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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ug 04. 2021

신비의 구내염은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정말 특별한 인연인가 봅니다

뒤뜰 냥이 신비가 구내염으로 세 번째 수술을 받은 것이 지난 3월의 일이다.


이후 이전보다는 크게 상태가 호전되었지만(오랫동안 밥을 먹지 못해 진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구내염이 완치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구내염은 결코 완치가 쉬운 병이 아니다(신비를 돌보며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얼마간은 상태가 좋아 밥을 잘 먹고, 얼마간은 상태가 좋지 않아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신비가 밥을 잘 먹으면 기분이 업 되었다가, 신비가 밥을 못 먹으면 기분이 다운되었다. 신비의 컨디션에 따라 나의 컨디션도 오락가락하는 나날들이었다. 


얼마 전까지 신비는 그럭저럭 잘 버텨 주었다. 6~7월에는 살도 제법 통통하게 오르고 상태가 오랫동안 좋기도 했다(이때 정말 행복했다). 나는 신비가 더 나빠질까 봐 너무 두려웠다. 손도 안타는 아이를, 집에 적응할 수 없는 아이에게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비가 상태가 안 좋을 때면 나는 안락사를 생각하기도 했다. 아, 내가 이런 사악한 생각을, 하며 곧 포기하긴 했지만. 답답한 마음에 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에 글을 올려봤다. 거긴 오랜 경력의 캣맘이 많은 곳이니, 누군가는 또 다른 치료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7월초, 상태가 최상이었을 때 찍은 사진. 입 주변도 몸도 깨끗하고, 살도 제법 올랐었다

줄기세포 치료나, 레이저 치료 같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호전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레이저 치료 같은 경우는 할 때마다 매번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한다. 손도 타지 않는 신비에게는 어쩌면 다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비를 다시 잡아야 하는 일이 아득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보협에서는 후원자들이 길냥이 치료지원 신청을 하면 최대 50%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비용 때문에도 걱정이 많았던 나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역시 7월초 컨디션 최상이었을 때의 모습, 얼마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때 참 행복했다

그러다 열흘 전쯤부터 신비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 먹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먹기를 멈추지 않았던 신비가 아예 통조림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디에 숨었는지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뭐라도 해보자 싶어 덫을 놓았지만, 신비답게 덫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속만 타들어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상태가 안 좋아지고 난 후, 밤마다 보일러실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신비는 상태가 좋을 때는 뒷마당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지내다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 스티로폼 집이나 보일러실에 머무르곤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수술 때는 집 안에 들어가 있는 걸 입구를 막아 잡았고, 세 번째에는 보일러실에 들어가 있는 걸 문을 막아 잡았다. 이건 일종의 신호 같았다. '나도 살고 싶다'라고 신비가 나에게 보내는 구조신호. 3~4번의 실패 끝에(아무리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도 내가 오는 줄 알고 보일러실에 뛰쳐나와 도망가기 일쑤였다), 보일러실 문을 잠가 신비를 잡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잡았다. 침이 너무 흐르고 그루밍을 못해 입주변과 온몸이 꼬질꼬질하다

잡기만 하면, 고보협에서 알아서 상급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소개해 주는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협진병원 중엔 레이저나 줄기세포 치료가 가능한 곳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협진병원은 여기서 거리가 너무 멀다. 몇 시간의 폭풍 검색 끝에 가까운 거리의 믿을만해 보이는 병원을 발견했으나, 인기가 너무 많아(예약이 꽉 차) 지금 당장 진료가 불가능했다. 그 병원에서 믿을만한 병원이라며 가까운 다른 병원을 추천해주었다. 크게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신비를 저대로 계속 방치할 수 없어, 일단 다음날 소개받은 병원으로 출발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7월에 개원한 병원이라 장비가 좋았고, 대형병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쌤이라 실력도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 친절했고, 야생성이 강한 신비의 상태를 잘 이해해 주셨고, 나와 함께 최적의 치료법을 고민해 주셨다(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길냥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쌤도 많다). 검사 결과 신비는 송곳니의 잔여 치아가 남아있었다(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송곳니를 완벽하게 발치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느꼈다. 완벽한 발치는 치과전문병원이나 2차 병원에서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퇴원 후, 풀어주기 전의 모습

신비는 수술을 통해 잔여 치아를 최대한 제거했지만, 아래쪽 송곳니 한 개의 뿌리 일부를 제거하지 못했다. 턱뼈와 너무 닿아있어 잘못하면 턱뼈 손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남아있는 뿌리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치료법인 줄기세포 치료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효과가 반신반의하고, 레이저 치료도 신비에게는 어려운 일이다(치료를 받으려면 오랜 기간 신비를 집에 잡아 두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 단 며칠을 살더라도, 신비가 살던 대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혹시 암이나 다른 바이러스일 수도 있으니 추가 검사도 진행했다(검사 결과는 조만간 나올 것이다). 쌤과 나는 일단, 스테로이드 약물치료를 해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스테로이드는 장기 복용 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신비가 고통 속에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사는 동안 사는 것처럼(먹고 싶은 대로 먹으며) 살기를 원했고, 쌤도 내 의견을 따라 약물치료를 추천해 주셨다.


부엌 창문에서 찍은 사진. 열심히 먹고 있는 신비의 뒤태가 흐뭇하다

호흡 마취를 했기 때문에 회복이 빨라, 나는 수술 내내 병원에 머물렀고, 신비를 만난 후 처음으로 신비의 손을 잡아볼 수 있었다. 구내염이 심해 그루밍을 하지 못해 신비의 손과 몸은 너무나도 꼬질꼬질했고, 며칠 동안 먹지 못해 몸은 앙상했다. 그런 신비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연신 신비의 손을 쓰다듬었다. 


원래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중^^

저 작고 가냘픈 몸으로 여러 번의 수술을 견뎌낸 신비의 생명력이 감탄스럽다. 이번 수술 중엔 순간적으로 호흡이 잠깐 멈추기도 했다고 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신비를 내가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겠는가. 나도 사람인지라 돈이 너무 아깝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 때는 '차라리 죽었으면' 싶기도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정말 특별한 인연이고, 소중한 관계다. 내 곁에 다가온 이 아이를 나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돌볼 것이다.


어제 아침에 찍은 사진. 이젠 아주 통조림을 잘 먹는다

신비는 퇴원을 했고, 뒤뜰로 돌아갔고, 다행히 불편해하면서도 통조림을 잘 먹는다. 최근 상태가 안 좋아, 통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이제 원래 '최애'하던 자리에서 편하게 낮잠도 즐기고 있다. 수술 후, 통조림을 먹는 신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벅찼다.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하느님이 계시다면, 신비에게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는 동안만큼은 더 이상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예전처럼 날 볼때마다 통조림을 내 놓으라며 주변을 돌며 야옹거린다. 눈물나게 반가운 모습이다

신비의 구내염은 결코 씻은 듯 낫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기도한다. 신비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남은 생이 고통으로 더 이상 얼룩지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신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다면,
제발 내가 거둘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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