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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r 14. 2024

나의 늙은 개, 행복이 이야기

우리 행복이가 많이 달라졌어요

늙는데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동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도 늙어가는 중이고 보니 저 말이 딱 맞다. 귀찮은 일이 참 많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입맛도 많이 달라졌다. 행복이도 그렇다. 만사 귀찮은지 잠만 잔다. 호기심도 적대심도 많이 사라졌다. 집 밖에 누가 지나가도 좀처럼 짖지 않고, 예전에 다른 개만 보면 아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이젠 가까이에서 귀찮게 해도 시큰둥이다. 심지어 죽일 듯 달려들던 길냥이가 코 앞에서 깐죽거려도 요지부동이다. 우리 행복이가 참 많이 달라졌다.


그 밖에 기타 등등 늙은 개 행복이는 예전 같지 않은데,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식탐이다. 나는 행복이를 '식탐대마왕' '삼겹살 나라 돼지공주' 등의 별명으로 불렀다. 개들은 무릇 식탐이 강한 법이지만, 행복이는 평균 이상이었다. 호시탐탐 싸이밥을 끊임없이 노렸으며, 입 앞에 무언가를 갖다 주었을 때 먹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밖에 나가면 돌에 나뭇가지에 흙에 풀, 소똥에 음식물쓰레기에 이르기까지, 안 먹는 것을 찾는 것이 차라리 쉬웠다. 밥 먹을 땐 어김없이 애처로운 눈망울로 간식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행복이의 식탐덕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참 많았다.


진짜 모처럼 꿀잠 자는 행복 씨

그랬던 행복이가 음식에 대한 호불호라는 것이 생겼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있을 줄이야. 시작은 늘 먹던 껌을 거부하면서부터다. 그것을 시작으로 먹지 않는 음식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분명 즐겨 먹던 간식인데 거부하는 때가 많다. 뭐라도 먹어야 하기에 종류별로 간식을 사놓았다. 간식을 줄 땐 '드실지 안 드실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먹지 않으면 내 속은 타들어간다. 그뿐이 아니다. 아프고 나니, 입이 짧아져서 통조림에 비벼줘도 사료에는 영 시큰둥이다. 심지어 밥상을 차려줘도 본체 만체고, 바로 코 앞에 밥그릇을 대고 수저로 떠 먹여 줘야, 그제야 먹기 시작한다.


종류별로 간식과 통조림을 갖춰놓았다. 이젠 다이어트에서 벗어나 맘껏 먹게 되어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위로해 본다.

우리 행복이가 이제 사람이 될 것인지, 수저로 떠 먹여주지 않으면 거들떠도 안 보니 이게 웬일인가 싶다. 그렇게 겨우 반쯤 먹은 후엔, 도리질을 치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 먹겠다는 뜻이다. 애가 타는 나는, 숟가락을 들고 아이를 쫓아다니는 엄마의 심정으로 '한 숟갈만 더 먹자'를 간절히 외치게 된다. 어멍의 애걸복걸에 행복이는 못 이기는 척 남은 수저를 받아 든다. 아이고 오래 살고 볼일이다. 밥숟가락을 들고 행복이를 좇는 날이 오다니. 덕분에 남은 사료도 싸이 차지, 안 먹는 간식도 싸이 차지. 싸이는 조금씩 돼지개가 되어간다. 예전엔 행복이가 자기 간식을 금세 먹어 치우고, 간식 먹는 싸이 앞에서 비굴하기 짝이 없게 쳐다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이 되었다. 


덕분에 싸이만 자꾸 돼지개가 되어간다.

늙고 병들어 이제 예전 같지 않은 행복이에게도,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나를 향한 사랑이다. 모든 관심과 호기심이 사라진 지금도, '어멍바라기' 행복이의 마음은 한결같다. 이제 산책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어, 싸이만 데리고 한두 번 산책을 나갔는데, 오로지 어멍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몸을 일으키기조차 벅찬 상태에서도, 어멍이 싸이와 산책을 나가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같이 나갈 채비를 갖춘다. 억지로 떼어놓고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보면, 창가에 앉아서 자지도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숨이 차고 더위서 그런지, 밖에 있는 시간이 많다. 

고육지책으로, 유아용 웨건을 구입했다. 처음엔 반려견 유모차를 생각했으나, 이모저모 고민 끝에 당근을 통해 웨건을 구입했다. 나 혼자 힘으로 옮기기에는 좀 벅찬감이 없지 않으나, 태우고 밖에 나가니 행복이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엊그제 처음 나 혼자 싸복이 남매를 데리고 나가 보았는데, 좀 힘들긴 해도 할 만 했다. 쉽진 않지만, 셋이서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앞으로는 부지런히 나가보려 한다.


기분 좋아 보이는 행복 씨, 그 뒤로 왠지 불만스러워 보이는 싸이 군.

안 그래도 엄마바라기였던 행복이는 아프고 나서는 한층 어리광이 심해졌다.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어린애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런 행복이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매일 점심시간에 집에 들르긴 하지만,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반면 출근을 해야 되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때도 많다. 힘들어하는 행복이를 꼼짝없이 지켜봐야 하는 일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행복이를 두고 저런 생각을 하는 나의 사랑이 참 얄팍하다. 행복이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수혈 중인 행복 씨, 그 와중에도 손 잡아달라 함^^

2차 수혈을 받고 왔다. 1차 때는 극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보였는데, 조금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남은 시간을 잘 버텨내고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행복이도. 


나도 행복이가 내게 준 만큼의, 큰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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