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답이 될 수 있을까

뭉치를 집에 들인 건 과연 잘한 선택일까

by 달의 깃털

'그렇게 뭉치는 우리 집 집냥이가 되었다.'로 끝나는 단순한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처음 몇 번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바깥에 전혀 관심을 안 보이던 뭉치는 이후 현관문을 통하면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눈치다.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번은 문이 열린 틈에 탈출을 시도하려다가 운 나쁘게도(내 입장에선 운 좋게도) 그때 마침 딱 밖에서 배변을 해결하고 들어오는 싸이와, 또 한 번은 행복이와 마주침으로써 좌절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한 번씩 현관 미닫이문 앞에 서서 앞발로 어떻게든 문을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론 3킬로 냥이의 힘으로 열리기에는 미닫이문은 너무 무겁다.


KakaoTalk_20171212_164635746.jpg 만약을 대비해 목걸이를 항시 착용 중이다. 뭉치 너~ 도망가봤자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닷!!

또다시 내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내가 뭉치를 억지로 집에 들인 것은 과연 잘한 일일까.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뭉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예쁜 뭉치와 함께 하고 싶은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뭉치를 이대로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뭉치를 납치하기로 결정했을 때 선택권은 뭉치에게 주기로 한 결심을 나는 지킬 수 있을까.


KakaoTalk_20171212_164636875.jpg 보면 볼수록 '고양이'는 신비스러운 동물이다. 무엇보다 눈동자가 매력적이다.

뭉치는 근 1년 동안을 앞에 앞집(빈집)을 기점으로, 거기서 잠을 자고, 앞집과 우리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유랑(?)하며 지내던 아이다. 우리 동네는 특성상 차도 많이 들지 않고, 인적이 드물고, 음식물 쓰레기가 밭에 나와있는 경우가 많아 도시와 비교할 때 길냥이들이 살기에 훨씬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뭉치 입장에서는 무분별하게 들이대는 강아지(싸이)와 틈만 나면 코너로 몰아 대는 공포의 초대형 강아지(행복이)가 버티고 있는 우리 집보다 전처럼 지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집에선 앞집 사람들이 예뻐해 주고, 우리 집에서는 내가 먹을 걸 챙겨주던 그 시절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KakaoTalk_20171212_164637196.jpg 모든 동물이 자는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다. 뭉치 너 제법 예쁘구나 ㅎ ㅎ

잠정적으로 추운 겨울이 지나기 전까지는 잡아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밖에서 겨울을 나 본 적이 없는 뭉치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최근에 앞집에 들렀다가 뭉치가 어떤 경로로 길냥이가 되었는지를 전해 들었다. 동네 사람이 키우던 냥이인데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울 수 없어 친척집으로 보내려다 잃어버리게 된 것. 최근에 뭉치 이야기를 들은 원래 주인이 앞집을 찾아왔었다고 한다. 뭉치를 도로 데려가지 않은 걸 보면 뭉치는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유기한 것'에 가깝다고 본다.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수소문해보면 결코 모르지 않았을 텐데 1년 가까이 몰랐다는 것도,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반려동물을 들였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올해 봄에 그렇게 집을 나온 뭉치는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생이 집냥이일 리 없는 '러시안 블루' 뭉치가 길냥이가 된 기구한 스토리다.


KakaoTalk_20171212_164637897.jpg 고양이답게(?) 구석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뭉치

요즈음, 삶의 위기에 봉착하면 책에서 답을 찾는 평소의 습관대로 고양이 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읽는 중이다. 물론 책 안에 해답이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길냥이 밥만 주었지 고양이 대해 별 반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하며 강아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공부했던 것처럼, 집사다운 자격을 갖추기 위한 노력 중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KakaoTalk_20171212_164637487.jpg 뭉치 네 이 녀석~ 어서 내려오지 못할꼬~ 행복이는 귀찮을 땐 모르쇠였다 한 번씩 뭉치를 괴롭힌다 ㅠㅠ

시간이 흘러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뭉치와 내가 좀 더 가까워진다면, 혹여 뭉치가 바깥 생활을 선택하더라도, 그렇게 그런대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 상상한다. 아침에 출근할 때 뭉치를 밖에 내어놓으면 알아서 살던 대로(?) 원하는 대로(?) 잘 놀다가, 퇴근할 무렵 내가 부르면 나를 따라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풍경을. 그렇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는 모습을. 이것은 불가능한 상상인 것일까?


KakaoTalk_20171212_164636151.jpg 뭉치가 그래도 싸이는 좀 덜 무서워한다. 앗! 꼬리가 서로 닿았다. 장족의 발전이다. ㅎㅎ

길냥이 뭉치를 만나고 집에 들이는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의 생명과 함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도, 쉽게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결정하고, 선택하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과정이 삶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조금씩 노력 중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뭉치야~ 날도 추운데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서 살자~ 알고 보면 싸복이 남매가 괜찮은 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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