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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21. 2020

뒤뜰 냥 예삐, 꽃길만 걷길 바랄게

뒤뜰 냥이 신비는 하필 병원이 쉬는 휴일에 잡혀, 케이지에 이틀이나 갇혀 있었다. 갇혀 있는 신비를 보며 나는 예삐(예쁜이)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 예삐도 발치 수술을 해 줘야겠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자. 


뒤뜰 냥이 예삐가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건 2월 무렵이다. 계속 신경이 쓰이던 차에, 5월에 신비의 발치 수술을 하면서 깨달았다. 예삐도 구내염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늘 침을 흘리고 있고, 그루밍을 하지 못해 꼬질꼬질 개 꼬질이 었다. 예삐랑 조금씩 가까워지면서(가까워 진대 봤자 거리가 좀 좁혀지는 정도) 안쓰러움은 배가 되었다. 


신비의 구내염이 재발하면서부터는, 예삐와 신비는 나의 특별관리 대상이 되었다. 예삐도 신비만큼 구내염이 심해 보였지만, 다행히도 신비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단지, 밥을 많이 먹지 못하고, 밥 먹는 속도가 좀 느릴 뿐이었다. 하지만 츄르의 맛을 알고부터는, 밥도 곧잘 먹었다. 신비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진즉에 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나는 예삐를 지켜보며, 병원을 데려가야 말아야 하나 고민만 하던 중이었다.


침은 늘 한 바가지, 온몸이 꼬질꼬질, 오랜 시간 동안 구내염을 앓고 있었던 예삐.

신비도 두 번이나 잡아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예삐만 모른 척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뒤뜰 냥이들을 내 새끼처럼 보살피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병원비가 아까워 미루고 있는 거 아닌가. 그래, 내친김에 예삐도 병원을 데리고 가자, 그렇게 결심했다. 


나는 당장 예삐를 잡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구동했다. 날이 더워, 예삐는 신비처럼 집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가두는 방법은 소용이 없다. 덫을 놓는 방법뿐인데, 이미 2번이나 덫에 걸려 험한 꼴(?) 당해보았던 예삐가 순순히 들어갈 리가 없다. 게다가 강이 탄이와 늘 함께 있으니, 셋 중에 예삐만 골라 잡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TV에서 본 대형 그물을 구입해야 하나, 밥 먹느라 정신 팔렸을 때 담요로 덮쳐볼까(예삐는 곧잘 내 코앞에서도 밥을 먹는다) 별 생각을 다해 보았으나, 모두 실효성이 없어 보였다. 방법은 덫을 놓는 것뿐이다.


우리 집 대표 뒤뜰 냥이 강이탄이예삐 트리오. 셋이 늘 함께 있는 다정한 사이

그날 저녁, 일단 시도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츄르와 덫을 들고 강탄 예삐 트리오에게로 향했다. 예삐는 츄르에는 관심을 보이지만(다행히 강이탄이는 츄르를 맛본 적이 없어 관심이 없었다), 덫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 츄르를 코앞에 들이대며 유혹해 보았지만, 괜히 예삐 화만 돋운 채, 실패.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날을 기약한 채 철수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갑자기 예전에 하늘이가 가출했을 때, 고양이 탐정이 쓰던 방법이 떠올랐다. 


고양이 탐정은 미끼로 '꽁치통조림'을 썼다. 의외로 고양이가 후각이 약해, 코앞의 통조림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냄새가 아주 멀리 가는 꽁치통조림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럴 때를 대비해, 잘 먹지도 않는 꽁치통조림을 사두었다. 통조림을 들고 뒤뜰로 향했다. 냄새에 반응은 보이지만 덫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설상가상 강이탄이가 통조림에 관심을 보인다. 긴 대나무로 어떻게든 강이탄이를 멀리 쫓아보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수술을 잘 마치고 통조림을 먹는 예삐의 모습

그때 고양이 탐정에게 배운 또 한 가지 요령이 떠올랐다. 음식을 덫 안쪽에만 놓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떼어 덫 입구부터 세팅을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한 번 맛 본 냥이가 덫 안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 마녀의 집으로 들어간 헨젤과 그레텔처럼.


이 방법을 쓰니, 그렇게나 덫을 피했던 예삐가 한 방에 들어갔다. 와우~ 40만 원이나 주고 고양이 탐정을 고용했던 보람이 느껴졌다. 예삐를 잡고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을지 몰랐는데. 나는 이렇게 진짜 캣맘이 되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삐는 발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송곳니까지 모조리 발치했다. 그동안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싶다. 


퇴원하고 다음날 찍은 사진이다. 부끄럽게 숨어서(?) 아침밥 달라고 시위하는 중.

예삐는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덫에 걸려 병원을 다녀온 길냥이들은 많이 놀라 대개 당분간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예삐도 예전에 그랬다. 의사쌤은 하루정도 가두어놓고 항생제를 먹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숨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강이탄이가 있으니 왠지 그러지 않을 듯싶었다. 나의 예감이 맞았다.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나를 살짝 이전보다는 경계했지만, 바로 내가 주는 통조림을 받아먹었다. 예전에는 예삐가 그렇게 음식을 빨리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금방 뚝딱 한 그릇을 비우고, 바로 앞발을 그루밍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늘로 뛰어오를 듯 마음이 벅찼다. 


당분간 항생제를 열심히 먹이고, 꾸준히 잘 지켜볼 것이다. 다행히도 요즘 들어 강이 탄이와 함께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뒤뜰에만 박혀 있으니 감시하기도 좋다. 이제 침 흘리는 예삐를 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가볍다. 부디 신비처럼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의사쌤이 신비 때 실수한 게 미안했는지, 이번에는 정말 꼼꼼히 뽑았다고 굉장히 강조하셨다. 병원비도 많이 깎아주셨다).


어느 날 셋이 함께 앞마당까지 진출했다. 퇴근하다가 혼자서 빵 터졌다. 요넘들, 내가 없을 땐 앞마당까지 진출하는구나.

낯을 많이 가리고 겁이 많았던 예삐는 어린 나이에 삼 남매를 낳았고, 정을 떼기도 전에 삼 남매를 모두 잃었다. 이후 자신의 새끼들과 비슷한 또래인 태희네 남매와 어울려 우리 집 뒤뜰에 남았다. 아이를 모두 잃은 것도, TNR로 중성화를 해줘서 귀가 성치 않은 것도 안쓰럽다. 이제 고통에서 해방되었으니, 남은 인생길은 그저 꽃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우리 집 뒤뜰에서 강이탄이와 함께 행복하기를. 늘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의지하는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를.


사랑하는 예삐야. 우리 이제 꽃길만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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