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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Nov 13. 2020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겨울이다. 길냥이들에게는 잔인한 계절이다.


냥이들과 엮인 지 수해째, 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이 바쁘다. 뒤뜰 냥이들이 추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뒤뜰 냥이 식구가 부쩍 늘었다. 나는 10월부터 부지런히 월동준비에 들어갔다. 


첫 번째 프로젝트, 새롭게 뒤뜰에 합류한 알콩+알몽 커플에 밀려 작년 겨울 애용하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강탄 예삐 트리오를 위한 겨울 집을 준비해야 했다. 


여기는 보일러실 맞은편. 강탄 예삐 트리오가 늘 머무르는 구역입니다.

강탄 예삐는 뒤뜰 터줏대감이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첫해 겨울, 태희네 6남매에 예쁜이까지 총 일곱 마리가 스티로폼 집 하나로 겨울을 났다. 그것은 매직쇼였다. 저렇게 쪼그마한 집에 자그마치 일곱 마리가 들어간다고, 하며 볼 때마다 나는 매번 놀라곤 했다. 바깥쪽에서 자는 냥이들은 집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이것은 코믹쇼 이기도 했다. 아직 어린 여섯 마리와 예삐가 함께 겨울을 나던 모습이 지금 떠올려도 흐뭇하다.


이년 전 겨울 사진. 예삐, 신비, 미니몽. 작은집에 일곱 마리가 복닥복닥 깨를 볶던 2년 전 겨울이 새삼 떠오릅니다.

두 해째 겨울엔 7마리가 각자도생을 택했다. 고양이 별로 돌아간 녀석도 있고, 우리 집을 떠난 녀석들도 있다. 신비만 그 집에 남았고, 태희네 육 남매 중 강이와 탄이는 예삐와 함께 보일러실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강탄 예삐 트리오가 내심 바라던 대로 우리 집에서 가장 따뜻한 구역인 보일러실에 자리를 잡은 것이 흐뭇했다. 그렇게 두 해째 겨울을 무사히 잘 나는가 싶었는데 난데없이 동네 길냥이 그레이에게 보일러실을 뺏긴 것이다. 3대 1인데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쫓겨 나는 모습을 봐야 했다. 나는 앞으로는 쫓겨가 새롭게 살림 차린 곳에서 지내려니 하고 올여름에 작심하고 럭셔리하고 따뜻하게 리모델링을 했다. 찬 바람에 끄떡없도록 요모조모 꼼꼼히 손을 보았다. 


강탄 예삐 트리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알콩+알몽 커플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니 했던 강탄 예삐 트리오는 올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머물렀던 보일러실 앞을 떠날 기미가 없다. 그런데다 그 사이를 노려 리모델링 한 곳에 알콩이와 알콩이 커플이 자리를 잡으니, 이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이다. 별 수 없이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줘야 했다.


짜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럭셔리 난방 냥이 하우스.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대형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또 소형텐트를, 소형텐트 안에도 고양이 집을 넣었다. 이중삼중으로 보온을 했으니 참으로 따뜻할 터였다. 그뿐 아니다. 셋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가리가리 소파도 새로 사고, 바닥에 스티로폼과 덮개를 이중삼중으로 깔아 냉기를 완벽히 차단했다. 만들어 놓고 혼자서 얼마나 우쭐했는지. 


처음엔 며칠 텐트 안에서 자는 가 싶더니, 아뿔싸, 날씨가 추워지니 강탄 예삐 트리오가 이용을 안 한다. 처음엔 설마설마했는데, 아침에 나가보면, 셋이서 함께 예전에 간혹 쓰곤 했던 스티로폼 집에서 나온다. 아, 저 텐트 집을 짓느라고 돈이 한두 푼 들어간 것이 아닌데, 낮에는 텐트 주변에서 지내면서도 정작 밤에는 이용하지 않는다. 실망이 컸고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타이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강탄 예삐가 자는 숙소. 내가 새로 만든 럭셔리 하우스에 비하면 초가집과 다름없다ㅠㅠ 

이야기는 점점 이상하게 돌아갔다. 날씨가 추워지니, 강탄 예삐 트리오의 옛 보금자리에서 내내 노숙하던 알콩+알몽 커플이 사라진 것이다. 거기에도 구석구석 집이 숨겨져 있는데, 이상하게도 절대 들어가지 않고 계속 노숙을 하더니, 날이 더 추워지니 사라진 것이다. 원래 지내던 곳이 있었으니 그곳으로 돌아가려니 했다. 서운한 일이었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었다.


예삐의 최애 아이템 가리가리 대형 원형 소파는 알몽이 차지가 되었다 ㅠㅠ

며칠 뒤 알게 되었다. 알콩이는 돌아갔지만(낮에는 밥 먹으러 온다), 알몽이는 강탄 예삐 트리오가 자지 않는 텐트 집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그뿐 아니다. 한 술 더 떠 강탄 예삐 트리오 삼총사 들어가라고 사준 대형 가리가리 원형 소파도 줄곧 알몽이가 이용한다. 우리 예삐가 엄청 좋아하던 아이템인데, 알몽이가 하루 종일 차지하고 있다.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잠자리 뺏는 것도 모자라, 가리가리 소파까지. 


알몽이 떡실신 중. 강탄 예삐 트리오 함께 쓰라고 초대형으로 사준 건데 본의 아니게 빅 체형 알몽이 맞춤 소파가 되었으니 ㅠㅠ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알몽이가 다른 냥이들에게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텐트 집도 빼앗았다기보다, 아무도 쓰지 않으니, 슬쩍 들어가 자기 시작한 듯싶다. 엄청 따뜻한 데다, 다른 집은 워낙 거구라 좁게 느껴졌을 텐데, 넓은 데다 쾌적하기까지 했을 테니까.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온 알몽이 한 마리를 위해 거금을 쏟아부은 꼴이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알콩+알몽 커플이 떠난 자리는, 소금이네 가족의 휴식처가 되었답니다.^^ 이거 돌려쓰기 맞는 거죠 ㅎㅎ

두 번째 프로젝트는, 신비의 집을 손보는 일이었다. 


일곱 마리가 함께 자던 집에 신비만 남았다. 강탄 예삐가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면서 자는 데 비해서, 신비는 계속해서 한 집만 고집했다. 경계가 심한데도 여러 번 잡아서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던 것도, 계속에서 저 집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틈틈이 신비 집을 보수하고는 있었지만, 올 겨울에는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게다가 신비는 허피스도 계속 재발하고, 구내염도 완치된 것이 아니다. 내게 특별히 더 아픈 손가락인 만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집에 있는 다리미판을 이용해 테라스 확장 공사를 하고, 비닐로 방풍 처리를 새롭게 한 신비의 전용 하우스 모습

밥 먹을 때 자리가 좁은 듯싶어 테라스도 확장하고 바람막이 비닐 공사도 했다. 이 정도면 겨울바람을 탄탄하게 막아주지 싶었는데, 신비가 어느 날부터 집에 통 들어가질 않는다. 쭉 지켜보니, 밥을 테라스에 올려주니 밥도 거기서 먹고, 낮에는 종종 테라스에서 쉬기도 하지만,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대숲 안에 고양이 집이 여러 채 있는데, 거기에서 자는 모양이다. 아, 공들여 리모델링을 했는데, 정말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대숲 속에 있는 집은, 대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 집보다 따뜻하지 않을까 짐작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아침 식사하다 눈 딱 마주친 신비. 어디서 자든지 상관없으니 이젠 제발 더 이상 아프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신비는 럭셔리 난방 하우스에 들어갈 생각이 없고, 강탄 예삐는 펜트하우스급 텐트 집을 거부했다. 어릴 때부터 봐서 정이 많이 든 알콩이는 겨울이 되자 다시 우리 집을 떠났고, 듣도 보도 못한 냥이 알몽이가 우리 집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얘는 낮에도 집에 꼭 붙어있다. 하루 종일). 도대체가 내 시나리오대로 전개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세상사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는 말이 꼭 맞다.


어느 날 아침 풍경, 알콩이, 알몽이, 탄이, 강이, 신비가 모여있다. 이날은 예삐와 심이가 빠졌네요

동네 길냥이들과 얽혀 산지 수년이 되어간다. 길냥이들과의 관계에서만큼은 나는 '슈퍼을'인 것만 같다. 비록 '슈퍼을'이지만 '슈퍼갑' 뒤뜰 냥이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우친다. 뒤뜰 냥이들을 위한 월동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또 하나 세상사는 이치를 배운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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