수 있기는커녕, 2미터 이하로 거리를 좁힐 수조차 없는 신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폭풍 검색을 통해 구내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약물이며 영양제를 대량 구입했다. 역시 구내염에 걸린 예쁜이와 함께, 신비는 나의 특별관리 대상이 되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먹여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기울였다.


신비가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반면 비싼 영양제를 섞은 밥에 손조차 대지 않았을 때는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역시 구내염이 심한 예쁜이는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데, 신비는 한 번씩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내 마음은 갈갈이 찢어졌다. 며칠은 밥을 그나마 좀 먹고, 며칠은 못 먹고를 되풀이했다. 고통스러워 먹지는 못하면서도 배가 고파 밥그릇 옆을 지키는 신비를 보면 눈물이 앞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파 보이는 노랑이에게 통조림을 주었는데, 신비가 그걸 노리고 있는 중(고통스러워하면서도 먹기를 포기하지 않는 신비는 생명력이 강한 아이다)

예전부터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태어나 쭉 뒷마당에서 자유롭게 살아온 신비가 집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에게도 미안했다. 분명 당분간은 스트레스를 받을 터였다. 또 혼자서 4마리를 케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신비에게 어떤 것이 좋은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의 호의가 괜한 오지랖인 건 아닐까. 내 마음 편하자고 신비에게 못된 짓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 내가 지켜보면 밥도 먹지 않을 만큼 경계가 심한 신비를 도대체 다시 잡을 수나 있을까. 반복되는 고민과 번민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 마음속으로는 이미 신비를 잡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한다. 신비는 이젠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집 안에 누워있을 때가 많고, 밥을 못 먹는 날이 많다. 더 이상 신비의 고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나는 대학생인 조카가 놀러 오는 광복절 연휴를 디데이로 정했다. 방법은 단 하나, 지난번처럼 집 입구를 막는 수밖에 없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번의 개고생이 다시 떠올랐다. 눈치 백 단인 신비가 이번에도 과연 잡혀줄 것인가. 


병원에 가서 무사히 2차 수술을 마치고 집에 온 신비의 모습

생각해보면, 잡고자 했던 길냥이를 잡지 못한 적은 없다. 나는 그게 참 신기한데,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는 말이 딱 맞다. 신도 믿지 않는 나의 기도빨은 어쩌면 그리 매번 잘 먹히는지. 역시나 나는 이번에도 신비를 잡아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 오랜 시간 집에 머무르는 신비를, 아주 살금살금 소리 내지 않고 접근해(나 혼자 첩보영화 찍는 줄), 책으로 슬쩍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조카를 목 터지게 불렀다. 한 사람이 힘을 보태니 지난번처럼 케이지에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신비도 내 마음을 아는지, '쏙' 케이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지난번에 이빨 뿌리를 다 제거한다고 했는데, 하나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의사쌤은 거기서 염증이 다시 생겼다고 했다. 아마도 다시 재발할 확률은 이제 극히 낮을 거라 하시면서. 의사쌤의 말을 듣고 이번에야말로 집에서 제대로 케어해야겠다고(구내염은 딱히 명확한 치료법이 없고 케어가 힘들다), 마음먹었던 나의 각오가 살짝 흔들린다. 신비를 또다시 이대로 뒷마당으로 보낼 것인가. 집 안에 들이는 시도를 해 볼 것인가.


장고 끝에 결국, 결국 집안에 들여보기로 했다. 태희네 육 남매 중, 가장 마르고 몸이 약한 신비가, 앞으로 또 아프지 말란 보장이 없다. 구내염이 또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는 신비를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신비 집이 부엌 창문과 정면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마주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신비를 집에 들여 적응시켜 보기로 한다. 마침 우리 집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안방이 있다. 


싸복이 남매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겠죠

2년 육 개월이란 시간 동안, 내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신비는 끝까지 곁을 내주지 않던 아이다. 같은 남매 강이와 탄이, 그리고 예쁜이가 처음보다는 확연하게 나와 가까워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낯을 심하게 가리고 곁을 좀체 내주지 않았던 아이가 과연 답답한 집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다른 냥이들과도 잘 지내지 못했던 녀석이다. 싸복이남매, 하늘이와 어울릴 수나 있을까. 나는 단 일 이주의 시간이라도 버텨보기로 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도 신비가 영 적응하지 못하면, 그때는 다시 뒷마당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다.


하늘이도 호기심을 보입니다. 충분히 안전문을 넘을 수 있을 텐데 가끔 지켜보기만 해요.

신비는 드디어 어제 퇴원을 했고, 지금 안방에 있다. 경계 심한 신비답게 저녁 내내 케이지에서 어떠한 미동도 없다. 병원에서도 밥을 안 먹었다는데, 음식을 거부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이러다 일 이주일이 아니라 하루 이틀 만에 백기를 들고 신비를 내보내게 되는 게 아닐까.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 보니, 밥은 먹었다. 이불에 한차례 실수를 했지만, 똘똘하게도 두 번째는 화장실 모래를 사용했다. 너무 미동이 없으니 싸복이 남매는 그렇게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다. 하늘이는 꽤나 궁금해하는데, 잘 모르겠지만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렇게 구석에 짱 박혀서 미동 하나 없이 나를 째려본다. 근처에 가면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ㅠ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모든 것은 신비의 선택에 달려있다. 신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을까. 나는 신비가 내린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 무엇이 신비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일까. 신은 정답을 알고 계실까


신비는 여전히 구석에 짱 박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 고민이 깊어지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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