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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r 11. 2024

나의 늙은 개, 행복이 이야기

행복이의 투병일기

행복이는 작년부터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다. 기침을 해서 병원에 갔는데, 심장이 커졌다고 했다.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작년까지는 그런대로 건강했다. 잠이 좀 늘었고 늙은 티가 역력하긴 했어도, 산책도 곧잘 했고, 큰 문제도 없었다. 올해 들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음식에 호불호가 생기고(식탐대마왕 행복이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딘가 힘들어 보였다. 건강검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작년 11월경에 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으니, 한 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 병원에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다는 듯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다 설명절 즈음 갑자기 활력이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체중도 확 줄었다.


설연휴가 끝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혈액 검사를 했는데, 간도 좋지 않고, 적혈구 수치가 극히 낮다고 했다. 빈혈이 심하다고.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심한 빈혈인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다고 했다. 2차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겠지만, 추천하지 않으신다고도 했다. 대형견이 12살이면 노견 중 노견이다. 의사쌤의 이야기는 '어차피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데, 괜히 아이를 더 고생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행복이 모습. 장꾸같아 보여서 좋아요 ㅎ

걱정이 많은 성격답게, 나는 자주 늙은 개 행복이를 상상했다. 골든 레트리버는 암에 취약한 견종이다. 실제 암으로 많이 죽는다. 늘 생각했다. 행복이가 늙어서 암에 걸리면, 수술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괜히 수술한다고 고생시키면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은 아프지만, 늙고 병들어 회복할 수 없는 단계가 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게 진정으로 행복이를 위한 길이라고.


행복이는 이제 거의 잠만 잡니다. 힘들어 보이네요.

다행히도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래도 수혈을 받아보는 것은 추천한다'고. 수혈이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수혈은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병원을 다녀온 후로는 거짓말처럼 행복이의 상태가 확 나빠졌다. 선생님 말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밥도 잘 먹지 않고, 간식도 안 먹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헉헉거림'이 너무 심했다. 빈혈이 심해 산소가 부족해서라고 했다. 기력 없는 행복이를 지켜보며 마음이 무너졌다. 행복이를 보면 울고 또 울었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수혈받고 온 날입니다. 우리 행복이가 고생이 참 많네요.

며칠을 고민한 후에 나는 수혈을 결정했다. 원인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수혈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안 해주면 후회를 할 것만 같아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기도 했다. 수혈을 받은 후, 그다음 날부터 행복이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당장 며칠을 못 살 것 같아 보였던 행복이에게 희망이 보였다. 수혈을 받아도, 바로 적혈구가 그대로 깨져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15일 이상을 버티면 어쩌면 새롭게 적혈구를 잘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15일을 버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20일이 지나갔다.


수혈받은 지 2주가 지나자, 조금씩 헐떡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대로 밥을 잘 먹지만, 상태가 조금씩 다시 나빠져 가는 중이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2차 수혈을 결정했다. 여러 번 수혈받는 것은 추천하지 않지만, 이번에 20일을 버텼으니, 한 번은 더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도 하셨다. 나는 지체 없이 2차 수혈을 결정했다. 다만 20일이라도 버틸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심정이기도 했다. 


작년가을, 이때만 해도 건강해 보이는 행복이 모습.

행복이는 이제 2차 수혈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행복이는 암일지도 모르고, 낫기 힘든 어떤 치명적인 질병일지도 모른다. 수혈은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행복이에게 이 지구별에서의 시간이 얼마가 남았을지 신만이 아시겠지만, 사는 동안만큼은 그저 편안하고 또 편안했으면 좋겠다. 고통 없이 남은 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수혈을 받고 단 20일만이라도 더 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엄마를 얼마든지 귀찮게 해도 좋으니,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행복이가 많이 힘들지 않다면, 지구별에서 나와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좀 더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행복이와의 마지막 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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