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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Sep 29. 2017

행복이가 쓰는 반려일기

나는 행복이다


마당 있는 집에서 어멍과 싸이 오빠와 함께 산다. 2개월 때 어멍을 만나서 5년을 함께 살았다. 한평생을 같이 산 셈이다. 나는 세상에서 어멍이 제일 좋다. 처음 볼 때부터 좋았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좋다. 밥 조금 주는 거랑, 산책 강제로 시키는 것 딱 2가지만 빼고. 히힛. 그것만 빼면 어멍은 완벽하다. 나는 어멍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궁둥이를 팡팡 두드릴 때, 배를 간질일 때 제일 행복하다. 특히 어멍과 손 잡는 게 좋다. 그런데 치사한 어멍은. 손길질을 한 네댓 번 해야 겨우 한번 손을 잡아준다. 인색하기 짝이 없다. 


누가 뭐래도 어멍이 좋다. 나는 어멍 바보다.

싸이 오빠는 오늘도 열심히 나를 핥아준다. 때로는 눈을 때론 입을 귀를 발바닥을 손바닥을. 너무너무 귀찮다. 도대체 왜 그리 열심히 핥아주는 건지. 처음에 한두 번 저항을 해보지만 매번 소용없다. 집념의 싸이 오빠. 이제 나는 그냥 포기했다. 뭐 될 대로 되라지. 그런데 제발 잠잘 때는 좀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 잠 좀 한 번 편히 자보는 것이 소원이다. 어멍이 없는 집에 둘이 있는 동안 싸이 오빠 때문에 잠을 편히 잘 수가 없다. 


졸려 죽겠는데 싸이 오빠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ㅠㅠ 내 발꼬락 냄새가 그리 좋은 거냐고.

새벽 4시다. 어멍이 꿈틀거린다. 한참 잘 시각인데. 눈을 뜰 수가 없다. 도대체가 어멍은 왜 그리 일찍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또 산책 가려나 보다.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차고 아, 나는 새벽 산책이 제일 싫다. 아직 자야 할 시간에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아픈 다리를 끌고 산책에 나선다. 가끔 주저앉으며 저항해 보지만 어멍의 필살기 '머리 쓰다듬어주기'에 넘어가 다시 궁둥이를 일으키곤 한다. 또 산책을 해야만 어멍이 밥을 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어멍을 따라나선다. 아, 진짜 먹고살기 힘들다. 


새벽에도 이미 산책했는데, 오늘은 한낮에도 나왔다. 힘들어 죽겠다 ㅠㅠ 

내가 누워 있으면 어멍은 꼭 그런다. '그렇게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 때론 '우리 행복이 강아지 말고 송아지 할 거예요?라고 어이없는 말도 한다. 우이 씨, 밥이나 많이 주고 저런 소리를 하라지. 내가 명색이 30킬로나 나가는데 밥을 너무 조금 준다. 내가 보기엔 6킬로짜리 싸이 오빠 밥이랑 별 차이가 안 난다.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배고프고 또 배고프다. 어멍은 나에게 매번 잠 많고 게으른 강아지라 욕하지만, 천만의 말씀, 난 게을러서가 아니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지쳐 쓰러져 있는 것뿐이다. 결코 자는 게 아니라고. 어멍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다.


나 결코 자는 중 아니다. 배고프고 힘들어서 지쳐 쓰러져 있는 거다. 자세히 보시라. 나 눈 뜨고 있다.

어멍은 나에게 틈만 나면 '저런 아무 생각 없는 뇌 맑은 아이'라며 놀려댄다. 아니 왜 자꾸 나한테 저런 모욕적인 말을 하는 건지. 내가 명색이 '똑똑하기로' 이름난 골든 리트리버란 말씀이지. 나도 나름 머리를 얼마나 쓰는데. 어떻게 뭐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머리 굴리느라 내 인생도 개피곤하단 말이다. 어멍은 바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다.


아무리 졸려도 장난감을 포기할 순 없다!!

저렇게 내 속은 눈곱만치도 모르는 눈치 없는 어멍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멍이 좋다. 세상에서 제일로 좋다. 밥을 조금만 줘도, 매일 산책을 시켜도. 잠잘 때 눈치 없이 놀자며 괴롭혀도 나는 그저 어멍이 좋다. 어멍 보는 낙에, 어멍 기다리는 낙에 산다. 


이제 슬슬 어멍이 올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언제 오려나. 왈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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