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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Sep 04. 2020

우리 집을 지키는 뒤뜰 냥이 4남매

예삐가 발치 수술한지도 이주가 넘어간다.


이빨이 몽땅 빠져 합죽이(?)가 된 예삐가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씹을 수 없으니 그간 통조림을 잘 뭉개어 츄르를 섞어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한 번 시험 삼아 사료에 츄르를 섞어서 주었는데, 아무래도 통조림보다는 먹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당분간은 특별히 신경 써서 통조림을 진상할(?) 예정이다.


구내염이 심한 냥이들은 그루밍을 못하니 아무래도 개 꼬질 하다. 예삐도 그랬다. 그루밍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랬던 예삐가 그루밍을 한다. 언제나 입 주위는 침범벅이었는데, 침도 안 흘린다. 앞발은 아직도 좀 누리끼리(?)한데, 이건 오랫동안 그루밍을 못해 착색(?)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전체적으로 뽀얘졌다. 예삐가 그루밍을 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참 좋다. 이제 강이탄이와 우애 좋게 행복할 일만 남았다.


예삐는 음식 앞에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는데, 이 날은 배가 고팠는지 탄이와 함께 몹시 적극적으로 밥을 보채는 중.

일전에 강이탄이 남매가 절대 예삐 밥을 탐하지 않는다고 칭찬을 한 적이 있다. 그 칭찬을 취소해야겠다. 이번에 새롭게 알았다. 강이가 그동안 부지런히 내 눈을 피해 예삐 밥을 빼앗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예삐가 착해서, 강이가 머리를 들이대니, 밥을 양보한다.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그간 사실 (예삐가 밥 먹는 속도가 느려) 끝까지 밥 먹는 걸 지켜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강이가 그 틈을 노렸던 것이다.


매일매일 다정한 삼종 한 세트 '강탄 예삐 트리오' 이제 신비도 좀 껴다오^^

이제 나는 예삐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강이를 감시한다. 재미있는 것은 가만히 서서 '눈만 부라려도' 강이가 도망간다는 점이다. 소심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 모양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사실 아침에는 똑같이 통조림을 줘도, 저녁은 예삐랑 신비만 준다(주머니 사정을 생각 안 할 순 없다). 식탐 강한 강이 입장에서는 참기 힘들 만도 할 것이다. 예삐가 안 아프니 나도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 강이가 몇 입 빼앗아 먹어도 모른 척하기도 한다. 


신비 주려고 샀던 '가리가리 소파'를 엄청 좋아한다. 추석 보너스 타면 다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좀 큰 사이즈 제품을 사줄 예정.

그리고 신비에게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그간 신비는 같은 남매인 '강이탄이'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지난 주말 우연히 보았다. 신비가 강탄 예삐 트리오가 요즘 주로 모여있는 보일러 실 앞에 같이 있는 것을. 최근에 '최애'했던 집에 있다 잡혀 병원에 다녀온 후로는 집에 통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는데, 계속해서 보일러실 앞에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며칠 전부터는 밥도 보일러 실 앞에서 다른 냥이들과 함께 먹는다.


보일러실에서 통조림을 뜯으면, 강탄 예삐는 득달같이 달려와도 그간 신비는 멀리서 보채기만 할 뿐 절대로 보일러실 앞까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내가 만만해졌는지 곧잘 보일러실 앞까지 오길래, 내친김에 밥을 놓아주니 잘 먹는다. 며칠 전부터는 그렇게 넷이 같이 모여 밥을 먹는데, 어찌나 마음이 흐뭇한 지. 신비와 나 사이가 한 뼘쯤은 더 가까워진 듯이 느껴졌다. 아울러 신비가 강탄 예삐 트리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많이 놓인다. 뒤뜰 냥이 네 마리가 함께 잘 지내는 모습이 참 든든하다. 


주말에 우연히 발견한 모습. 신비가 탄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나를 보고 깸. 넷의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바쁜 아침시간, 언젠가부터 뒤뜰 냥이들 아침 수발 시간이 길어졌다. 가끔 뭉치의 남은 유일한 새끼 심이도 찾아오고(어떨 땐 매일, 어떨 땐 오랜만에 쓱~), 이 동네 최고령 길냥이 반점이도 나타난다. 둘 다 내가 주는 통조림을 잘 받아먹는 냥이들이다(다른 애들은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 나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므로). 강이, 탄이, 신비, 예삐, 거기다 심이에 반점이 까지 합세하는 날이면, 통조림 파티가 벌어지는 날이다. 여기저기서 밥 빨리 달라고 야옹야옹거리는데 아주 정신머리가 하나 없다. 


그제 아침 다 같이 식사하는 풍경. 예삐는 배가 불렀는지 통조림 앞에 두고 고사 지내는 중

강이가 예삐밥을 뺏어먹을까 봐 지키고 있느라 모기에 물려도, 통조림에 영양제까지 대느라 허리가 휘어도 그저 참 좋다. 아프지 않은 신비와 예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 집 뒤뜰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셈이다. 이 평화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자고로 자식이 많으면 사건사고가 많은 법이다), 당분간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 평화를 즐기기로 했다.


오늘 아침, 심이(뭉치 새끼)가 '어서 통조림을 내놓으라며' 보채고 있는 중입니다^^

뒤뜰 냥이 예삐, 신비, 강이, 탄이를 앞으로는 '뒤뜰 냥이 4남매'로 임명하기로 했다. 1호 예삐, 2호 신비, 3호 강이, 4호 탄이, 이렇게. 독수리 5형제가 똘똘 뭉쳐 지구를 지켰듯이, 뒤뜰 냥이 4남매도 우리 집 뒤뜰을 오래오래 평화롭게 지켜줄 거라고 믿어본다. 뭐, 딱히 뒤뜰에 지킬만한 게 없긴 하지만. 


'뒤뜰 냥이 4남매'야~ 어멍은 너희들만 믿는다. 우리 집 뒤뜰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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