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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지키는 강아지, 싸이

by 달의 깃털

현관 앞에 다소곳이 앉는다. 큰 눈을 들어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이럴 땐, 꼬리는 결코 흔들지 않는다. 귀는 애처롭게 뒤로 착 젖히고 눈빛은 평소보다 차분하다. 바로 문 열어달라는 신호다. 마당에 나가고 싶으시다는 거다. 차라리 짖거나 보채면 밉기라도 할 텐데. 저럴 땐 귀찮아도 도저히 문을 안 열어줄 수가 없다.


KakaoTalk_20170929_135837649.jpg 어멍~ 현관문을 열어다오~ 밖에 나가고 싶구나~

강아지들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영역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한다. 너무 넓은 공간에 있을 경우 오히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내가 보기엔 강아지들이 모두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경향을 가진 건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강아지와, 그렇지 않은 강아지 있다. 우리 집을 예로 들자면 전자는 싸이, 후자는 행복이 되시겠다. 우리 싸이는 그렇게 열심히 집을, 마당을 지킨다. 반면, 행복이는 당연히(?) 아무 생각이 없다. 특히 영역을 지키겠다는 생각 따위는.


KakaoTalk_20170929_135835082.jpg 우리 집에서 제일 높은 장소 테이블. 싸이는 감시에 여념이 없고 행복이는 유유자적 바깥공기를 즐기는 중.

싸이는 집 안에서도 늘 창 밖을 주시한다. 강아지들 방석이 창가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집 앞을 누가 지나가는지, 저 50여 미터 아래 집에 자동차가 들어오는지, 옆집사람이 마당에 나왔는지, 우리 싸이는 귀신같이 알아낸다. 가끔 저렇게 신경을 많이 쓰니 삶이 참 피곤하겠다 싶을 정도. 마당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도 결코 놀고 싶어서가 아니다. 지키고 지키고 또 지키고 주시하고 또 주시한다. 인기척이 없을 때 높은 곳(테이블)에 올라가 감시하고, 인기척이 있으면 부리나케 달려가 격렬하게 짖어댄다. 사실 이런 싸이 때문에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 보는 이웃에게도 너무나도 맹렬히 짖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산책 중에 이웃을 만나면 잘 짖지 않는다는 것. 그런 걸 보면 싸이는 내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참으로 강한 강아지인 셈이다.


KakaoTalk_20170929_135834654.jpg 항상 대문 밑으로 집 밖을 감시하는 싸이 군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잘 때 빼곤 싸이가 널브러져 있는 걸 보기가 쉽지 않다. 뭔가를 먹을 때를 빼곤 늘 널브러져 있는 행복이와 참으로 대조적이다. 늘 귀를 쫑긋 세우고 밖의 기척을 주시한다. 반면 혼자 사는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기도 하다. 사실 나는 싸이 때문에 혼자 살아도 무섭지 않다. 저렇게 심하게 짖어대니 강도가 들어온다손 치더라도 웬만하면 무서워서 침입할 생각조차 쏙 들어가 버릴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싸이는 정말로 전생에 나한테 큰 공덕을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현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어멍'을 지켜주는 지도.


KakaoTalk_20170929_095720086.jpg 싸이야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들어갈까 나갈까 개 고민 중인 거야?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나. 저 사람과 나의 인연이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사람과 동물과의 인연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싸이와 나의 인연이 그렇다. 어쩌면 싸이는 나에게 딱 '맞춤 제작'된 강아지가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 고마움은 2배가 된다. 고마운 만큼 미안할 때가 많다. 웹캠으로 지켜보면 싸이는 오후가 되면 언제나 나를 기다린다. 화면으로도 그 간절함이 느껴진다. 여전히 쿨쿨 자고 있는 행복이와 대조적으로. 어쩌면 내가 싸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싸이가 나를 돌봐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는 너무나도 찰떡궁합,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필요한 존재들끼리 그렇게 정확히 만난 것일지도.


언제나 어멍을 지켜줘서 고맙다 싸이야~ 그런데 마당은 그렇게 열심히 지키지 않아도 돼.

마당은 '뛰어노는 곳'이란다.


KakaoTalk_20170929_135834392.jpg 언제나 든든하게 어멍을 지켜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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