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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y 28. 2018

싸복이 남매, 2인조 프로 훼방꾼

아파트 전셋집을 전전하던 시절, 나는 매일매일 공상했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 곁에 골든 리트리버가 멋진 모습으로(?) 앉아 내 곁을 지켜주는 모습을.


저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자연을 느끼고, 마당을 가꿀 수 있는 집에서 내 곁을 지켜주는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라면. 그렇게 산지 어언 5년. 그래서 행복하냐고? 꿈꾸던 대로 살고 있냐고? 글쎄. 대충 비슷하게만 살고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러한 우아고상한(?) 자태로 앉아 있는 골든 리트리버가 나의 로망이었다.

일단, 행복이는 결코 멋지게(?) 앉아만 있 않는다. 어찌나 작업에 방해스러운 지. 어떨 땐 꼭 정확하게 일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지점에 앉거나 누워 있어, 결국 내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오게 한다. 싸이라면 '이젠 비켜~ 엄마 일 해야 돼~'라고 말하면 알아서 비킬 텐데. 아시다시피 우리 행복이는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는 아이가 아니다. 몇 번 말하다가 포기나는 직접 행복이를 들어서 일으킨다. 이럴 땐 어김없이 일어나기 싫어서 몸을 옆으로 눕힌다. 30킬로 몸무게의 강아지가 일으키지 못하게 옆으로 철퍼덕 누웠다고 상상해 보시길. 내가 성격이 까칠해서가 아니라,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쌍욕(?)이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현실은 이렇다.  이렇게 마당이 넓은 데 ㅠㅠ 꼭 거기 그 틈에 앉아서 어멍의 작업을 방해해야 되겠니?

이렇게 걸리적거리게 굴다가도, 해가 중천에 뜨고 날이 슬슬 더워지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나 찾아보면 대개 시원한 그늘을 찾아서 딥 슬립 중이시다. 아, 이럴 땐 어찌나 얄미운지. 내 옆을 지켜주기는커녕, 지 살 구녕 찾느라 바쁜 거다. 우리 행복이가 그렇지요. 뭐.


왜? 어멍~ 뭐? 무슨 일 있어? 딱, 저 표정이다. 일으키려고 하면 저렇게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골든 리트리버 뿐 아니라, 꽃으로 가득한 마당 또한 나의 오래된 로망이었다. 역시 로망은 로망일 뿐이다. 


일단 꽃밭에 뭘 심어도 싸복이 남매가 들어가 조곤조곤 밟고 다닌다.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알아들을 턱이 없다. 궁여지책으로 말뚝을 박아 얼기설기 울타리도 쳐 보았다. 등치가 작은 싸이는 어떻게든 틈을 내어 들어간다. 화단을 높이기도 했다. 화단 높이다가 아주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황금 조팝을 꽃밭 둘레에 심었다. 황금 조팝이 우거지자 자연스럽게 싸복이 남매가 꽃밭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 부작용이 있다. 조팝나무가 자라면서 정작 꽃을 가꿀 공간이 없어졌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랄까. 이쯤 되면 예쁜 정원은 개뿔이다. 얼기설기 만든 울타리가 예쁠 리 없고, 꽃밭에 꽃은 안 보이고 온통 황금 조팝만 보인다. 


어멍 옆은 너무 덥다. 그늘이 필요하다. 여기가 괜찮겠군. 시원하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퍼자자.

지난 오 년의 시간은 어떻게든 텃밭이나 꽃밭에 들어가려는 싸복이 남매와 어떻게든 텃밭과 꽃밭을 지키고 싶은 나와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싶어 이렇게 하면 프로 훼방꾼 싸복이 남매는 언제나 내 허를 찌르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허를 찔린 나는 또다시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이것은 일이 일을 부르는 꼴이었다. 끝이 없는 전쟁이었달까. 차라리 깔끔하게 꽃밭을 포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중노동에 허리가 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작품명: 그지개  /  부제: 어멍~ 혹시.... 나 불렀어?

싸복이 남매와 함께한 지 육 년 차, 나는 이제 내공과 노하우가 꽤 쌓였다. 그럭저럭 꽃밭과 텃밭을 사수 중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포기했다. 내가 상상했던 마당은 아니지만,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이젠 제법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상 비슷하게는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싸복이 남매는 틈틈이 프로 훼방꾼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얼마 전에도 공구리를 치는데 잠깐 한눈판 사이에 싸이가 발자국을 내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급할 땐 싸복이 남매는 집 안에 감금해 놓는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마당에서 일하는 나+멋지게 그 곁을 지키는 커다란 강아지는 그저 '이상' 일 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강아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버트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 이므로.    


새로운 훼방꾼이 하나 추가됐어요. 뭉치라는 애죠. 요즘은 주로 마당에서 놀아요~

이제 내게 마당은 '그저 보기에 예쁜 공간'이 아니라 '싸복이 남매와 함께 공존해야 할 공간'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이 정답이었으리라. 마당 있는 집 살이 5년 차에 나는 비로소 그것을 깨닫는다. 예쁜 마당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강아지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마당이 있는 집을 선택한 것인데. 이제야 비로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싸복이 남매와 함께할 수 있는 마당이 있어서 참 좋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내가 마당에서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내 옆을 늘 지켜주는 싸복이 남매가 없었다면 '마당 가꾸기'는 그저 중노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싸복이 남매가 함께 있어, 마당에서 일하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열심히 일하다가 숨을 돌리고, 싸복이 남매가 어디 매 있나 휘 한 번 둘러본다. 그늘에서 낮잠을 자면 자는 대로, 열심히 망을 보면 보는 대로, 그저 순간순간 싸복이 남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겁다.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간다. 이것은 하나의 마법이자 싸복이 남매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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