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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r 12. 2021

우리 집 뒤뜰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뒤뜰 냥이들에게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코 끝을 스치는 바람에 봄 향기가 가득하다. 

봄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맹추위가 물러가고 어느덧 봄이 저만치 가까이 와있다.


조금씩 날이 따뜻해지니 내 마음에도 봄바람이 인다. 몸도 맘도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출근 전 아침, 뒤뜰 냥이들 밥을 주러 가는 내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추운 겨울을 잘 버텨낸 뒤뜰 냥이들도, 우리 동네 길냥이들도 모두 나처럼 마음 한 가득 설렘 가득한 봄을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휴일 오후 우리집 뒤뜰 풍경, 탄이, 신비, 강이

아니나 다를까, 바야흐로 봄기운이 찾아드니, 우리 집 뒤뜰도 뭔가 기운이 달라졌다.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 첫 번째 변화는 새롭게 뒤뜰 냥이로 합류한 알몽이+알콩이 커플이 가져온 변화다. 지난겨울, 때는 비상식적으로 날씨가 따뜻했었던 때쯤이다. 아침이면 꼬박꼬박 얼굴을 보여줬던, 하루 종일 집에서 낮잠만 자던 알몽이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알몽이가 죽은 걸까.


작년 가을쯤, 알콩이와 알몽이가 집 밖에서 함께 있던 모습

이렇게 알몽이와 이별이구나. 이리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미워하지 말걸(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고양이 알몽이편 참조). 마음이 헛헛하고 안타까움이 절정에 달했던 어느 날 주말 오후, 알몽이가 천연덕스럽게 남의 집(소금이네 가족 보금자리)에서 낮잠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슬퍼했던 내 모습이 아주 많이 부끄러워지면서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내가 매일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지 않으면 용서치 않으리'라며 저주(?)를 퍼부었는데, 이렇게 쉽게 죽으면 알몽이가 아니지. 


소금이네 집에서 낮잠자다 딱 걸린 알몽씨, 자다가 깨서 심기 불편한 중

저때 이후로 알몽이는 우리 집을 아주 떠났다. 가끔 드문드문 만나는데 주로 집 밖에서다. 대개 이런 상황이다. 고양이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면 알몽이가 다른 수컷 냥이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봄이 되니 안 그래도 쌈닭 기질 충만한 알몽이가 이 구역 평정에 나서기라도 한 모양이다. 신기한 것은 더 이상 커플 냥이 알콩이와 함께 다니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야장천 둘이 붙어 다니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알콩이는 혼자 뒤뜰에 남아, 아침마다 나에게 얼굴도장을 찍는다.


알콩, 알몽커플이 한창 꽁냥꽁냥 하던 시절에 찍은 사진

알콩이가 어디서 저런 놈팡이를 데리고 왔는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심기가 불편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참 요지경인 것이 둘이 헤어진 듯싶으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애써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를 기어이 내쫓았는데, 어째 뒤가 개운찮은 친정엄마의 느낌이랄까. 어쨌든 터주대감 뒤뜰 냥이 강탄예삐 트리오를 괴롭히던 알몽이가 사라지고 나니, 뒤뜰에는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다시 강탄예삐 트리오가 편안하게 낮잠 자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알몽이가 뒤뜰에 자리 잡은 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강탄예삐 트리오가 매일 낮잠을 즐기던 자리를 드디어 다시 되찾았다



따뜻한 계절에는 코빼기도 보기 힘들지만, 추운 겨울만 되면 우리 집 보일러실에 찾아드는 그레이처럼, 왠지 다음 겨울에는 또다시 알몽이가 우리 집에 쳐 들어올 것 같다. 아니 그럴 거라고 믿는다. 봄바람이란 게 참 무섭다. 가을부터 그렇게 게으르게 하루 종일 낮잠만 자던 알몽이를 다시 유랑을 떠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봄기운이 알몽이 가슴에 커다란 불을 지핀 것이 틀림없다.


예삐도 다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두 번째 변화는 '강탄예삐' 트리오 중, 나를 제일 따르는 탄이에게 일어난 변화다. 다른 뒤뜰 냥이들은 몰라도, 탄이 만큼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에게 아침 도장을 콕 찍었다. 하루도 안 보이는 날이 없던 탄이가 어쩐 일인지 가끔 보이지 않는다. 첫음엔 어떻게 된 줄 알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지만, 보아하니 아침 댓바람부터 외출을 하던지, 아니면 밤새 마실을 다니다가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봄기운 타고 봄바람 난 우리 탄이, 그 옆에 강이

그 좋아하던 통조림 배급 시간조차 잊을 만큼 뭐 그리 급한일이 생겼을까. 봄바람이라도 났나 싶었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집 길 앞에서 탄이를 마주쳤다. 노랗고 예쁘장하게 생긴 처음 본 동네 길냥이와 함께 있었는데, 누가 봐도 우리 탄이가 그 노란냥이를 쫓아다니고 있는 모양새다. 탄이 역시 봄바람이 제대로 났나 보다. 그럼 그렇지 통조림보다 더 급한 일이 바로 '연애질' 이였던 것이다.


강이, 탄이, 예삐가 늘 붙어 있는 시절의 사진. 이 우정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사실 우리 탄이는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았다. 그 당시 육 남매를 모두 수술시키기엔 부담스러워서 남아들은 수술을 해주지 않았고, 그 이후엔 다른 수컷 냥이들에게 공격당하는 일이 많아서, 수술까지 하면 더 수세에 몰릴까 싶어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그런 걸까. 아주 바람이 제대로 났다. 바람난 탄이를 지켜보는 내 마음이, 마치 아직 어린 줄 알았던 아들의 첫 연애를 지켜보게 된 엄마의 심정 같다. 대견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탄이는 더 이상 예전에 그 꼬물이 태희네 육 남매가 아닌데, 나는 아직도 세 살이나 먹은 탄이가 마냥 어린 아기인 것만 같다.


몇 개월전, 그래도 상태가 제법 괜찮았을때의 신비의 모습

봄이 참 좋다. 나도 이렇게 좋은데, 뒤뜰 냥이들도 다르진 않을 것이다. 탄이가 바람이 났어도 여전히 강이 예삐와 의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집을 나간 알몽이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다시 돌아올 땐, 뱃살이 홀쭉해진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신비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다. 더 따뜻해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본다. 다른 뒤뜰 냥이들도 지금 모습 그대로 우리 집 뒤뜰을 무사히 지켜줬으면 좋겠다.


봄이다. 내 맘에도, 뒤뜰에도,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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