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이는 알고 지낸 지(?) 3년쯤 된 우리 동네 길냥이다.
길냥이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던 초보 캣 맘 시절, 보일러실에 감금(?)해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던 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퍽 좋았다. 어린 알콩이가 임신하기 전에 꼭 수술을 시켜주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 하나로, 개(?) 고생 끝에 알콩이를 잡을 수 있었다. 알콩이는 엄마 알록이와 늘 함께 다녔는데, 어느 순간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그 시절 아침에 밥 주러 나가면 매일 알콩이가 대숲에 숨어 울고 있었는데, 엄마 잃고 슬퍼서 저리 서럽게 우나 싶어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만 보면 36계 줄행랑을 치던 낯가림 심한 소심쟁이 알콩이는, 성인이 된 후 몽이(뭉치 새끼)랑 단짝이 되면서 많이 달라졌다. 몽이가 나를 엄청 따랐기 때문일까. 내 앞에서 편하게 낮잠도 자고,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몽이와 함께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길냥이들이 짝을 이루어 다니는 일이 흔치 않은 일이다. 알몽(알콩이+몽이) 커플을 보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정말 많이 아꼈고, 또 사랑했다.
몽이가 고양이 별로 돌아간 후(사실 그랬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알콩이는 완전히 다른 고양이가 되었다. 몽이가 사라진 후, 몇 개월이 흘쩍 지난 후 만난 알콩이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를 경계했다(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나는 알콩이도 죽은 줄만 알았다). 나는 짐작했다. 어쩌면 몽이는 알콩이가 보는 앞에서 사람들에게 잡혀간 것이 아닐까(몽이가 사라지고 한참 후, 몽이가 사라졌을 때쯤 이장댁에서 신고해서 시청에서 고양이들을 잡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내 짐작이 그랬다. 그렇게 알콩이는 어쩌다 한 번씩만(그것도 집 밖에서만) 근근이 볼 수가 있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후, 어라, 알콩이가 새로운 고양이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눈에 자주 띈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는데(나를 피해 다니므로), 뉴 페이스 냥이와 늘 함께다. 신기했다. 길냥이가 짝을 이루어 다니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고양이가 사회성이 강한 동물도 아니고, 또 혼자 다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다른 냥이와 짝을 이루어 다니는 고양이라니. 나는 재빨리(다소 성의 없게), 뉴페이스 냥이에게 '알몽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알콩이와 함께 다닌다는 의미에서, '두리뭉실, 몽실몽실'하게 생겼다는 의미에서.
유심히 지켜보니 알몽이는 수컷이다(배가 불룩한 것이 임신한 암컷일까 봐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다). 알몽이 역시 남자였다(불룩한 배는 튼실한 뱃살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알콩이는 남자를 후리는 재주가 있는 냥이인가. 하긴 알콩이가 미모가 뛰어나긴 하다. 볼에 연지곤지를 찍고 있는, 수줍은 새색시 얼굴 같달까. 자세히 보면 눈매가 참 예쁘고, 몸놀림도 우아하고 고상하다. 어쩌면 알콩이는 '우리 동네 길냥이 생태계'에 '팜므파탈' 아닐까. 싱글인 내 입장에서 그저 부럽고 또 부럽다.
몽이가 사라진 후, 알콩이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었는데, 퍽 잘된 일이지 싶다. 처음엔 자주 볼 수 없었던(보아도 집 밖에서만 봤다) '알콩+알몽' 커플을, 최근 들어 심심찮게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며칠 전부터는 아예 뒤뜰에 살림을 차렸다. 뒤뜰 냥이 '강탄 예삐' 트리오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둔 침실이 있는데, 날이 더워 얘들이 쓰지 않는 틈을 노려 점령해 버린 것이다. 얼마 전에 아주 공을 들여(겨울에 절대 춥지 않도록) 새롭게 정비했는데, 정작 '강탄 예삐'는 써보지도 못하고 애먼 냥이들에게 뺏긴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알콩+알몽' 커플을 쫓아낼 수도 없으니, 또다시 보일러실 앞에 '강탄 예삐 트리오'를 위한 '겨울맞이' 침실을 꾸며줘야 할 것 같다. 아주 내가 냥이들때문에 허리 한 번 제대로 필 날이 없다. 뭐, 어쩌겠나. 곧 쌀쌀해질 텐데 게으름 부릴 틈이 없다. 신경 써서 따뜻하게 꾸며볼 계획이다.
알콩이는 뭉치에 이어, 사비를 들여 중성화 수술을 해주었던 첫 번째 고양이다. 엄마 알록이는 구조해 지인에게 입양 보냈다가, 병에 걸려 우리 집 앞마당에 묻혔으니, 나와는 매우 특별한 인연이다. 아기 때부터 봤던 알콩이는 마음속 아픈 손가락이었다. 경계가 너무 심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더 그랬다. 알콩이는 성인이 되면서 몸이 꽤 커졌고, 아기 때와는 다른 기품이 생겼다. 더 이상 엄마 잃고 찔찔대던 알콩이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굉장히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 이제는 든든한 짝꿍 알몽이 까지 만났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집 뒤뜰에 눌러살았으면 좋겠다.
부디 알콩이가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팜므파탈'의 매력을 풍기며, 우리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알콩아~ 나에게도 한 수 가르쳐다오. 도대체 '남자'는 어떻게 꼬시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