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깃털 Nov 27. 2020

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고양이,
알몽이 이야기

# 알몽이는 내가 아는 냥이 중,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고양이다.


어느 날부터 알콩이와 꼭 붙어 다녀 눈에 띄기 시작한 알몽이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 뒤뜰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알콩이가 그랬듯, 밥만 먹으러 왔을 것이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늘 밥도 있고, 좋은 집도 있는데, 어라 눌러살아야겠다 싶었겠지. 뒤뜰 한편 빈집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알몽이는, 이제 내가 돈과 공을 들여 '강탄 예삐 트리오'를 위해 마련한 펜트하우스급 럭셔리 냥이 집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다.


뒤뜰 냥이가 된 후로, 맘도 편해졌는지, 원래도 뚱뚱했던 알몽이가 점점 더 뚱뚱해져 가고 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뚱뚱했던 알몽이다(그래서 임신한 암컷인 줄 알고 아주 눈에 쌍심지를 켜고 궁둥이만 주시했다). 장시간의 노력 끝에 알몽이는 수컷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졌고, 불룩 나온 배는 그냥 순전히 뱃살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안 그래도 뚱뚱했던 알몽이는 무한대로 사료가 급식되는 우리 집이 편했는지,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현재는 뱃살이 땅에 끌린 정도로 뚱뚱해졌다.


제가 보기엔, 알몽이는 별 관심 없는데, 알콩이가 알몽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ㅎ

다른 뒤뜰 냥이들은 그래도 한낮에는 밖에 마실도 다니고 하는데, 알몽이는 대낮에도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잔다(어찌나 잘 자는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정도다). 보통 주말에 집에 있을 때에는, 순찰 삼아 하루에도 몇 번씩 뒤뜰에 나가보는데, 매번 같은 자리에서 자고 있는 건 알몽이가 유일하다(자세만 바꿔서 잔다). 오래 지켜본 결과, 원래가 게으르고 또 게으른 냥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알몽이가 뒤뜰 냥이가 된 후론, 사료 소비량도 달라졌다. 게으른 데다가 많이 먹기까지, 아, 알몽이가 밉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알몽이 너, 알콩이 아니면 벌써 나한테 한 대 맞았어~

# 나는 알몽이가 너무너무 얄밉다.


우리 집 뒤뜰 터줏대감인 '강탄 예삐 트리오'를 위해 공들이고 공들인 집을,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냥이 가 턱 하니 차지해 버렸으니 알몽이가 예쁠래야 예쁠턱이 없다. 게다가 태생이 게으른 데다 많이 먹기까지 하니 얄미움은 배가 된다(내가 워낙 부지런한 성격이라, 원체 게으른 사람이 싫다). 그나마 성격은 그럭저럭 온순한 줄 알았는데, 아침에 사료를 새로 세팅할 때마다 매번 나에게 '쨉'을 날리시니,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을 뿐이다(할퀴기도 많이 했다). 누가 보면 밥 주는 게 아니라, 밥 뺏는 줄 알 거다.


알몽이 너 뱃살 땅에 닿기 일보 직전이거든. 밥을 조금만 먹던지, 마실이라도 다니던지.

나도 만만치 않아 사료를 줄 때마다 쌍욕을 날린다. '너 이 눔의 쉐끼~ 니 늘어난 뱃살이 다 내 돈인데 어디 감히 쨉을 날려~'하며 꼭 한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을 떠난 줄 알았던 알콩이가 알몽이와 함께 펜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나마 알콩이 덕에 알몽이가 덜 밉다. 알콩이는 나의 최애 냥이 중 하나다). 알콩이는 어디서 남자를 데려와도 저렇게 게으르고 예의 없는 놈팡이를 데려왔는지 생각할수록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예삐 왈: 저 가리가리 소파는 내건데... 쩝.....

정말 억울한 건, 얄미워도 쫓아낼 수도 해코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해코지가 무언가, 매번 쨉을 날려주는 녀석에게 사료를 진상하고 있으니 이거 원. 우리 집 뒤뜰 냥이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아닌데, 이렇게 가뿐하게 무임승차를 해 주시니 적잖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런데도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니, 뭐 언제나 냥이들 앞에선 '슈퍼 을'인 내가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뭘 봐 네이놈~ 벽에 똥칠할 때까지 못 살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으리~

얄밉고 또 얄미운 만큼, 그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았으면 싶다. 어디 아프지 말고, 속 썩이지 말고. 밥 많이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기만 하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알몽이 너, 경고하는데, 쨉은 그만 날리는 게 좋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소금이네 가족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