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싸복이 남매와 어멍, 한 가족이 되다

by 달의 깃털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어릴 땐 늘 집에 강아지가 있었다.


우리 집을 거쳐갔던 몇몇 강아지 중에 유난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강아지, '삽살이'. 치와와 잡종이었던 '삽살이'는 내가 7살 때까지 같이 살았던 강아지다. 까칠하고 도도해서 사람을 그다지 따르지도 않았고 밥 먹는데 건드렸다 얼굴을 심하게 물린 적도 있다. 그래도 나는 '삽살이'를 꽤 예뻐했던 것 같다. 노환으로 기력이 쇠해 숨을 다해가는 삽살이를 엄마가 포대기에 싸서 뒤뜰에 눕혀놓았다. '삽살이 왜 그래?'라고 묻는 내게, 엄마는 '삽살이는 이제 다 늙었어.'라고 대답해주었다. '삽살이는 아직 죽은 게 아닌데.' 나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삽살이의 슬픔 가득한 커다란 눈망울을, 처음 마주친 죽음을 기억한다. 내 꿈 목록에 늘 강아지가 존재했던 건, 아마도 삽살이의 그 눈망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도 삽살이를 떠올리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해 본다.


180.JPG '싸이'를 보면 '삽살이'가 떠오른다. 삽살이와 닮아서 '싸이'한테 끌렸던 것일까?

혼자산 이후로는 줄곧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학대라고 생각했고, 이상하게도 아파트에서는 키우기 곤란한 '골든 리트리버'만 눈에 밟혔다. 늘 꿈만 꿨다. '언젠가 마당 있는 집에서 살면서 꼭 골든 리트리버를 키워야지.' 하며.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한 뒤 바로 골든 레트리버를 분양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어리석게 강아지를 키우려면 당연하게 '사야'된다고 생각했다. 양평에 있는 대형견을 주로 분양한다는 곳에 가서, 그렇게 '루나'를 데려왔다.


분양받을 때 그 사람들은 얘기했다. '아프다고 병원 데려가지 마세요. 가면 병만 더 옮아요' '아프면 병원 가지 말고 바로 전화하세요'라고. '루나'는 작고 사랑스러웠다. 2개월인데도 제법 똥오줌을 가렸고 내 무릎 위를 무척 좋아했다. 그런 루나는 정확히 우리 집에 온 일주일 뒤부터 설사를 하고 기침을 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런 루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그들에게 전화했다. 순진하게도 그들을 믿은 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처방대로 약을 사와 주사를 놓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루나는 나아지지 않았고, 조금씩 증세가 악화됐다.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 아픈 기억 하나, 출근 전에 루나는 내 무릎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출근하기 위해 억지로 내려놓으면 끙끙대며 슬퍼했다. 그런 루나를 강제로 무릎에서 떼어놓는 일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그러다 하룻밤 사이 갑자기 먹은 것을 토하며 늘어졌다. 그때서야 나는 뭔가 많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홍역이라고 했다.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그날 오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루나가 죽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어떻게 이런 일이, 정확히 우리 집에 온 지 20여 일 만에 루나는 그렇게 거짓말처럼 내 곁을 떠나갔다.


아기 때의 행복이, 애석하게도 '루나'의 사진은 내게 없다. 루나도 이렇게 예뻤겠지.

나는 많이 울었고, 내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병원에 일찍만 데려갔더라도 '루나'는 지금까지 내 곁에 있었을까.

2개월밖에 안된 어린 루나를 그렇게 떠나보내며, 나는 비로소 반려견을 둘러싼 현실에 눈을 떴다.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고 했던 건, 보상기간인 15일을 넘겨보려는 상술이었다. 유기견의 존재를 잘 몰랐던, 아니 무관심했던 나는 강아지는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고, 상품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된 사건이었다. 루나의 죽음을 접하면서 앞으로 내가 반려견과 함께 한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4개월을 보내며 새로운 반려견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혼자 있을 강아지를 생각해, 이번에 두 마리를 함께 입양하기로 했다. 당연히 유기견을 데려와야 했지만, 나는 갈등했다. 새끼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아이가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가 없을 나는 아기 대신에 새끼 강아지가 필요했던 거다. '그래 딱 한 번만 새끼 강아지를 키워보자. 딱 한 번만.'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눈을 감았다. 골든 리트리버 '행복이'를 2개월 때 분양받았고, '싸이'는 한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7개월령에 입양했다. 싸이는 유기견 엄마한테서 태어났고, 믹스견이다. 사람들은 품종을 가린다. 그래서 믹스견은 입양이 어렵다. 4개월령에 치사율 40%인 파보장염에 걸렸다가 살아났다고 했다. 수많은 강아지들 중에 유난히 눈에 밟혔다. 그렇게 행복이와 싸이와 나, 우리 셋은 한 가족이 되었다.


270.jpg 함께 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싸이와 행복이

이제 '싸복이 남매'와 함께한 지 5년 여가 되어간다. 젖살을 주렁주렁 달고 나에게 왔던 싸복이 남매는, 이제 어엿한 청년과 숙녀가 되었다. 싸이와 행복이를 키우며 겪었던 시행착오는 노트 한 권을 채운 대도 다 모자랄 것이다. 다음부터 이 장에서는 행복이와 싸이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반려견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간 어떤 것을 느끼고 깨달았는지. 그리고 새끼 강아지를 키워보겠다는 내 욕심과 이기심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는지도.


싸이와 행복이,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가족. 사랑한다. 애들아. 엄마한테 와 주어서, 나의 가족이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