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개들의 슬픈 운명

by 달의 깃털

나는 시내에서 10분 남짓한 시골마을에 산다.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집이 많은데,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집은 우리 집뿐이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라고 한다. 일부 반려동물은 사람보다 더한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반면, 시골에는 여전히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개들이 많다. 반려동물계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16061212464_e36698af91[1].jpg 마산 유기견 보호소 사진(해마다 버려지는 유기견은 10만 마리라고 한다.)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시골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동네에는 1미터 목줄에 매여 제대로 햇볕이나 추위도 피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사는 개들이 대부분이다. 조금 사정이 나은 경우라면 우리(뜬 장)에 가두어 놓고 키우는 경우나, 목줄 없이 그냥 대책 없이 풀어놓고 키우는 경우다. 이사 초기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아직도 큰 트럭을 끌고 다니는 개장수가 있다는 것도, 여전히 묶어놓고 방치하면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충격이었다. 대형견을 그냥 풀어놓고 키우는 집도 있었다.(도시 같으면 상상 못 할 일이다.) 작은 개들을 풀어놓고 키우는 몇 집도 있다. 때론 암수를 같이 키우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집 개는 계속 임신을 한다. 새끼가 태어났구나 하면 얼마 후엔 성견이 되어 있고, 그 이후에는 대개 보이지 않는다. 필시 개장수에게 팔려갔을 것이다. 이래저래 팍팍한 우리 마을 개들의 삶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무어라도 좀 해줄 게 없을까 하여, 마주칠 때마다 예뻐해 주고 쓰담해주고 간식도 챙겨주었다.


12589052255_4a3a95efea[1].jpg 우리 동네 블랙탄(진돗개의 일종) '탄이'는 실외견이긴 하지만 융숭한 대접을 받는 편. 대궐같이 큰 집이 있고 묶여 있지 않으며, 주인이 가끔 산책도 시켜준다.

동네 개들을 챙겨주다 보니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았다. 오가던 길에 예뻐하던 초롱이(내가 붙인 이름이다)를 어느 날부터 주인이 종종 풀어준다. 나를 좋아해 우리 집 허술한 울타리를 넘는다. 우리 개들은 엄청 싫어하고(싸복이 남매는 질투가 심해 다른 개들 예뻐하는 꼴을 못 본다), 초롱이는 거실 유리창 앞에 붙어 계속 앞발질을 해댔다.(나 나오라고) 진퇴양난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내 손으로 질질 끌어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여러 차례. 급기야 어느 날엔가 마당에 있던 우리 개들과 싸움이 붙었다. 예뻐했던 강아지를 빗자루를 들어 쫓아 버려야 했던 내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행복이야 덩치가 우람하니 별 걱정 없다 해도, 우리 싸이는 잘못 물리는 날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쓰러워 간혹 먹을 걸 챙겨주던 옆 옆집 진도는 어떠한가. 역시 우리 집 담을 넘어 행복이와 개싸움이 붙었다.(골든 리트리버가 온순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우리 행복이가 투견인 줄 알았다.) 싸이를 공격해서 두 군데가 살짝 찢어졌다. 맨손으로 개싸움을 말렸던 나는 어떠했던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지금은 두 마리다 개장수에게 팔려간 지 오래다. 어느 날 가 보았더니 자리가 깨끗이 치워져 있다.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건 이후 울타리를 보수했다. 또다시 개싸움이 벌어질까 봐.


5427240513_b789e8dccb[1].jpg 쪼그마한 발바리를 풀어놓고 키우는 동네 할머니가 계신다. 얼마 전부터 개가 안 보여 물어보니 다른 동네 가서 죽었단다. ㅠㅠ 며칠 전 그 개와 똑 닮은 새끼 강아지를 데려오셨다.ㅠ

심지어 이웃집엔 개장수가 산다. 취미 삼아 새끼 강아지를 받아다가 크면 팔고, 어미개도 팔고, 매번 그런 식으로 개가 바뀐다. 이사 초기 이러저러한 갈등으로 아는 척 조차 하지 않는 이웃이어서, 싸움이 될 게 뻔하므로 뭐라 참견할 수도 없다. 어느 날은 억지로 개장수 트럭에 실리는 걸 봐야 하고, 어떤 날은 일찍 어미품을 떠난 새끼 강아지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찢어진다.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 나도 살기 위해 눈 감고 귀 닫고 산다. 나를 따르는 경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내 쪽에서 먼저 정을 주지는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한때 이웃집 개를 훔쳐 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훔치면 또 어찌할 것인가. 보낼 때도 없고, 내가 키울 수도 없는데. 이웃집 개가 보이지 않도록 그쪽으로는 울타리를 높였다. 집을 들고 날 때도 일부러 그쪽은 보지 않는다. 자꾸 보게 되면 애정이 생기고, 그러면 나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개는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 곁에서 음식을 얻어먹으며 살면서 진화되어온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고, 이 교감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개를 짧은 목줄에 묶어 방치하듯 키우는 것은 잔인한 학대다. 하지만 사람마다 각각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다르고 개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므로, 내 신념이나 가치관도 다르다고 해서 나무라거나 배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골살이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2905710091_2e4a04c281[1].jpg 짧은 목줄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채로 사는 개들이 너무 많다.

하루 1~2번 산책이 일인 나는, 동네 주민들 사정은 몰라도 동네 개들 사정은 아주 훤하다. 그중에 몇은 나를 많이 따른다. 발발이, 알래스카, 얼룩이. 모두 내가 붙인 이름이다. 발발이는 최근 두 번째 임신한 걸 봤는데, 요새 통 보이지 않는다.(어제 오래간만에 보았다. 새끼를 또 2마리 낳았다. 얘네들은 또 어찌 될는지) 알래스카와 얼룩이는 새끼일 때 풀어 키우다가 지금은 묶여 있다. 집 안쪽에 있는지 통 볼 수 없는데, 개장수에게 팔려갔나 싶을 때즘 한 번씩 목줄이 풀려 나의 새벽 산책길에 동행하곤 한다. 싸복이 남매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우리를 따라다니는데 보면 볼수록 마음이 너무 짠하다. 얼룩이와 사이에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는 또 어디로 간 건지. 그저 우리 동네 모든 개들이,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동물들의 신세가 그저 짠하고 또 짠하다.


4451145256_50b59d3029[1].jpg 나를 무척 따르는 우리 동네 발바리는 얼마 전 두 번째 새끼를 낳았다. 밖에 두기엔 너무 작고 예쁜데ㅠㅠ 나를 유독 따르니 마음이 더 아프다.

내가 자주 하는 공상이 있다. 눈먼(?) 돈이 생기면 동네 개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상상이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인을 설득해서 개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다. 우리를 만들어 주고, 목줄에서 풀어주고, 중성화 수술도 해주고, 가끔 찾아가서 간식도 주고, 개장수에게 넘기지 말라고 설득하는 그런 상상. 낯선 사람들과 말 섞는 걸 제일 싫어하는 내가 눈먼(?) 돈이 혹여 생긴 대도 저런 걸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사람보다 약한 존재라는 이유로 학대당하는 모든 동물들을 다 보살필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에 사는 개들만큼은 조금이라도 삶이 덜 팍팍했으면 하는 소망인 것이다.


26227119563_2e52455230[2].jpg '알래스카'는 허스키 믹스견인 것 같다. 그래서 알래스카라고 이름 붙였다. 꼭 이 강아지 비슷하게 아주 새초롬하고 예쁘게 생겼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요즘은 통 보이질 않는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물의 권리나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나와 함께하는 동물은 눈을 마주치며 예뻐하면서, 어떤 동물은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현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신념은 나의 현실적인 생활과 갈등을 초래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해 내면을 불편하게 한다. 신념이나 가치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그렇다고 그저 눈감고 귀 막고 사는 것이 정답인 걸까. 여전히 나의 내면은 갈등 중이며, 오늘도 난 고민하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한다. 여하튼 소망한다. 힘없는 동물과 약자들의 권리와 복지에 좀 더 귀 기울이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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