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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Sep 28. 2017

싸이가 쓰는 반려일기

나는 싸이다. 


어멍과 동생 행복이와 함께 마당 있는 집에 산다. 7개월 때 어멍을 만났다. 벌써 5년은 됐나 보다. 처음 만났을 때 어멍이 딱히 맘에 들지 않았다. 살던 집을 옮겨가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하지만 눈치 빠른 난 어멍이 내 밥줄(?)이자 생명줄이라는 것을 즉시 파악했다. 이 집에 또 다른 '인간(밥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곧바로 비위 맞추기에 들어갔다. 크게 어렵지 않았다. 꼬리만 몇 번 흔들어 줘도 아주 입이 찢어진다. 배라도 잠깐 보여주면 숨이 꼴깍 넘어갈 판이다. 단순하기는. 맨날 행복이에게 '단순 무식'하다고 흉을 보는데. 내가 보기엔 어멍이 행복이보다 '단순하기로는' 한 수위다. 


함께 사는 행복이는 5살 된 골든 리트리버다. 어멍은 우리를 합쳐서 '싸복이 남매'라 부른다. 요상하다. 행복이는 내 각시인데. 왜 자꾸 우리를 남매라고 하는지. 나는 행복이가 참 좋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맘에 들었다. 축 처진 눈도, 확 늘어진 볼살도, 말랑말랑한 뱃살도, 두툼한 발바닥도. 모든 것이 내 눈엔 그저 예쁘다. 졸고 있는 것도, 침 흘리며 게걸스럽게 먹는 것도,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모습도 너무너무 귀엽다. 그렇다. 나는 사랑에 빠진 남자다.


행복이 없는 내 인생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우리 집이 참 좋다. 특히 마당이 좋다. 매일매일 현관문이 열려 있으면 좋겠다. 치사한 어멍은 자기가 귀찮을 땐 문을 안 열어준다. 마당에 나가서 사람들 오가는 것도 보고 바람도 쏘이고, 행복이와 뒹구는 것이 큰 낙인데. 휴우.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난 창가에 앉아서 늘 마당을 바라본다. 어멍은 도대체 언제 와서 현관문을 열어주려나.   


어멍은 도대체 언제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어줄라나. 행복이는 하루종일 잠만 자고 도통 놀아주질 않는다 ㅠㅠ

새벽 4시다. 어멍이 꿈틀거린다. 예민한 나는 어멍의 부스럭 소리에 잠이 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새벽 산책 시간이다. 흙냄새 풀냄새도 맡을 수 있고, 고양이 흔적도 좇을 수 있고, 여기저기 영역표시도 할 수 있어 산책이 참 좋다. 부지런한 어멍, 결코 새벽 산책을 거르는 법이 없다. 탐탁지 않은 점도 많은 어멍이지만, 부지런한 건 참 맘에 든단 말이지. 


산책나가기 전 레디 액션! 근데 제발 옷은 좀 안 입었음 좋겠다. 어멍은 왜 자꾸 옷을 입히는지.

어멍은 틈만 나면 우리를 보며 혀 짧은 소리를 해댄다. '싸이'라는 분명한 내 이름이 있는데, 나를 보고 자꾸 '짜이짱, 짜짜이, 싸군' 이런 식으로 제맘대로 불러대니 헷갈려 죽겠다. 가끔은 나더러 행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뭐, 일단 나는 어멍이 행복이를 부르는 듯해도 꼬리를 흔들고 다가가고 본다. 그러면 어멍이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멍의 비위를 맞춰줘야 맛있는 게 좀 나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누군가는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꼬리 풍차 돌리기는 뭐 쉬운 줄 아나. 세상에 공짜밥은 없다지만, 에휴 먹고 살기 참 힘들다.


밥 먹고 입술에 좀 묻혔다고 기념컷을 찍어야 한다고 난리다. 어멍은 여러모로 나를 참 귀찮게 한다.

어멍은 가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상스런 소리를 해댄다. 듣고 있노라면 참으로 품위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런 상느므쉐이들. 이느므 쉐키들 왜 이케 이뻐.' 얼핏 들으면 심한 욕 같은데, 다르게 들으면 칭찬 같기도 하고. 또 때론 '우리 짜이는 어떻게 이렇게 꼬치도 이뻐' 라며 자꾸 내 꼬치를 만지작 거리는데. 허걱. 이쯤 되면 어멍이 변태(?)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또 그런다. '우리 망둥이 꼴뚜기 강아지 잘 있었어? 오늘 하루 종일 뭐했쪄?' '우리 똥강아지 이 눔의 이쁜 똥강아지, 이렇게 이쁜 똥강아지는 어느 별에서 왔어?' 도대체 뭐라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냥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이다. 


뭔놈의 가구를 또 샀는지 설치기사가 왔다고 우리를 방에 감금시켰다.  거실에 나가고 싶다고.  우이씨.

단순 무식에, 씨알도 안 먹힐 애교를 장착, 게다가 변태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어멍과 살고 있는 내 팔자도 참 상팔자다. 사람들은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우릴 보며 '참, 팔자 좋다'라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 저런 어멍 비위 맞추는 게 쉽지 않지만 행복이 덕에, 행복이 보는 맛에 겨우 버틴다. 그래도 산책도 매일 시켜주고 맛난 것도 많이 주고 생각해보면 우리 어멍이 장점도 많긴 하다. 뭐 세상사 다 좋을 수만 있겠나. 그냥저냥 만족하며 사는 거지. 


오늘도 난 어멍을 기다린다. 아니 저녁밥(?)을 기다린다. 오늘은 언제쯤이나 어멍이 오려나. 왈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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