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은 뭉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이다. 벌써 두 해 째가 되어 간다.
뒤뜰에서 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한 지 3~4년은 된 듯싶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뭉치가 떠난 지 벌써 두 해 째니 그보다는 더 됐을 것이다. 나는 왜 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을까.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밥을 주다 뒤뜰에 고양이가 새끼라도 낳으면 어쩌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실제 우려는 고스란히 현실이 되긴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늘 지금보다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이 많아졌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 자신도 어려운데, 남과 기꺼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의 미담을 접하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저렇게까지는 죽었다 깨나도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손쉬운 것이 뒤뜰에 고양이 밥을 주는 일이었다. 할 일이 많은 데다 태생이 집순이어서 어디 가서 봉사활동 하기도 애매했고, 큰돈을 기부할 만큼 통이 크지도 못했다. 마더 테레사는 먼 곳에서 인도까지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멀리까지 올 필요 없이, 가까운 곳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세요.'라고. 나는 늘 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언제가 여유가 생기면 가장 가까운 곳에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내 집에서, 돈을 조금 들여 고양이 밥을 주는 것쯤이야 싶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큰' 마당을, 고양이들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뭉치'를 만나고, 엮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냥 고양이 사료를 내어주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뭉치를 만나고, 정이 들고, 한 식구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서서히 변해갔다. 마치 누군가, 무언가가 내게서 '고양이에게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 준 것처럼.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하며 '동물복지'에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길고양이'들의 삶에도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와 마음의 이동도 '고양이 밥 주는 일'을 시작하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이제는 내 집 밥을 먹는 동네 고양이들이 너무 많아졌고, 뒤뜰 냥이(뒤뜰에 사는 냥이)는 총 네 마리다. 알콩이와 알몽이, 심이가 요즘 낮에도 우리 집 뒤뜰에 죽치고 있는 것이, 어째 앞으로는 뒤뜰 냥이들이 더 늘어날 것만 같은 슬프고도 기쁜(?) 예감이다.
지금까지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고, (다행히 숫자 개념이 없어서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지 기억을 잘 못한다.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도 많이 들 것이다. 거기에 마음고생은 덤이다. 아프고 병든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 쉽지 않고, 더 힘든 건 그런 아이들을 잡아서 병원에 데려가고 치료해 주는 일이다. '손 안 타는 냥이 병원 데려가기'가 세상에서 제일로 고되다. 내가 생각해도 참 고생이 많다.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강아지 산책을 시작으로 출근하는 8시 반까지 종종걸음을 친다(출근할 때 이미 너무 피곤하다).
작년부터는 또래보다 일찍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부쩍 몸이 힘들어졌다(몇 년 전에 수술을 받았고, 체력이 그리 좋은 편은 못 된다). 그런 중에 올봄에 수년 전 치매가 와, 상태가 심각하신 아버지가 뇌경색까지 걸리게 되셨다. 갱년기 우울감에, 스러져 가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 나도 아버지처럼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겹쳐 급기야는 마음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 쉽게 잠들지 못했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직장에서 전화를 받는 것도 어려워졌고(벨이 울리면 심장이 요동쳤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 널을 뛰었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흘렀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내일은 신경정신과에 가서 그냥 약을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한 날이 부지기수다.
평소에 멀쩡하게 해 내던 것들을 하기 힘들어진 상황이 됐지만, 나는 결코 일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 힘든 순간에 난 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버텨야 된다. 버티면 다 지나간다' 이렇게. 새벽 4시의 강아지와의 산책, 아침밥 차려먹기, 점심 도시락 싸기, 뒤뜰 냥이들 챙기기, 퇴근 후에 책 읽기, 매일 하는 몇 가지의 근육 운동 등등. 소소해 보이지만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그리고 뒤뜰 냥이를 돌보는 일이다.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싸복이 남매, 하늘이, 뒤뜰 냥이와 동네 길냥이들이다. 저 아이들이 내 어깨에 올라타 있으니, 어깨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다시 '삶과 전투를 벌일' 태세를 갖춘다. 올봄부터 여름까지는 특히 신비와 예삐가 아파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몸고생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예삐와 신비 덕에 내가 '심리적인 어려움'을 잘 극복하지 않았는가 싶다.
몇 개월 전부터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데, 나는 다 예삐와 신비 덕이라고 생각한다. 예삐와 신비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준 셈이라고(일종의 충격요법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내가 길냥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상생' 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저 아이들을 살게 하고, 저 아이들은 나를 또 살게 한다. 어느새 나는 다시 삶을 잘 살아낼 '전투력'을 갖추었다.
살다 보면,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성장의 계기가 된다. 뭉치를 만난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는 '고양이에게로 향하는' 새로운 문이 열린 때가 아닐까. 고양이에 관심도 없던 내가 심지어(?) 고양이와 함께 산다. 길을 가다 보면 고양이만 보인다. 우리 집 뒤뜰에만 고양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수많은 고양이들이 있다. 새롭게 만난 세계는, 나를 한층 성장하게 했고,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지금도 많은 수업료를 치른다. 그런데 이 인생공부가 참 재밌다. 새로 만난 세상이 참 좋다.
뭉치가 나에게 선물해 준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힘을 내 걸어간다. 어떤 날은 고꾸라지고, 어떤 날은 지칠 것이다. 그때마다 뭉치를 떠올릴 것이다. 무지개다리 건너 뭉치를 만나는 날이 오면, 뭉치에게 칭찬을 듣고 싶다. '어멍 수고했다고, 참 잘했다고' 다시 만나는 날 뭉치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뭉치가 종종 보고 싶다. 만나면 이야기하고 싶다.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고.
※ 본 글의 제목은 작가 '무루'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챕터 제목, '고양이라는 이름의 문'(137쪽)에서 힌트를 얻어 작성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