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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n 23. 2017

골든 리트리버의 탈을 쓴 행복이

'골든 리트리버'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로망이었다. 


행복이와 함께한 지 5년, 그렇다면 나는 꿈을 이룬 셈이다.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왜 굳이 골든 리트리버 여야 했는지?" "특정한 품종에 대한 집착이 아닌지?" '똑똑하고 순하고 까칠하지 않으며 얌전하고 귀엽게 생긴 강아지'가 아마도 나의 '로망'이었던 것 같다. '맹인 안내견'을 한다는 골든 리트리버가 그런 강아지일 거라고 짐작했을 거다. 여러 가지 단편적인 정보를 통한 인식이 굳어져 로망이 된 것 아니었을까. 결국, '똑똑하고 순하고 까칠하지 않으며 얌전한' 강아지와 살고 있냐고? 아니 아니, 천만의 말씀. 원래가 '이상'은 '현실'과 크나큰 괴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의 함정이라는 것. 


산책 중인 행복 씨. 내 눈엔 근사하고 멋있어 보인다. 이런 순간 바람이라도 불어 털까지 날려줄 땐 나름 골든 리트리버(?) 스럽다. 이럴 때만^^

일단, 행복이는 '똑똑하지가' 않다. 기본이 실외 배변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똥오줌 못 가린다면 긴 설명이 필요 없겠다. 안 써본 방법이 없고, 별의별 짓을 다해봤지만 아주 깨끗하게 포기했다. '뇌가 맑은 애다'라고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편하다. 덕분에 집에 돌아오면 첫 번째 하는 일은 행복이가 거실에 싸놓은 '오줌 홍수'를 치우는 일. 한 달에 2~3번쯤 기적적으로(?) 안 싸는 날이 종종 있는데, 그런 날은 계 타는 날. 똥까지 싸 놓는 날은 운수 나쁜 날, 되시겠다. 골든 리트리버가 똑똑한 게 아니고, 일부 특정한 몇몇의 골든 리트리버가 똑똑한 것. '특정 품종이 똑똑하다'라는 편견을 멋지게 깨준 행복아~ 엄마가 눈물 나게 고맙다 ㅠㅠ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중.  앉아 있다가도 내가 궁둥이를 들어 집으로 들어 보내려고 하면(불러도 안 들어오므로) 저렇게 몸을 눕힌다. 저럴 땐 진상도 저런 진상이 없다.

골든 리트리버는 사회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복이는 당연히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데(여기서도 노인은 예외다. 울 엄마 아버지도 싫어한다 ㅠㅠ) 다른 개들은 너무너무 싫다. '사회성'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지. 싸복이 남매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일인 나는 아주 동네 개들과 마주칠까 봐 늘 노심초사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짖어대기 때문이다. 아, 꼴에 대형견이라고 목청은 뱃속에 확성기를 품은 양 우렁차다. 언제가 걸어서 집을 나서던 날, 7분여 거리 동네 초입에서도 행복이 짖는 소리가 들려 식겁했던 적이 있다. 시골이기에 망정이지 도시였으면 민원 속출이었을 거다.


침대에 올라오긴 여러모로(?) 귀찮아 늘 얼굴만 올린다. 사람 몸에 치대길 좋아하는 행복이스럽게 내 발에 치대는 중.  엄마꼬순내가 그리 좋으냐. 

골든 리트리버는 물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다. '물'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고 알고 있었고, 인터넷에서 여름이면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들어앉아 있는 리트리버를 본 적도 있다. 목욕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행복이를 보며, '그래 목욕과 수영은 다르지 않겠어'라며 일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나. 거금을 들여 실내풀장을 구입했다. 물을 채우고 행복이를 집어넣으려는데, 아뿔싸. 거기 들어가면 죽는 줄 아는 건지, 겁보 행복이는 실내풀장에 들어가길 한사코 거부한다. 어라, 이게 아닌데. 거금 들여 산 실내풀장은 지금 우리 집 보일러실에 짱 박혀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포기하지 않던 나, 큰 맘먹고 친구와 강아지 수영장에 놀러 갔다. 역시 우리 행복이는 골든 리트리버가 아니었다. 아주 물에만 집어넣으면 죽는 줄 알고 겁먹고 꺼내 달라고 난리다. 어쩔 수 없이 애 잡겠다 싶어 수영장에 집어넣는 걸 포기한 나. 돈이 아까워서 그럼 우리라도 수영장을 쓰자며, 수영 좀 해보려는 찰나, 아주 난리난리 개 난리가 났다. 빨리 나오라고. 싸복이 남매가 수영장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짖어대며 난리를 치는 통에 남들 보기 민망해서 그냥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ㅠㅠ


사진은 그럴싸하게 나왔지만, 내 눈에 보인다. 저 겁에 질린 눈망울과 죽지 않기 위한 사지의 놀림. 앞으로도 영원히 수영하는 행복이는 보기 힘들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3대 천사견과 3대 악마견이 있다. '골든 리트리버'는 3대 천사견에 속한다. 인내심이 강하고 성품이 부드럽고 사고를 치지 않는다고 한다. 에이 그럴 리가. 행복이는 '저지레'가 장난이 아니었다. 침대 매트리스, 다리미, 전기장판, 각종 가구(장식장, 소파, 식탁), 기타 등등. 행복이가 물어뜯어 못 쓰게 된 물건들이다. 기억을 못 해서 그렇지 아마 훨씬 많을 것이다. 이전 집에서는 도배와 장판을 다 물어뜯어 고스란히 도배장판 값을 물어주고 왔다. 방충망도 신발장도 못 쓰게 만들었는데, 그건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것이어서 그럭저럭 집주인과 타협해 넘어갔다. 그 이전 집에서는 교체하기도 애매한 문지방을 다 갉아먹어서 아주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5살이 된 지금은 정말로 다른 행복이가 된 것 마냥 '저지레'가 확 줄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엄마 정신 차리라고 물고 뜯는다.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되시겠다.


순딩 순딩하게 나온 사진이다. 사실 우리 행복이가 착하긴 하다. 아니, 착하기만 하다.

싸복이 남매를 키우면서 원래도 없었던 강아지 품종에 대한 편견은 확 사라졌다. 단 하나, 리트리버 다운 것이 있다면, 입에 뭔가를 무는 걸 좋아한다는 것. 원래 리트리버가 사냥감을 물어오던 일을 하던 품종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저 리트리버 다웠던 유일한 특성은 '죽은 쥐'와 '죽은 새'를 입에 물어 나를 기함하게 했던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막 때리고 개난리를 쳐도 안 놓아서(나 원래 강아지 때리는 사람 아니다), 결국 강제로 입을 벌려 내 손으로 직접 죽은 쥐를 처리했다. 행복이덕에 별 경험을 다해 본다. 


빨래를 개야 하는데 ㅠㅠ 이렇게 엉겨 붙으면 엄마가 어떻게 빨래를 정리하니. 싸이야~ 너 밑에 깔고 앉은 거 엄마가 개놓은 엄마속옷 아니니. ㅠㅠ

사람도 개개인마다 고유의 품성과 성격이 다 다르듯이, 강아지도 매한가지라는 걸 싸복이 남매를 키우며 알았다. 행복이가 골든 리트리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고유한 행복이 이기 때문에 행복이 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꿈꾸었던 대로 ''똑똑하고 순하고 까칠하지 않으며 얌전한' 강아지는 결코 아니지만 '멍청하고 다소 순하며 깨 발랄 오두방정스러운' 나름 매력이 있는 강아지와 살게 되었다. 연애나 결혼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 처음 관계가 시작되었던,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체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행복이와 함께하며 나는 세상사는 중요한 이치 하나를 깨닫는다. 다소 모자란(?) 엄마를 성장시켜주는 아주 고마운 행복이다. 나는 오늘도 '순진무구 똥꼬 발랄'이 매력인 행복이와 '골든 리트리버보다 백배쯤 똑똑한' 싸이와 깨를 볶는다. 그렇게 우리 셋의 일상이 흘러간다.


날도 더운데, 둘이 아주 시시때때로 엉겨붙어 있다. 얘들아~ 니들은 덥지도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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