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이스 냥이 소금이는 우리 집에 미니와 주니를 낳았다.
철석같이 그런 줄 알았다. 밥 주는 이른 아침 시각에 새끼들과 마주쳤으니 당연히 그리 생각할 수밖에. 그런데 참으로 수상했다. 한창 꼬물거리는 아가냥이 두 마리나 있는 집 치고는 너무나 조용했다. 주말 한낮에는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평일에는 그림자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수상한 마음은 깊어갔다. 얘네들이 과연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무엇보다 너무나 '인기척' 아니 '냥이 기척'이 없었다. 급기야는 어느 날, 얘네들을 낳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몸을 숙이고 들어가) 샅샅이 뒤져보기도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냥이 기척'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 된 일일까. 어느 날은 덜컥 무서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우리 집이 아니라 옆집에 낳은 건가(얘네들이 주로 머무르는 공간이 옆집과 면해 있다). 옆집에 낳았는데 흉악한 옆집 아저씨가 쫓아냈나. 그래서 다 죽은 건가.
불길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급한 마음에 옆집에 사람이 없을 때(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다) 한번 있을만한 곳이 있나 가보기도 했다. 보일러실 문도 잠겨 있는 데다, 옆집이라고 해서 딱히 있을만한 공간이 보이진 않는다. 소금이네 가족은 정말 모두 죽은 걸까.
비밀은 이 주 전 주말에 어이없이 아주 쉽게 풀렸다. 때는 토요일 오전 11시경, 싸복이 남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한다. 마당을 내다보니 어라, 주니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벤치의자에 앉아있다. 뭐지 싶어 계속 주시하는데, 이어 미니가 쫄랑쫄랑 지나간다.
반가운 마음에 주책없이 나가보니 주니와 미니가 나를 보고 놀라 냉큼 뒤뜰로 도망간다. 놀란 미니는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화단에 숨었는데, 내가 자꾸 사진 촬영을 시도하자, 열심히 하악 거리다 냉큼 대문 밖으로 도망친다. 아니, 엄마랑 주니가 있는 뒤뜰로 도망을 가야지 이런. 괜히 애꿎게 미니를 쫒았나, 아직 아기인데 길을 잃으면 어쩌지 싶어 마음이 안 좋았는데 잠시 후 나가보니 다행히도 뒤뜰에서 소금이랑 주니랑 함께 있다.
그렇다. 소금이는 우리 집에 새끼들을 낳은 게 아니었다. 소금이는 어디 멀리서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아이구나 싶었는데, 그곳에 새끼를 낳은 것이다. 아마 젖먹이 때는 소금이 혼자 밥을 먹으러 왔을 것이다. 새끼가 크면서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러 원정을 오는 것이겠지. 유심히 지켜보니 오전에 우리 집에 와서 늦은 오후까지 쉬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아무 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엊그제 주말엔, 오전에 한차례 다녀갔는데, 오후에 대문 넘어 마당을 지나 뒤뜰로 가는 현장을 또 보았다(하루에 두 차례 방문도 하는 모양이다). 주니가 먼저 뒤뜰로 냉큼 가고, 미니가 쫄래쫄래 따라가는 중이었다. 싸복이 남매가 집안에서 우렁차게 짖으니, 그 소리가 제법 컸는지 미니가 놀라 갈팡질팡한다. 대문 넘어 집으로 도망갈까, 뒤뜰로 갈까, 풀숲에 숨을까 안절부절못하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일단, 대문 쪽으로 후퇴했다 잠시 후 행복이가 좀 조용해진 틈을 타 뒤뜰로 도망갔다. 잠시 후, 가서 염탐을 해보니 소금이와 미니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주니만 숨어 빼꼼 얼굴을 내민다.
'냥이 부자'가 된 줄 알았는데, 뒤뜰 냥이 식구가 갑자기 확 줄었다. 어차피 내 집 밥을 먹고 있으니, 마침 알콩이+알몽이가 방을 빼서 방도 비었으니, 아예 우리 집 뒤뜰에 눌러살아도 좋으련만. 뭐,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1월쯤에(새끼들이 조금 더 자랐을 때) 소금이를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고 싶은데, 경계가 심하고 얼굴 보기 힘들어서 잘 될지는 모르겠다.
냥이들하고의 관계에서만큼은 바라던 대로 되도록 하느님께서 늘 내 기도를 들어주셨으니 이번 참에도, 넓은 아량을 베푸실 거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하늘이를 똑 닮아 정이 가는 미니와, 똥꼬 발랄 활발해 보이는 대장부 주니가 멋진 성인 냥이로 자라기를 기도해 본다. 아직 어려 보이는 엄마 소금이도 부디 건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