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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l 20. 2017

싸복이 남매 혹은 연인(?)

2마리를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암수였으면 했다. 


그냥 왠지 그래야 둘이 사이가 더 좋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둘을 1주일의 시간차로 입양했다. 나는 싸이와 행복이를 남매로 설정했다. 우리가 진짜 혈연관계(?)는 아니라 해도, 난 어쨌든 엄마니까 말이다. 6개월 앞서 태어난 싸이가 오빠, 행복이가 여동생이 되었다. 함께 지낸 지 5년, 암수여야 사이가 좋을 것 같다는 나의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너무 정확히 들어맞아 도가 지나친 것이 탈이라면 탈일까. 남매로 설정한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째 둘이 연인 사이가 된 것 같다. 꽁냥꽁냥 상호 간의 애정표현이 장난이 아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매일같이 깨 볶는 냄새라니. 이것 참. 이렇게 난감할 때가. 


애기 때도 이리 사이가 좋았다. 행복이와 싸이가 덩치가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니 ㅎㅎ

반려동물 여러 마리와 함께하는 집이 많다. 키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두 마리 이상일 때 사이가 좋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싸이를 입양한 유기견 보호소 인터넷 카페에 자주 들르는데 나는 우리 싸복이 남매처럼 사이가 좋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매한가지다. 서로 소 닭 보듯이 투명 개(?) 취급하는 경우도 많고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의 기에 눌려 지내는 경우도 있다. 초보 반려견 엄마였던 나는 대개 다른 집도 이리 사이가 좋은 줄 알았다. 함께한 지 5년, 지금은 내가 참 드문 복을 누리고 있다는 걸 안다. 싸복이 남매가 나에게는 복덩이인 것이다.


귓속 핥아주시는 중. 청소해 주는 건지 뭔지 어멍이 말려도 딱 붙잡고 저리 열심히 핥아주신다. ㅎㅎ

개들이 핥아주는 건 먹이를 구하는 행동이기도 하고 또 애정표현이기도 하다. 우리 싸이는 그렇게 행복이를 열심히 핥아준다. 눈이고 귓속이고 입이고 특히 발꼬락을(꼬순내가 좋은 건가?). 반면 행복이는 절대 싸이를 핥아주지 않는다. 행복이의 최대의 애정표현이라면 킁킁대며 싸이의 냄새를 맡는 정도. 대신 행복이는 내 주댕이만 보면 그렇게 핥아댄다. 반면 내가 뽀뽀하자고 들면 죽어라고 얼굴을 피한다. 아니 핥는 거랑 뽀뽀랑 뭐가 다르나. 그게 그거구먼. 아주 내가 입술만 들이대면 피하기 바쁘고, 엄마 얼굴만 보면 혓바닥을 날름거리기 바쁘다. 아무래도 밥 달라는 행동인 것 같다. 하지만 싸이는 어멍에게 혀를 내주는 데(?) 인색한 편. 오로지 행복이만 열심히 핥아준다. 


눈 핥아주시는 중. 집에 웹캠이 설치되어 있는데 가끔 보면 어떤 날은 유독 더 열심히 핥아준다.

싸이는 처음부터 행복이에게 참으로 애틋했다. 내외했던 건 딱 1주일뿐. 1주일 지켜본 후 사랑에 빠진 것 같달까. 어멍을 두고 행복이와 경쟁하는 사이이긴 해도, 또 때론 행복이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행복이를 쳐다보는 눈에 꿀이 흐른다. 종종 행복이만 데리고 병원에 갈 일이 있는데, 이때가 유일하게 싸이와 행복이가 헤어지는 순간이다. 집에 도착하면 나보다 행복이를 더 반가워한다. 내가 살짝 서운할 정도로. 반면 행복이는 어멍에게는 집착하면서도 싸이에게는 시크한 편이다. 그나마 처음보다는 싸이에게 마음을 많이 열었다. 싸이의 정성에 감동했던 걸까? 그래도 싸이가 발가락을 핥아줄 때면 아주 귀찮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착한 행복이, 한 두 번 발을 챗 트린 후(하지 말라는 신호다), 대개는 그냥 가만히 참아준다.


발꼬락 핥아주시는 중. 귀찮고 그저 졸린 행복이. 안 했음 싶은데 ㅋㅋ 그냥저냥 잘 참아준다.

둘이 다정한 모습을 보는 것이 참 행복하다. 사진으로 많이 남기고 싶지만, 카메라만 들이대면 알아채는 예민한 싸이 때문에 쉽지 않다. 싸이는 행복이 옆에 앉을 땐 다정하게 팔을 걸고, 추운 겨울엔 행복이에게 기대는 걸 좋아하며, 행복이가 앉아 있으면 그 팔 사이로 궁둥이를 쓱 드밀기도 한다. 나한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행복이에게도 배를 까뒤집어 애교를 부리고 먼저 놀자고 덤비는 것도 당연히 싸이다. 가끔 파고드는 쓸데없는 불안감. 둘 중 누군가가 먼저 떠나면 남겨진 우리들은 참 슬프겠다 싶다.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만큼, 딱 그만큼.


대개는 행복이 몸에 밀착하는(?) 것도 싸이다. 행복이 팔을 걸거나 나란히 앉거나 어딘가에다 꼭 몸을 붙이고 앉는다.

견종과 체구를 초월한 '로맨스' 아닌 로맨스다. 어멍은 둘을 남매라 부르지만, 누가 봐도 싸복이 남매는 연인임에 틀림없다. 애정공세에 적극적인 신랑과 무심한 척 짐짓 사랑을 받아주는 신부 같달까. 잔디밭에서 둘이 정말 흥겹게 뛰어놀 때가 있다. 누가 보면 개싸움 난 줄 알정도로 흥이 절정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이 행복한 시간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이의 관절이 조금만 더 버텨 줬으면 좋겠고, 싸복이 남매가 조금씩만 덜 늙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망도 가져본다. 흐뭇함 반 걱정 반 속에 싸복이 남매와 나의 일상이 이렇게 흘러간다. 


싸이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다. 행복이에게 팔짱 끼는 걸 엄청 좋아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정한 싸복이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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