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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r 16. 2018

길냥이들과 함께 삶을 배운다

다음은 길냥이에서 우리 집 냥이로 거듭난 '뭉치'의 이야기다. 몇 가지 정보에 상상을 더해 구성해 보았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한 여자 사람이 고양이를 들인다. 어리석은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시골에 사는 부모님께 고양이를 보낸다. 그들은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별 수 없이 고양이를 돌본다. 그러다 고양이가 집을 나간다. 그들은 애써 고양이를 찾지 않고, 고양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양이는 러시안 블루였고 다행히 예쁜 외모를 가졌다. 우연히 배회하는 고양이를 발견한 어느 집 남자가, 고양이가 안쓰러워 사료를 주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그렇게 그 집 마당에 터를 잡고, 임신을 한다. 그리고 바로 앞 집(빈 집)에 새끼 3마리를 낳는다. 새끼가 어느 정도 크자 부담스러워진 고양이는 새끼를 피해 뒷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뒷집에는 언제나 사료를 먹을 수 있는 데다 고양이 집도 지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만날 때마다 맛있는 통조림 캔을 주는 여자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뒷집 여자가 고양이를 집안으로 데려간다.


뭉치는 길냥이 시절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셋은 뭉치를 전혀 닮지 않았다(사람들의 기준으로 예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저 뒷집 여자가 바로 나다. 뭉치를 데려오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중에는 뭉치의 세 마리 새끼들에 대한 걱정도 한몫이었다. 저 애들은 어찌할 것인가. 한꺼번에 네 마리를 다 데리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뭉치의 새끼들은 뭉치와 달리 사람 손을 타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뭉치는 새끼들을 내치고, 우리 집 뒷마당에 자리를 잡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뭉치를 집안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데리고 올 때 생각했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뭉치 새끼들은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지. 그것으로 새끼들까지 책임지지 못한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버리려 했다. 아마도 앞집에서 계속해서 사료는 줄 것이고, 그렇게 앞집의 마당 냥이로 사는 삶도 괜찮겠다 싶었다.   


두 마리가 암컷이니 일단 둘은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 하는데, 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적금을 타는 2월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2월이 되었다. 앞집으로 찾아갔다. 잡아주시면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앞집 내외도 반긴다. 그분들도 이제 와서 사료를 안 줄 수도 없고 쫓아내기도 그렇고 해서 고민이 많았단다. 사실 그분들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뭉치를 예뻐했던 아들이 사료를 주었던 것이고, 새끼가 함께 있으니 새끼만 안 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분들은 뭉치는 그럭저럭 예뻐했지만 새끼들은 예뻐하지 않았다. 뭉치의 새끼들은 뭉치를 닮지 않았다. 다시 말해 예쁘지 않다. 대놓고 아주머니는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는 검은 고양이가 싫다고.


'검은 고양이가 싫다'는 아주머니 말에 열 받아서, 삼 남매를 '심장이 쿵 할 만큼 이쁜 고양이'라는 의미에서 '심이' '쿵이' '몽이'로 이름 지었다.

그렇게 케이지를 맡기고 돌아왔는데 계속 연락이 없다. 어찌 된 건지 궁금해 전화를 해보니 요즘 통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단다. 알고 보니 아들이 바빠 사료를 계속 주지 않았고, 사료를 주지 않으니 집을 나가서 떠돌게 된 것이다.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고 목에 걸어주려고 목걸이까지 사 두었던 나는 한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은 생각하지 않고, 조금만 일찍 이야기했으면 잡을 수 있었을까.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사료를 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던 걸까. 저 불쌍한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그냥 길냥이의 운명이려니 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인 걸까.


맨 처음 우리 집 뒷마당에 길냥이를 위한 사료를 두었을 때, 나는 내 삶이 이렇게 길냥이들과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불쌍한 길냥이들이 배를 곯지 않게, 물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집이 길 생활에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랬다. 싸복이 남매를 키우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내 삶은 천천히 변해갔다. 그전에는 관심이 크지 않았던 길냥이 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꾸만 길냥이들과 엮이게 되고, 불쌍한 길냥이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온다. 힘들 때도 많지만, 나는 주변의 불쌍한 길냥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지난겨울 어느 날 우리 집 나무에 올라간 뭉치의 새끼들. 아직 어릴 때라 겁 많은(?) 한 마리가 내려오지 못해 내가 '개고생' 끝에 끌어내려 준 기억이 있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엇을 꿈꾸거나 욕망하는 일이 줄어간다. 대신 단 한 가지 '앞으로 남은 생은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하나가 남았다. 너무 막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늘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작은 존재에게 내가 가진 걸 내놓고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성녀 테레사 수녀가 머나먼 인도까지 봉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멀리 올 필요 없이, 당장 옆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봉사하라고.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다. 내 가족, 주변의 친구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가까운 곳에 있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을 늘 돌아보려고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는 내 집에서 밥을 먹는 길냥이들이다. 나는 힘닿는 데까지 이들을 보살피고 싶다. 사실 이것 말고는 '좋은 사람' 이 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엊그제 마당에서 책을 읽다가 옆집 창고 지붕 아래에서 '심이' 발견. 여기가 심이의 아지트인가 보다.

나는 뭉치 새끼들을 잡아서 중성화 수술시켜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련다. 생각했다. 앞집에서 밥을 주지 않는다면 이 근방에 머물면서 사료가 '무한리필'되는 우리 집에서 밥을 먹지 않을까 하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수컷 한놈은(몽이라 부르기로 했다) 어제오늘 이틀 동안 알콩이와 함께 아침시간에 대나무 숲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암컷 한 마리는(심이라 부르기로 했다) 엊그제 옆집 창고 지붕 밑에서 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몽이는 까만 바탕에 앞발에 흰색 덧신을 신었고, 심이는 다른 남매 냥이들보다 하얀 부분이 훨씬 더 많고, 그나마 얼굴이 엄마 뭉치를 조금 닮았다.


우리 집에서 밥을 대(?) 놓고 먹는 반점이, 노랑이, 테디의 모습. 나에게 4미터 이상은 허용치 않는^^ 오리지널 길냥이들이다.

사실, 길냥이 알콩이도 결코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지만, 정말 우연찮게 행운이 겹쳐 잡을 수 있었다. 또다시 내게 그런 행운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일단, 조용히 심, 쿵, 몽이를 지켜보고 낯을 익히기로 했다. 다만, 아직 쿵이는 발견하지 못했다. '간절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욕망(?)이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길냥이 알록이를 내가 품지 않고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낸 이유 중에, '에너지를 아껴놓았다가 언젠가 내 도움이 필요한 길냥이에게 내어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또 앞으로 길에서 어떤 '묘연'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기다린다. 나의 묘연을. 


좋은 사람이고 싶다. 적어도 우리 동네 길냥이들에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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