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깃털 Nov 06. 2020

바야흐로 뒤뜰 냥이 전성시대

우리 집 뒤뜰엔 터줏대감 뒤뜰 냥이 4남매(탄이, 강이, 신비, 예삐)가 산다.


얼마 전엔 새롭게 알콩이+알몽이 커플이 뒤뜰에 터를 잡았다. 알콩, 알몽 커플도 이젠 우리 동네 길냥이에서, 우리 집 뒤뜰 냥이로 승격(?)한 셈이다. 뒤뜰엔 자이언트 고양이 그레이에게 쫓겨 추운 날씨에 노숙하게 생긴 뒤뜰 냥이 4남매를 위해 만들어준 공간이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그레이가 이사 가니 자연스럽게 다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새를 노려 알콩+알몽이가 떡하니 그 공간을 차지했다. 추워지면 다시 이용하려니 하고, 올여름에 작심하고 럭셔리하고 따뜻하게 꾸며 놓았더니 알콩+알몽이가 쓱 치고 들어온 셈이다.


강탄 예삐 트리오는 요즘 이 구역에서 주로 논다. 여전히 셋이 잘 어울리고, 사이가 좋다^^

강탄 예삐가 쓰지 못하는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얘네들 공간은 따로 만드느라고 아주 허리 휘게 개고생 했다), 우리 집 뒤뜰 '냥이 천국'은 길냥이에게 무료 개방된 곳이니 그러려니 했다. 두 식구나 늘어난 것이 다소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릴 때부터 봐온 알콩이가 드디어 우리 집에 터를 잡은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뒤뜰 오른쪽엔 강탄 예삐 트리오가, 중앙에는 신비가, 왼쪽에는 알콩+알콩 커플이 자리 잡은 형국이었다. 우리 집 뒤뜰은 이름뿐 아니라, 진짜 '냥이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알콩이 알몽이 커플은 가끔 밥도 같이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나가보니 사료가 놓인 천막 안에 쪼꼬만 한 새끼 냥이가 있다. 나를 보더니 놀라 사료그릇에 숨었다, 물그릇에 숨었다 한다. 3개월도 안된 아깽이 같은데 이게 뭔 일일까. 머리가 띵한 것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한 마리가 더 있다. 아무리 봐도 어미냥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최근 어미냥으로 추측될만한 냥이를 본 적도 없다.


처음 발견한 것이 요 아깽이입니다. 첫눈에도 우리 하늘이를 똑 닮아 어찌나 화들짝 놀랐던지요.

이건 도대체 맥락이 없이 전개되는 상황이다. 아가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없지 않은가. 이 구역 냥이를 내가 죄다 꾀고 있는데 최근에 임신한 냥이를 본 적이 없다. 어미 잃은 아기냥들이 어찌어찌해서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온 걸까. 2개월밖에 안 되는 아기냥들이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럼 우리 집 주변에서 태어났나. 심장이 벌렁벌렁,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을 해본다.


날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친 아가냥들은 이상하게 그다음 날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근심 한 가득이었던 나는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깽이들이 존재를 잊었다. 그러다, 때는 주말, 새벽에 산책을 나가는데, 싸복이 남매가 내 자동차 앞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뭔가 있나 싶었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자동차 바로 옆 대문에 아가냥이 있다. 당연히 싸복이 남매는 개 난리가 났다. 아깽이에게 함부로 손댈 수도 없고(함부로 손 대면 어미 냥이 돌보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놀란 아가냥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아주 진퇴양난이었다. 어찌어찌 사태를 수습하고 다시 가보니, 아가냥이 구석에 짱 박혀 놀라서 도망은 못 가고, 나를 보고 아주 격렬하게 하악질을 한다.


아가냥이 왜 대문 앞에 있었는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알게 됐다. 며칠 전 보았던, 치즈 새끼 냥이 내 차 옆에 죽어 있었던 것. 그래서 싸복이 남매가 차 옆을 계속 맴돌았구나. 아가냥은 죽은 남매 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뒤뜰에 아이를 으면서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내차에 치인 걸까(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다), 들어오는 차에 놀라 죽은 걸까.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이때 많이 놀라, 이젠 주차할 때 바닥을 아주 샅샅이 살핀다).


드디어 어미냥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금이가 워낙 작아 상대적으로 새끼 냥이 커 보이지만, 2개월밖에 안되어 보인다.

치즈 새끼냥은 뒤뜰 '냥이 천국'에 묻어주었다. 며칠이 또 흘렀고, 나는 다른 날 아침에 또 다른 치즈 아깽이를 발견했다. 새끼는 총 세 마리였던 셈이다(치즈냥 두 마리, 깜장반+흰색반 한 마리). 물론 추정이다. 어딘가에 새끼가 더 있을 수도 있다. 나의 궁금증은 수일 내에 쉽게 풀렸다. 조금 이른 퇴근을 한 어느 날, 뒤뜰에서 어미냥과 치즈 냥이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주니는 어디 가고 소금이와 미니만 함께 있는 중. 사실 얘네들 얼굴 보기 진짜 힘들다(우리 집에 살고 있는 건 맞을까?)

그렇다. 태희가 육 남매를, 예쁜이가 삼 남매를 출산한 데 이어, 2년 만에 우리 집에서 또 다른 새끼냥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로소 우리 집 뒤뜰은 동네 길냥이들 최적의 출산 장소임이 분명해졌다. 아, 눈덩이처럼 커진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어미냥은 우리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페이스 냥이 '소금이'로 밝혀졌다. 소금이를 처음 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연히 발견하곤, 오랜만에 '뉴페이스 냥이'가 나타났네 하고 생각했다.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같진 않고, 어디 멀리서 밥을 먹으러 오는 것 같았다. 소금이라고 이름 붙인 건, 언제나 '소심하게, 살금살금' 다녔기 때문이다. 겁이 많고 경계가 심해 자주 보진 못했지만, 암컷이 아닐까 싶긴 했다.


처음 봤을 때 아직 7~8개월밖에 안된 어린 냥이라고 추측했다. 저러다 임신할 텐데 하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들어 좀 뜸해서 보질 못했는데, 그때가 임신한 기간이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에 한 두 차례 본 것은 출산한 후일 테고. 자주 보는 냥이가 아니어서 소금이가 임신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소금이와 아가냥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후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알콩+알몽이가 지내는 공간을 새롭게 꾸밀 때, 혹시나 싶어 아래층에 고양이집 두 채를 넣어 두었는데, 거기에 새끼를 낳은 모양이다. 


제가 보기엔 소금이도 아직 아기예요 ㅠㅠ 저 작은 몸으로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니요 ㅠㅠ

아가냥들을 잡아 어디 입양을 보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입양 보낼 곳도 딱히 없긴 하지만, 엄마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 그건 또 순리가 아닐 듯싶다. 게다가 아직 아기들이 너무 어리다. 나를 보면 혼비백산해 도망치기 바쁜데, 막상 잡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되는대로 지켜보기로 했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 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야금야금 살금살금 다가가니 미니가 은근슬쩍 엄마 뒤에 숨는다. 아 예쁜 것.

뒤뜰 냥이들이 늘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이 내게 소중한 생명을 맡기신 것으로 생각한다.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주셨으니, 있는 힘껏 이 인연을 잘 가꿔갈 예정이다. 한 마리는 신기하게도 우리 하늘이를 똑 닮았다. 그래서 이름을 '미니'로 지었다. '(하늘이) 미니미'라는 뜻이다. 하나는 '주니'로 지었다. 치즈 냥이니 남아일 확률이 높고, 미니 남매(?)이니 돌림자를 써서. 


죽은 아이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조차 없이 고양이 별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인 듯싶어서. 돌림자를 써서 '후니'가 되었다. 후니가 부디 다음 생엔, 천수를 누리길 바란다.


뒤뜰 왼쪽에 강, 탄, 예삐 트리오가, 중앙엔 신비가, 왼쪽 위층엔 알콩+알몽 커플이, 아래층에 소금이와 미니, 주니 남매가 산다. 와우~ 아주 뒤뜰이 북적북적하다. 새로운 뒤뜰 냥이 전성시대의 개막이다.


나는 이제 뒤뜰 냥이 아홉 식구를 거느린 캣맘이 되었다. 어깨가 무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랑이를 추억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