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두 마리를 함께 키운다는 것

by 달의 깃털

7개월이 되었을 때 싸이가 한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내게 왔다.


반려견 두 마리를 함께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각오를 다진 나는 일주일의 휴가를 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싸이는 나를 무척 따랐다. 집에 오고 나서는 내 뒤만 졸졸 따른다. 소소한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싸이는 금방 적응했다. 난생처음 키워보는 강아지가 마냥 신기했던 나는, 영민한 싸이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 싸이 모습, 중성화 수술 후 내가 만든 요상한(?) 팬티를 입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행복이를 데려오려 했지만,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늦게 도착했다.


두 마리를 키우기를 결심한 순간부터 내가 그렸던 풍경은 그런 것이었다. 두 마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 어라, 그런데 행복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싸이는 그냥 모른 척한다. 싸이는 행복이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엄마가 행복이를 쳐다만 봐도 엄청나게 질투한다. 싸이가 질투를 하니, 행복이는 예뻐해 주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행복이는 어려서 그런지 상황 파악이 안 되고 그저 해맑기만 하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본다. 저때만 해도 나는 왕초보 반려견 엄마였으므로. 이제는 안다. 두 마리 혹은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 강아지들이 서로에게 다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다행히도 영민한 싸이는 정확히 일주일 만에 마음을 열고 행복이를 받아주었다. 나는 그런 싸이가 지금도 많이 고맙다. 지금은 누구보다 다정한 싸복이(싸이+행복이) 남매다. 싸이는 행복이를 질투하면서도, 엄청 행복이를 예뻐라 한다. 처음에 덤덤하던 행복이도 이제는 싸이를 제법 의지한다.


470.jpg 우리 집에서는 아주 흔한 풍경, 다정하기가 흡사 연인 같은 싸복이 남매

두 마리를 키운다고 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두 마리면 두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두 마리 키우는 것은 한 마리 키우는 것보다 다섯 배쯤은 힘든 일이다." 그때는 귓등으로 흘려들었으나, 어린 싸복이 남매를 함께 키우며 뼈에 사무치도록 실감을 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일주일 동안 아무 물건에도 전혀 손대지 않던 싸이는 - 심지어 본인 장난감 조차 - 새롭게 입성한 행복이의 입질이 시작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모든 사건사고는 내가 집에 없는 순간에 발생하곤 했으므로. 게다가 행복이가 똥오줌을 못 가리니, 완벽하게 가리던 싸이도 종종 실수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다 나의 예상을 비켜간 일들이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집안은 엉망진창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지친 몸으로 집안을 정리하고, 또 싸복이의 입질과 똥오줌으로부터 집을 방어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해야만 했다. 3킬로의 작은 강아지였던 행복이 몸이 조금씩 커갈수록(?) 저지레와 입질의 사이즈도 커져갔다. 한번 구축한 방어선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수정해야만 하는 힘겨운 일상들이 이어졌다. 나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고, 금세 이건 내가 생각한 반려견과의 행복한 일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상상한 풍경은 오로지 내 곁에 '우아 고상하게' 앉아있는 귀여운 반려견과의 평화로운 일상이었던 것. 이것은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가. 아니다. 이상은 언제나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가 없는 법. 내가 파 놓은 무덤에 스스로가 빠진 꼴이었다.


179.jpg 구역제한을 위한 방어선, 뜯긴 벽지는 당연히 강아지들의 만행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물론 나 나름대로 루나를 떠나보내며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싸복이 남매를 입양했다. 그 시절 나는 조금 과장해서 매일 밤 울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힘에 부쳤지만, 단 한 번도 얘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겠다는 오기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란 믿음으로 저 시간들을 버텨냈다. 세월이 참 좋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청년이 된 싸복이 남매는 좀처럼 큰(?) 사고는 치지 않는 점잖은 성견이 되었다. 그 시절을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싸이와 '사이즈'가 유사했던 행복이는 지금은 얼굴크기만 싸이 세배인 우량견이 되었다.


2593.jpg 졸려 죽는 싸복이 남매, 둘이서 다정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도 많이 있지만, 그 이전에 치루어야 할 대가가 아주 많다. 특히 나처럼 혼자 있어 책임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강아지들은 나의 부속품도 장난감도 아니다. 독립된 생각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당연하게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매일매일을 통해 깨우친다. 더불어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싸복이 남매를 통해 배운다. 아니 오늘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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