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싸복이 남매와 나의 일상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병원문턱을 닳도록 드나들던 행복이가 요즘에는 건강하고, 행복이에게 잔인한 계절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고, 싸이는 늘 그렇듯 무탈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산책 갔다 부지런히 출근하고 퇴근해서 싸복이남매와 잠들 때까지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는 규칙적인 일상.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가 지루할 법도 하지만 싸복이 남매와 함께 하니 매일매일이 조금은 특별하다. 당분간은 이 평화가 지속되길 빌어본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함께 키우는 경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이가 좋기란 쉽지 않다. 싸복이 남매는 유별나게 정이 좋다.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어멍이 질투가 다 날 정도. '꽁냥꽁냥'이 도가 넘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카메라만 들이밀면 싸이가 움직이는 통에 사진으로 일일이 다 옮길 수 없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
행복이는 나한테 치대는 걸 좋아하고, 싸이는 행복이한테 치대길 좋아한다. 행복이의 팔이 됐든 배가 됐든, 궁둥이가 됐든. 어디든 밀착해 기대곤 한다. 반면 싸이는 섭섭할 정도로 나에게는 잘 치대지 않는다. 집에 갓 들어왔을 때만 빼고.(이때는 어멍이 다소 반갑다) 가끔 생각한다. 싸이는 어멍보다 행복이를 더 좋아하는 건 아닐까.
기대는 것이 다가 아니다. 애정표현도 서슴없다. 싸이는 행복이를 늘 핥아준다. 입도 눈도 귓속도 발가락 손가락도. 귓속을 하도 열심히 핥아대서 귀지가 없을 지경이다. 가끔 출근해서 웹캠으로 살펴보면, 어느 날은 정말 열심히도 핥아준다. 그리고 어멍이 출근 후 둘이만 있을 땐 좀처럼 떨어져 있는 법이 없다. 늘 일 미터 이하 거리를 유지하는 다정한 싸복이 남매다.
싸이는 여전히 마당에만 나가면 집 밖 감시에 여념이 없다. 도대체 뭐하겠다고 저렇게 망을 보는 건지. 가끔은 정말 궁금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집을 지키는 건지.
행복이는 '집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1도 없이 천하태평이다. 어멍이 마당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멍이 마당에 있으니 집안에 있긴 싫다. 하지만 한낮이라 해가 뜨겁다.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럴 땐 현관에 자리를 잡는다. 그늘진 타일 바닥이라 제법 시원하거든. 아, 마당 있는 집 현관이 얼마나 더러운데.
이제나 저제나 어멍이 일 끝나고 들어오길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다. 한참 일하다 행복이는 도대체 어디 있나 찾아보면 저렇게 자고 있다. 혼자서 빵 터진다. 혼자 보기 진짜 아깝다. 너저분한 모기장 문과 더러운 현관, 초라한 행복이 행색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개그지' 꼴이 따로 없구나.
퇴근 후 잠시 잠깐 테이블에 올라 망중한을 즐긴다. 하루에 단 5분,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싸복이남매는 언제부턴가 테이블에 올라가길 즐긴다. 싸이는 망보러(멀리까지 보이므로) 올라가는 것 같고, 행복이는 그냥 덩달아서(아무 생각 없이 아니면 바람이 시원해서) 올라가는 것 같다. 간혹 턱 괴기 좋아하는 행복이는 나에게 몸을 치댄다. 엄청 육중하고 무겁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하다. 이제 저 여유도 끝날 때가 됐다. 곧 모기가 떼를 지어 출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저런 여유도 부릴 수 없다. 일 년 중 단 몇 개월만 허락된 시간. 짧게 허락되는 망중한이라 우리에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싸복이 남매의 뒷모습은 여전히 닮아 있다. 틈만 나면 열심히 창밖을, 마당을 쳐다본다. 애들아~ 마당 없는 집에 살았음 심심해서 어쩔 뻔했니? 어쨌든 저쨌든 싸복이 남매와 나는 '마당 있는 집'에 살 운명이었던 거다. 그런 거지?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