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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y 21. 2021

미니가어른 냥이가되었습니다

미니의 중성화 수술기

미니는 작년 가을에 우리 집 뒤뜰에서 태어난, 소금이 새끼 냥이다.


소금이는 우리 집 밥을 먹다가, 작년 가을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 후니는 꼬물이 때 고양이 별로 돌아갔고, 미니와 주니는 무럭무럭 자라 우리 집 뒤뜰 냥이가 되었다. 사실, 소금이가 우리 집에 새끼를 낳은 건지, 아니면 그저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든 것뿐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셜록홈즈라도 된냥 그 사건의 진실을 밝혀보고자 혼자 괜히(?) 애써봤으나, 확실히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사실이야 어쨌든 미니와 주니가 커 가고, 겨울이 되면서, 소금이네 세 가족은 자연스럽게 뒤뜰 돔집에 자리를 잡았다.


소금이네 가족은 지난겨울 내내 낮에도 추위를 피해 돔집에 머무르곤 했다

작년 1월, 소금이 중성화 수술을 무사히 마친 후, 이제 나의 새로운 중성화 수술 목표는 주니와 미니가 되었다. 주도면밀하게 파악한 바로는(나만 보면 도망가는 어린냥이 성별 파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니는 남아, 미니는 여아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몹시 조급해졌다. 주니가 미니를 임신시키는 불상사(?)는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집 밥을 먹는 '우유'라는 치즈 냥이가 미니에게 꽂혔는지 미니 곁을 종종 맴돈다. 우리 미니는 아직 어린데, 아직 애기인데, 임신하면 어쩌지.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만 했다.


소금이네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늘 흐뭇했다(나 혼자만 흐뭇하고 소금이는 엄청 경계 중ㅋ)

문제는 미니가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름을 미니라고 붙인 것이 실수였는지 어쩐 건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어느덧 어른 냥이가 다 된 주니에 비해, 미니는 늘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더 애가 탔다. 최소한 6개월은 지나야 수술을 할 수 있을텐데. 5월이면 될까, 아니 6월은 되어야 할까.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도 없는 불확실함 속에, 좀체 자라지 않는 미니를 보며 나의 근심은 하루하루 깊어만 갔다.


뒤뜰 터줏대감 탄이와도 사이가 좋아서 종종 함께 낮잠을 자곤 했다

쑥쑥 자란 주니는 외출이 잦아졌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엄마 소금이도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러다 주니와 미니마저 집을 떠날 수도 있다. 제발 미니가 빨리 자라기를 기도했고, 주니가 집에 오랜 시간 붙어있기를 희망했다. 시간은 흘렀고, 안타깝게도 주니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러다 미니도 집을 떠날까 싶어 마음이 급해진 나는, 일단 미니를 잡아보기로 했다. 어쩌면, 미니는 5월이면 8개월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3월에 찍은 사진인데 주니는 이미 어른 냥이가 다 되었다

다행히도 미니는 얼굴 보기 힘들어진 소금이, 주니와 다르게 아침마다 얼굴도장을 찍었다. 이런 때를 대비해 평소에 통조림을 간간히 주었다. 자라면서 낯도 덜 가려,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면 내 앞에서도 통조림을 편하게 먹는다. 그간의 쌓인 노하우로 봤을 때 이 정도면 식은 죽 먹기에 가깝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덧 놓아 길냥이 잡기'에 도튼 여인네답게 나는 아주 쉽게 미니를 잡아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고, 미니는 무사히 퇴원을 했다. 중성화 수술도 마쳤으니, 우리 쪼꼬미 미니도 드디어 어른 냥이가 된 것이다.


어릴 때도 예쁘더니 자라면서 더 예뻐진 주니

놓아주면 당연히 제집으로 숨을 줄 알았는데, 많이 놀랐는지 며칠 동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꼬리도 보기 힘든 소금이나 주니처럼 우리 집을 떠났나 싶어 맘이 많이 불편했는데, 어느 날 조심스레 담을 넘어 뒤뜰로 향하는 미니를 발견했다. 며칠 전부터는 이전처럼 아침마다 볼 수가 있다. 대신 안타깝지만 이젠 아주 경계가 심해져, 얼굴도 보기 힘들어 서운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미니 입장에서는 이게 웬 변고(?)인가 싶었을 것이다. 나는 밥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밥도 주지만 덫에 잡아 가둔 인간이기도 할 테니까.


드디어 잡았다, 미니 요 녀석, 보면 볼수록 우리 하늘이를 너무 닮았다

소금이네 가족은 다른 뒤뜰 냥이들과 다르게 앞마당에 자주 진출하곤 했다. 셋이서 앞다투어 쪼르르 달려 나와 앞마당에 진을 쳐, 집 안에 있는 싸복이 남매를 환장하게 하곤 했다. 그러다 가끔 운 나쁘게 싸복이 남매에게 걸려 쫓기는 험한 꼴을 당하기도 했다. 앞마당에 나타나 싸복이 남매에게 환장질을 해도 좋으니, 그저 오래오래 우리 집에 머무르기를 바랐었는데, 소금이와 주니의 얼굴은 못 본 지 오래다.


언제 다시 완전체 소금이네 가족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주니의 중성화 수술은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 너무너무 예뻤던 주니는, 멋진 사나이가 되었는데, 동네 냥이들 홀리는 풍운의 남자가 되어,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또다시 추운 겨울이 오면, 미니가 살고 있는 뒤뜰의 돔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미니는 우리 집을 영원히 떠나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추신 :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낸 탓입니다. 최근에 새로운 사건도 있었으니, 이제 또 소식을 전할게요.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뒤뜰 냥이들 모두 잘 지내고 있답니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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