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 겁보 행복이

by 달의 깃털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견을 무서워한다. 행복이(30킬로)와 싸이(6킬로)를 데리고 다녀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싸이는 극렬하게 짖어대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반면, 행복이는 한 번만 '왈'하고 짖어도 사람들이 기겁을 한다. 워낙 빅 사이즈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대형견을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을 알 것이다. 일부 맹견을 빼고는 대체적으로 순하고 착하고 성격이 좋다. 오히려 소형견들이 까칠하고 성깔 있는 경우가 많다. 행복이는 싸이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한 번 보지 못했다. 당연히 나에게도 그렇다. 싸이는 행복이에게 자주 이빨을 드러낸다. 드물긴 하지만 나한테도 그런다. 스스로가 충격받고(내가 엄마한테 감히?) 금방 꼬리를 내리긴 해도.


KakaoTalk_20170608_152343120.jpg 졸려 죽는데도, 어떨 땐 자면서도 장난감을 놓지 않는다. 싸이는 그런 법이 없는데,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가 싶다.ㅎㅎ

대형견 중에 제대로 덩치값 못하는 애들이 있다. 우리 행복이가 그렇다. 아주 겁 많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첫 번째, 개들을 아주 무서워한다. 어릴 때 목줄 안 한 진도 2마리에게 맹렬하게 공격당한 적이 있다. 많이 놀랬던지 행복이는 그날 밤 악몽을 꾸는 듯 잠꼬대를 심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골든 리트리버 답지 않게 아주 개들이라면 싸이 빼고는 질색팔색이다. 동네 산책이 일인 나는 늘 다른 개들을 마주칠까 노심초사다. 맹렬히 짖어 대 동네 창피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핏 속에 맹견의 성품이 자리 잡고 있는 줄 알았다.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온 옆 집개와 싸움이 붙은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잘 안다. 다른 개가 너무너무 '무서워서 라는 걸'. 사실은 겁쟁이 중에 겁쟁이라는 걸.


늘 지나다니는 골목에 묶여 있던 진도가 있었다. 어느 날 새벽 산책길에 갑자기 목줄이 풀려 우리 개들을 공격했다. 다행히 위협만 하고 크게 물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행복이는 36계 줄행랑을 친다. 게으르고 몸이 무거워 좀처럼 뛰는 법이 없는 녀석이 말이다. 그럴 때마다 웃음이 빵 터진다. 그런 일도 있었다. 산책 코스 중에 풀어 키우는 개가 두 마리 있는 공장이 있다. 늘 그곳에 갈 땐 그 개들과 서로 맹렬히 대치한다. 좀처럼 달려들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하도 안 가겠다고, 그 개들에게 덤벼들겠다고 버틸 때가 많아서 하루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목줄을 놓았다. 잠깐 그 개들에게 뛰어가는 가 싶더니 다시 엄마한테 맹렬하게 뛰어온다. 그러니까 나 믿고, 목줄 믿고 그렇게 까불었던 거다. 속내는 아주 무서워 죽겠는 거지. 그날 이후 버틸 때마다 나는 목줄을 놓는다. 그러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엄마한테 되돌아온다. 아주 혼자 보기 아까운 진 풍경이다.


KakaoTalk_20170608_152343843.jpg 다른 개들처럼 '손' 달라하면 주는 게 결코 아니다. 늘 먼저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쓰다듬어 주는 것보다 손잡는 걸 더 좋아하는 행복이.

두 번째, 높은 곳을 너무나 무서워한다. 몸무게 30킬로의 대형견, 날렵하진 않다 해도 다리 길이만도 만만치 않을 텐데. 침대도 무서워서 아주 끙끙대며 올라간다. 우리 집 마당에 테이블이 하나 있고, 싸복이 남매는 거길 올라가길 즐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올라가기까지 수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어느 날이었다. 처음으로 테이블에 행복이가 올라간다. 어랍쇼. 그런데 내려오질 못한다. 설마 무서워서일까 했는데, 무서워서였던 거다. 내가 내려줬다. 다행히도 그날 이후 테이블은 그럭저럭 잘 내려온다. 그런데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탈 때는 혼자서 못 올라탄다. 내가 올려줘야 한다. 내 차가 4륜 구동이나 되냐고? 아니다. 내 차는 모닝이다. 처음에는 혼자 힘으로 내려오지도 못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지금은 그나마 내릴 때는 스스로 내린다. 그런데 죽어도 혼자는 못 탄다. 30킬로짜리 빅사이즈 아기를 키우는 기분이다. 차에 태울 때마다 앞다리를 걸친 후, 궁둥이를 들어 올려줘야 한다고 하면 누가 믿을지 모르겠다.


KakaoTalk_20170608_152344180.jpg 테이블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것만도 고맙다. 테이블이 높냐고? 아니 절대 밑에 의자가 있어 결코 높지 않다.

딱 한 번, 행복이가 스스로 차에 올라탄 적이 있다. 강아지 운동장에 놀러 갔다. 그곳에 위탁 대형견들이 많았다. 주차장 바로 옆에 대형 견사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 개들을 보고 쫄았던 행복이. 집에 갈 때가 되었다.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던 행복이가 차 문을 열자마자 아주 잽싸게,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그 날 이후, 이제 스스로 올라타려니 기대했다. 역시나 행복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그 날 이후 나는 그렇게 민첩한 행복이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KakaoTalk_20170524_163847207.jpg 엄마가 거실 침대에 있다. 올라가고 싶다. 허나 귀찮다. 몸이 무겁다. 그래, 얼굴이라도 올려놓자. '내가 거실 침대에 있을 때 침대로 올라오기보다는, 얼굴만(?) 올려놓는 행복이

밖에 나가면 특히 무서워서 엄마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으려는 행복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싶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할 내 업보인 것이다. 크나큰 업보이지만 내겐 기쁨이기도 하다. 겁보에다 쫄보면 어떤가. 그냥 행복이 그 자체, 그 존재만으로도 좋다. 행복아~ 다 좋은데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차에는 좀 스스로 올라타면 안 될까? 무거워서 엄마 허리 나갈 것 같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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