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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an 28. 2021

뒤뜰 냥이, 탄이 이야기

강이, 탄이, 예삐 트리오와 신비는 우리 집 뒤뜰을 책임지는 대표 뒤뜰 냥이들이다.


이 중 탄이가 (지금 현재로서는) 나를 가장 많이 따른다. 따른다고 해봤자, 내가 앞에 있어도 통조림을 잘 먹고, 나를 보고도 36계 줄행랑을 치지 않는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이는 내 브런치의 주인공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강이, 예삐나 다른 뒤뜰 냥이들과 엮여 드문드문 단역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은 탄이를 브런치의 주인공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탄이 너 오늘 주인공 된 날이야. 축하해~

탄이는 태희네 육 남매 중 남아다. 여섯 마리 이름을 한꺼번에 지으려다 보니, 다소 성의 없게 까매서 탄이가 되었다. 그마저도 오래 지켜보니, 까만색이 아니라 짙은 밤색이어서 지금까지도 살짝 민망하다. 내 네이밍 센쓰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름인 셈이다.


탄이는 애기 때부터 별다른 특색은 없었다. 신비처럼 유난히 병약해서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혜교처럼 미모가 뛰어나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 특별히 나를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그 와중에 그래도 좀 덜 피해서 나를 따른다는? 느낌을 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 같았다고나 할까. 그랬던 탄이가 뒤뜰에서 태어난 지 2년 8개월이 되어가는 현재, 아이러니하게도 나랑 제일 (그나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마도 그건 통조림 때문일 것이다.


제가 코 앞에 있어도 도망가지 않아요. 얼굴 본 지 3년이나 되어가는데 이 정도가 많이 가까워진 거랍니다

나는 어찌어찌해서 육 남매 중에 사 남매만 남게 되었을 때부터 아침마다 통조림을 주었다. 돈이 남아돌아(?)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뒤뜰 냥이 미니몽과 미유가 동시에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기보다는 거처를 옮기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남은 4남매만큼은 그냥 우리 집 뒤뜰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매일 통조림을 주면, 좀 더 손쉽게 아이들을 잡아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던 것 같다.


제가 코앞에서 지켜봐도 잘 먹어요~ 까만 아이들은 사진발이 잘 안 받아서 사진이 실물을 따라가지 못해요^^

통조림의 효과는 제법 컸다. 태어나서 맛난 통조림이나 간식은 먹어본 적이 없던 아이들 다웠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남은 태희네 4남매와 사이가 가까워졌다. 아기 때는 내가 창문으로 지켜보다 부스럭 대기만 해도 모두 바람처럼 흩어져 도망가는 수준이었다. 처음엔 그나마 '강이'가 나를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강이가 대면 대면하게 굴기 시작했고(이제는 내 앞에서 통조림도 잘 먹지 않는다), 오히려 탄이가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남은 4남매 중 혜교가 고양이 별로 돌아간 후에는, 이제 탄이는 유일하게 내 앞에서 통조림을 거리낌 없이 먹는 아이가 되었다.


강이탄이예삐 트리오가 엄청 좋아하던 장소였는데 지금은 거대 고양이 알몽이에게 자리를 뺏겼어요~

신비는 제 집 앞에 밥상을 차려줘야 먹고(그나마도 어쩌다 한 번씩 입을 안 댈 때도 있어 아주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강이와 예삐도 통조림을 따도 집에서 나오질 않아(요즘은 날씨가 추워서 더욱더) 집 입구에 갖다 줘야 먹는다. 아침마다 신비 밥을 고층 집에 올려주고, 강이와 예삐밥을 문 앞에 놓아준다. 아침마다 밥상을 정성껏 차려 시댁(?) 어르신들께 진상하는 며느리가 되는 기분이다(이놈의 집사 신세).


예삐와 탄이가 '빨리 통조림을 내놓으라'라고 코 앞에서 시위하는 중^^

탄이는 지난번 매섭게 추웠던 딱 이틀만 빼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이면 보일러실 앞으로 와서 통조림을 받아먹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자발적인 데다가 적극적으로(?) 통조림을 먹겠다고 달려드니 기특하고 예쁠 수밖에 없다. 요즘엔 사이가 점점 더 가까워져, 이젠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어도 하악 거리지도 않는다(예전엔 얼굴을 들이밀면 살짝 하악거렸다). 게다가 아침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나타나면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이젠 다른 시간대에도 나를 제법 알아보기까지 한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셋이 함께 앞마당에 진출해 있어서 혼자서 빵 터졌어요.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아 어찌나 흐뭇하던지요 

사실 거대 고양이 알몽이가 알콩이와 함께 강탄 예삐 보금자리에 자리 잡은 후부터, 강이와 예삐는 나와도 내외가 심해졌고 낮에도 뒤뜰에 머무르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알몽이가 강탄 예삐 트리오를 괴롭히는 걸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는데, 알몽이가 주로 머무르는 곳이 통조림을 나누어주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탄이만은 꿋꿋하게 남아서 통조림을 받아먹는 중이다. 이런 강탄 예삐 트리오를 보는 내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자이언트 고양이 그레이에게 쫓겨난 후 급조한 집에서 매일 꼭 붙어자던 시절의 사진이에요. 지금 봐도 눈물 나는 풍경이네요

나는 그중에서도 유독 탄이가 많이 안쓰럽다. 새로운 뒤뜰 냥이가 된 거대냥 알몽이도 그렇고, 우리 집 밥을 먹는 자이언트냥 그레이도 이상하게 다른 뒤뜰 냥이들보다는 탄이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탄이가 수컷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사실 탄이 뿐 아니라, 남은 뒤뜰 냥이들에게 애정의 크기만큼 안쓰러움이 크다.


알몽이 때문에 맘 편히 낮잠 잘 장소도 없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그래도 얘들아~ 지금처럼만 셋이 예쁜 모습으로 잘 지내거라~

아픈 신비는 아픈데로 걱정, 안 아픈 애들은 어디 아플까 봐 걱정, 알몽이한테 밀려 집을 떠나지나 않을까 걱정, 어느 날 아침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걱정. 집냥이와 달리 아무래도 내 손길이 미치기 힘들다 보니, 늘 마음이 무겁다. 언제까지 탄이와 아침마다 통조림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부디 아프지 말고, 알몽이 등쌀에도 꿋꿋이 견디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뒤뜰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2년 8개월이란 시간 동안 더디지만 조금씩 가까워졌으니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은 한 걸음씩 더 가까워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어느 날 탄이에게 내 손이 닿는 기적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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