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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n 30. 2021

아기 고양이, 여름이 이야기

여름이란 계절에 만난 새로운 인연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직장동료로부터 조심스럽게 문자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뜬금없지만 이 아이 키우실 분 혹시 주변에 있을까요. 학교에 혼자 다니는 걸 차에 치일까 봐 데리고 들어왔어요." 사무실 책상에서 놀고 있는 (몹시 어려 보이는) 아가냥이 사진과 함께 도착한 문자였다.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다. 말 몇 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도 없다. 부서도 다르고, 업무상 얽힐일도 없다. 나도 내성적이고, 저 직원도 그래서 딱히 친해질 계기도 없었다.


이 사진과 함께 문자가 도착했다. 

한 다리 걸러 이야기는 종종 전해 들었다. 황 팀장도 대형견을 좋아한다더라. 유기견을 돌보기도 한다더라. 밥을 주던 유기견이 새끼를 낳아서, 분양 보내느라 애를 쓰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황 팀장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박 선생님이 대형견을 키운다더라. 동물을 좋아한다더라. 동네에서 길냥이를 돌본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았을까. 


그러다 얼마 전 '강아지 복동이 사건(이전 글 참조)' 때 황 팀장에게까지 이야기가 전해진 모양이었다. 평소 친한 직원을 통해 강아지 간식 한 움큼을 전해왔다. 안 그래도 나랑 공통점이 많아 보이는데 밥이나 같이 먹어볼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어서, 용기 내어 식사 제안을 했다(낯을 많이 가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결코 먼저 밥을 먹자고 하는 일이 드물다).


사무실 책상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천진난만 아가냥

본인도 낯을 많이 가려서, 밥은 같이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거절의 말과 함께, 나의 아름다운 마음을 응원한다는 답문이 도착했다. 혼자서 빵 터졌다. 황 팀장도 오지게 낯을 가리는구나 하며. 그랬는데, 얼마 후에 저런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오죽 답답하면 저런 성격에 친하지도 않은 내게 문자를 보냈을까 싶었다. 게다가 사진 속의 아기 냥이가 너무 예뻤다. 얄팍한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아기 냥이를 키울만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대학에서 일하면서 느낀 사실인데, 젊은 세대들은, 동물을 무서워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싫어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대개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한다. 자취하는 학생들 중에는 특히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키우는 학생들도 많다. 대학생들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하면, 나는 말리는 편이다. 이왕이면 취직한 후에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생명과 함께하는 일은 막대한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책임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 머리에 스쳐가는 한 학생이 있었다. 작년에 졸업해서 이제 어엿한 사회인인데, 함께 일할 때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때 내가 말리며 했던 말이, '기다려봐 봐, 내가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언젠가 너에게 새끼 고양이를 맡길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다. 별생각 없이 했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당장 연락을 해 보았다. 키우고 싶은데 두려워하는 마음이 큰 아이를,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했다. 사무실에 찾아가 직접 만나본 냥이가 (생각보다) 너무 어렸고, 너무 예뻤고, 아기 냥이 치고 낯을 비교적 가리지 않았다. 충분히 사랑스러우니, 나의 구 알바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가냥 머리에 모시고 시집살이 중인 듯 ㅋㅋ

당장 오늘 저녁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새끼 냥이를 덜컥 사무실에 데려왔다. 바로 입양을 가지 못할 경우에도 며칠은 맡아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주변에 자취생이 많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취직한 줄 알았던 나의 구 알바생은, 인연이 되려던 건지 직장을 옮겨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입양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양이를 구조했던 황 팀장은 일금 15만 원을 예방접종비에 보태라며 주었다. 내게 부담을 준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 황 팀장의 마음이 예뻤다. 그 마음은 고스란히 입양자에게 전달되었다. 


가리가리 소파를 공중에 매단 센쑤가 놀랍다. 여름이 미모에 물 오르는 중.

2개월도 안 되어 보이는 새끼 냥이가 어떤 연유로 대학 캠퍼스에서 헤매고 있었을까. 주변에 어미 냥이 있었다면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버렸을까. 엄마가 죽었을까. 하고 많은 사람 중에 그 직원 눈에 띄였고, 나에게까지 이야기가 전해진 걸 보면, 새끼냥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가냥은 '여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처음엔 냥이가 지나치게 똥꼬 발랄해 잠을 못 잔다며 궁시렁대 걱정이 많았다. 직접 방문하고 보니, 여름이를 바라보는 구 알바의 눈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 한시름을 놓았다.


사실 여름이 때문에 잠을 못 자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본 구 알바를 보며, 괜한 오지랖으로 누군가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닐까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냥 적당히 알아보겠다고 하고 모르는 척할걸 하고. 아기 냥이가 너무 예뻤기 때문인지, 안쓰러웠기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새 불쌍한 동물들을 외면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자꾸만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긴다.


부디 씩씩한 어른 냥이로 자라나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길

얼마 전에 구알바생의 집에 방문해 만나본 여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조금 더 자라면, 캣타워를 사주기로 약속을 했다. 내가 직접 거두지는 못했지만, 특별한 인연인 만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여름이가 멋진 어른 냥이가 되고, 오래오래 구 알바의 동반자로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일단, 다음 주에 예방접종부터 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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