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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Feb 04. 2021

뒤뜰 냥이 소금이의 중성화 수술기

'소금이'는 '소심하게, 살금살금' 밥을 먹으러 온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두세 번 보았을까, 쟤도 우리 집 밥을 먹는구나, 그런데 아직은 좀 덜 큰 것 같은데, 어, 암컷이면 어쩌지.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주 보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금방 잊었다(우리 집 밥을 먹는 냥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랬던 소금이가 우리 집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 후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우리 집 뒤뜰에 묻혔다.


처음엔 아기냥 세마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알았어요. 셋이 함께 있는 걸 본 후, 소금이가 엄마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11월의 일이다. 소금이도 경계가 있는 편이지만, 소금이의 남은 새끼 후니와 주니는 더 경계가 심해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다. 어떤 날은 매일 기척이 느껴졌고, 또 어떤 날은 통 기척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것도 같았고, 다른 곳에서 낳았는데 밥만 먹으러 오는 것도 같았다. 어떤 날은 소금이만 보이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소금이만 보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소금이네 가족은 미스터리했다.


한배에서 나왔는데 미니는 주니 반만 해요. 우리 하늘이를 닮아 (하늘이) 미니미라는 의미에서 미니로 지었는데, 이름 탓인지 애가 크질 않네요.

겨울이 오고 날이 추워지자, 소금이네 가족은 우리 집 뒤뜰 돔 하우스(뒤뜰 냥이 강탄 예삐 트리오를 위해 만든 나름 럭셔리 돔집)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아침밥을 줄 때 언젠가부터 매일 눈에 띄었다. 나는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1월쯤에는 소금이를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 계획이었다. 눌러앉은 것 같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자주 보이지 않으면 아무래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주시하며 언제가 적당할지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소금이는 손을 타진 않지만, 36계냥은 아니라서 아주 가까이만 안 가면 괜찮답니다

이제 미니와 주니도 사료를 제법 잘 먹는 것 같으니 엄마 없이도 며칠은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올 겨울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수술 후에 제대로 케어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이 앞섰다. 저렇게 매일 눈도장을 찍는데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잡을 수 있을 듯했다. 날 풀릴 때까지 기다려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마냥 미루기도 불안했다. 새끼들이 조금 더 자라면, 소금이가 새끼들만 남겨두고 집을 떠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길냥이들이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날이 따뜻해진 어느 날, 미니가 돔집을 벗어나 마실을 나왔습니다.

그래, 날이 조금 풀릴 때까지 기다려보자.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랬는데 얼마 전 날이 비상식적으로 따뜻해진 그때, 감쪽같이 소금이네 가족이 사라져 버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는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밥을 먹은 흔적도 없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이대로 영영 우리 집을 떠나버렸나. 안 보이는 날이 길어지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매일 얼굴 보일 때, 진작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걸. 이대로 영영 못 보게 되면, 소금이가 분명 또 임신을 하고 말 텐데.


소금이가 병원에 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엄마 없이도 잘 지내주었습니다.

급할 때만 하느님을 찾는 평소의 습관대로 나는 또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아버지, 제발 소금이가 다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발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소금이의 원래 거처가 우리 집이 아니었다면, 날이 따뜻해지니 봄이 온 줄 알고 집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분명 다시 날이 추워지면 우리 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따뜻한 집과 밥과 물이 있는 우리 집을 쉽게 잊을 수 있을까.


내 짐작이 맞은 건지, 아니면 하느님이 이번에도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건지, 날이 다시 살짝 추워지자, 드디어 소금이가 꽤 오랜만에, 며칠 전 아침에 얼굴을 드러냈다. 마침 사료가 떨어져 있었고, 배가 고픈지 찡찡거린다. 평소에도 가끔 사료가 떨어지면 배가 고파 돔 하우스 밖으로 나올 때가 많았다(소금이네 가족은 웬만하면 돔 하우스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호라, 지금이구나. 이렇게 배가 고플 때 덫을 놓으면 백 프로의 확률이다. 


주니는 완전 36계 냥이여서 뒤꽁지도 보기 힘듭니다. 사진 찍는 건 언감생심이지요. 운 좋게 하나 건진 사진입니다.

덫을 설치하고 정말이지 한 1분 만에 소금이를 잡았다. 평소에도 경계가 너무 심한 편은 아니었는 데다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두어 번 통조림 맛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인지(통조림 맛을 좀 알아야 쉽게 유혹되지 않겠는가), 아주 쉽게 자발적으로 덫으로 들어갔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제 소원을 들어주셨네요.' 


항생제도 먹일 겸 24시간동안 케이지에 잡아두었다. 풀어주기 직전에 찍은 사진.

소금이는 수술을 잘 마쳤고, 다시 새끼들 곁으로 무사히 돌려보냈다. 다행히 미니와 주니가 엄마 없는 며칠을 잘 견뎌내 주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소금이를 본 적은 없지만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미니와 주니가 어느 정도 자라고, 계속 뒤뜰에서 지낸다면 얘들도 수술시켜 줄 계획이다. 부디 우리 집에서 세 식구가 오손도손 오랫동안 살았으면 좋겠다.


소금이네 돔 집은 내가 만들었는데도(?) 구조를 모르겠을 정도로 복잡하다. 구석에 박혀 나오지 않으면 기척을 느낄 수 없고, 얼굴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뒤쪽을 통해 우리 집 바깥으로 바로 나갈 수 있게 되어있다. 소금이네 가족을 잘 볼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우리 집을 떠나지 않았으려니, 늘 그랬듯이 곧 다시 얼굴을 보여주려니 해야겠다(얼굴이 안 보일 때마다, 근심이 한 가득이었다).


주니보다는 미니가 낯을 좀 덜 가려요. 우리 하늘이와 똑 닮은 데다 작고 왜소해 많이 안쓰러워요.

우리 집에서 태어났든, 그게 아니든, 우리 집을 떠나든, 계속 뒤뜰 냥이로 남아 있든, 소금이네 세 가족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본다. 삼 년 전 여름 태희가 육 남매를, 예쁜이가 삼 남매를 낳은 후에,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새끼 냥이들이 태어났다. 돌봐야 할 뒤뜰 냥이가 늘어나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참 경사스러운 일이다. 


하느님이 선물해주신 새로운 인연이다. 오래오래 이어질 묘연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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