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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29. 2020

노랑이를 추억합니다

노랑이는 '노란색 치즈 냥이'라서 노랑이가 되었다. 정말 성의 없게 지은 이름이다.


노랑이는 처음부터, '36계 줄행랑' 길냥이는 아니어서 낯을 쉽게 익혔다. 존재감을 뿜기 시작한 것은 '쌈닭 기질' 때문이다. 뒷마당에서 길냥이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노랑이었다. 한 밤중에 곡소리를 내면서 싸워, 자다가 뛰쳐나가 쫓은 적도 있었다. 나가서 한 소리 하면, 노랑이는 멀리 도망가진 않고, 풀이 죽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성가시긴 했지만, 매번 억울한 표정을 짓는 노랑이가 결코 밉지 않았다.


둥근 얼굴, 토실토실한 몸땡이, 귀염철철 넘쳐흘렀던 노랑이

때론 매일 아침 만나기도 했고, 때론 오랜동안 보이지 않기도 했다. 1~2년을 지켜보았을까. 나는 궁시렁 거리면서도 노랑이를 은근히 예뻐했다. 미운 정이 무섭다고 정도 많이 들었다. 찐빵같이 토실토실한 데다, 다소 억울해 보이는 얼굴을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나타난 노랑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많이 말라있었다. 볼 살이 터지도록 통통했던 예전 노랑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게다가 활동성도 떨어져 보였다. 직감했다. '어딘가 아프구나' 안쓰러운 마음에 통조림을 주었다. 예전에는 경계가 심해 통조림을 챙겨줄 수 없었는데, 통조림을 앞에 놓는데 별다르게 경계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조림에 입을 대지 않았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구내염이거나, 아니면 속에 탈이 났거나. 오랜 시간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그렇게 말랐던 것이다.


혼내도 도망은 안 가고 억울한 표정만 지었던 노랑이.

안쓰러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매일 보는 것도 아니고, 손도 타지 않는 길냥이를 잡을 방법이 없다. 아니, 사실 나는 뒤뜰 냥이들 치료비 대는 것만도 힘겹다. 마음먹고 잡자고 들면, 못 잡을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 동네 길냥이들 아픈 것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외면했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시 노랑이를 만났을 땐, 배에 복수가 찬 상태였다. 


복수가 찼다는 건, 사람이건 동물이건 극히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다. 구내염이 아니라, 장기 쪽에 문제가 생겨 밥을 먹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지금 병원에 데려가더라도 살 확률은 높지 않다. 일전에 복수가 찬 알록이를 병원에 데려갔을 때, 수술하려고 배를 열어보니, 장기가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노랑이의 사진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노랑이의 모습이 오래오래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노랑이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마도 고양이 별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딘가 구석진 곳에서 혼자서 쓸쓸히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노랑이에게 미안함과 애틋함을 담아 이 글을 쓴다. 아픈 아이를 그저 손 놓고 지켜본 것이 못내 미안하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삶을 마감한 노랑이의 인생이 우리들 짐작처럼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길 생활의 자유를 맘껏 누렸을 거라고. 도시 길냥이와는 다르게 시골 길냥이로써의 삶은 충만하고 행복했을 거라고.


바싹 마른 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노랑이의 모습. 오랜 시간 아팠을 노랑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지금쯤 노랑이는 고양이 별에서 행복할까. 우리가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다시 만나는 날, 밥 주던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만나면, 나는 풀이 죽은 억울한 표정의 노랑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노랑이를 마음 한편에 담아두려 한다. 노랑이가 한때 잠깐 지구별에서 머물다 갔음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였음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노랑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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