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가 '싸이'로 불리게 된 이유

by 달의 깃털

우리 싸이는 유기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기되었다가 구조된 엄마에게서 태어나 날 때부터 유기견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된 경우다. 싸이의 엄마가 임신한 채로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싸이를 처음 만난 건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였다. 그 당시 난 강아지를 홍역으로 잃고 서서히 유기견 문제에 눈을 떠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국 반려동물사랑 연합'이라는 유기견 사설 보호소 인터넷 카페에서 싸이를 만났다. 싸이의 엄마는 4남매를 낳았다. 원이, 싸이, 세찌, 모찌. 2개월령에 입양 공고가 올라왔다. 그때 싸이를 처음 보았다. 너무 예뻤다. 4남매가 모두 다. 하지만 섣불리 강아지를 입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3~4개월 후에 입양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2개월 때쯤. 카페를 뒤지고 뒤져서 우리 싸이의 애기 때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우리 싸이도 저런 앙증맞은 시절이 있었다니^^

그렇게 싸이는 내 기억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카페를 통해 종종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4남매는 모두 가정집에서 임시보호 중이었다. 싸이는 4개월령에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 카페 회원의 집으로 갔다. 거기서 '파보장염' 판정을 받았다. 치사율이 40%에 이르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카페를 통해 아파트 베란다 철장에 격리된 채 파보와 싸우고 있는 싸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싸이는 그 무서운 '파보장염'을 거뜬히 이겨냈다. 임보 엄마가 일기에 '감기처럼 쉽게 파보장염을 앓는 아이라고 의사쌤이 이야기했다' 고 썼던 걸 읽었던 기억이 있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라서 파보도 쉽게 이겨냈던 걸까. 싸이는 지금도 병원 한 번 가는 일 없이 건강하다. 아주 단단하고 옹골찬 것이 앞으로도 아픈 데는 없을 것 같다.


이때가 아마 3~4개월령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위의 사진보다는 젖살이 제법 빠졌다.ㅎㅎ

싸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 '싸이'라고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가수 싸이가 연상되는 이름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개월 동안 '싸이'로 불렸는데, 이름을 바꾸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고민 끝에 이름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간혹 왜 이름이 '싸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가수 '싸이'를 좋아하냐고도 묻는다.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사람들이 있는데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행복이'만 불렀다. 왠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강아지 이름 중에 결코 흔치 않은 이름일 것이다. 왜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싸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일까.


우리 집에 오기 전 임보 엄마 집에서 찍은 사진. 육 개월 때쯤.

유기견 구조활동을 벌이는 사설단체들이 많다. 이들은 새로운 유기견구조하면 매번 이름을 붙여야 한다. 생각해보라. 가정에서 입양한 강아지 이름을 짓는데도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유기견 구조하는 분들은 그 많은 강아지들 이름 짓기가 얼마나 곤란할 것인가. 앞서 싸이 4남매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원이, 싸이, 세찌, 모찌' 기가 막히지 않은가. 완전한 돌림자를 쓴 것도 아닌데, 누가 들어도 한배에서 나온 남매라는 생각이 들도록 이름을 지었다. 탁월한 '네이밍 센스'다. 과연 유기견 구조활동을 하는 단체의 회장님 다운 저력이다.


아마도 이 사진을 보고 싸이에게 '흠뻑' 반해서, 선뜻 입양을 결정했을 거다. 역시 임보엄마가 찍어준 사진

이왕에 유기견을 데려올 바에는 남들이 입양을 꺼리는 강아지를 데려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초보 반려견 엄마. 처음부터 장애가 있거나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강아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사숙고 끝에 싸이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믹스견은 입양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아지 '품종'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대개 임시보호를 데려가는 강아지도 품종 견인 경우가 많다. 입양 전제 임시보호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임시보호를 통해 홍보하고 빨리 입양 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입양이 쉬운 아이들이 먼저 임시보호 대상이 된다. 유기견 보호단체에서는 아무에게나 쉽게 강아지를 내주지는 않는다. 나의 경쟁자들은(그러니까 싸이 입양의사를 밝힌 사람들은)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임보 엄마는 그중에서 내가 제일 낫다고 판단했고, 나에게 싸이를 보내주셨다. 이렇게 해서 싸이와 나는 한가족이 되었다.


이제 5살, 늠름한 청년이 된 싸이. 언제나 듬직한 나의 큰 아들.

해마다 유기되는 강아지가 백만 마리란다. 그중 많은 수가 안락사된다. 구조되어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되는 강아지는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얼마 전에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이 '사람들이 많이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생명'을 거두는 일, '생명'과 함께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백만 마리의 유기견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강아지를 물건처럼 다루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명'을 쉽게 돈 주고 살 수 있 시스템에, 쉽게 얻었으니 버려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더해 유기견 백만 마리 현상이 벌어진 것 아닌가 싶다. 싸이가 '싸이'라는 다소 민망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좀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우리 같은 인간의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고, 약육강식의 맨 윗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약한 생명을 하찮게 대하는 이기심.


둘은 오늘도 다정하게 깨를 볶는다. 요즘 부쩍 애정행각이 짙어져 싱글인 엄마를 외롭게 하는 싸복이 남매 ^^

이러나저러나 5년 동안 함께 살다 보니 이제 나도 '싸이'가 입에 아주 찰떡같이 붙는다. 부끄러워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했던 내가 더 이상 아니다. 이젠 어디서나 당당히 부르고 '짜이~ 짜이짱~'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해서도 부른다. '싸이'면 어떻고 또 다른 이름이면 어떻겠는가. 언제까지나 의젓하고 점잖은 나의 듬직한 맏아들인 것을. 싸이야~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너는 나에게 선물 같은 존재야. 네가 비록 유기견으로 태어났지만 너무나 소중한 생명이란다. 우리 행복이와 함께 셋이서 오래오래 깨 볶으며 살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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