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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n 12. 2018

모범생이 사고를 크게 치는 법이다

우리 싸이는 학생으로 치면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 자식으로 치자면 부모님 뜻을 거스르는 법이 없는 맏아들 격이다. 


똑똑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반려견이다. 매 번 사건사고를 쳐 손이 많이 가는 행복이와는 달리, 손갈 데 없는 완벽한 아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싸이에게도 반전 매력이 있으니 바로 뜬금없이 초대형 사고를 친다는 것. 원래 모범생이 한 번 사고를 치면 크게 치는 법이다.


이런 순박한 얼굴을 하고 어멍 뒤통수를 때리다니 ㅎㅎ

첫 번째 사건 일지. 

때는 한 5년 전 마당 있는 집에 전세 살 때 이야기다. 그 당시 집에서 차로 가까운 곳에 쓰레기 처리장이 있었는데, 뜬금없이 바로 옆에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공원인지라 시간 날 때마다 싸복이 남매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그날도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집에 도착했다. 내리려고 뒷문을 여는 데 싸이가 없다. 어랏~ 분명 싸복이 남매가 함께 뒷좌석에 타고 있었는데. 안 태웠나? 아니 분명히 태웠는데. 순간 멍해졌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진 건가? 처음엔 차 어느 구석에 짱 박혔나 싶어 열심히 뒤져보았는데, 크지도 않은 차에 그리 작지도 않은 강아지가 숨어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오. 마이. 갓~ 


점잖고 근엄해 보이지 않나요? 총명함이 뚝뚝 떨어지지 않나요? 제 눈에만 그런 건가요 ㅋㅋ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공원에서 집에 오는 길은 대로를 지나 골목을 거쳐야 한다. 대로에서 뛰어내렸을 가능성은 적고, 골목에서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당시 공사 중이라서 저속으로 운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로 대로로 뛰어나갔다면? 불현듯 싸이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길로 큰길로 뛰어나갔다. 밭일하는 동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강아지가 큰길로 나가는 걸 보았단다. 미친 듯이 뛰어가니 대로변에서 싸이가 천연덕스럽게 흙냄새를 맡고 있다. 옷이 흙투성이다. 뛰어내리다 흙바닥에 구른 모양이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너무 놀란 나는, 궁둥이를 찰지게 때렸다(물론 평소에 나 강아지 때리는 그런 무식한 사람 아니다.)


마당 홀릭, 마당 성애자 싸이 왈~ '나는 어멍보다 마당이 좋다~'

그 사건 이후, 싸이는 앞자리로 바로 승격(?)했다. 또 언제 뛰어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또 뛰어내릴지 몰라 운전하면서 목줄을 꼭 잡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정도로 경계하진 않지만, 틈틈이 싸이를 주시한다. 창문을 닫으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싸복이 남매가 바람 쏘이는 걸 좋아해서 창문을 닫으면 아주 난리난리 개 난리가 난다. 닫을 수도 없다. 달리는 승용차에서 강아지가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 배포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범생이 싸이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그나저나, 싸이는 도대체 왜 뛰어내린 걸까? 뭐 하려고?


워낙 바지런하고 몸이 재서 카메라만 들이대면 움직이는 통에 잠잘 때 아니면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아요 ㅠㅠ

두 번째 사건 일지.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뒤가 산이다. 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이사 온 초기부터 틈나는 주말마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산에 올랐다. 한 일 년 전쯤 일이다. 그날도 셋이서 같이 산에 올랐다. 싸이는 산에 가면 한참을 앞서간다. 늘 먼저 집에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곤 했다. 그날도 행복이와 내가 뒤늦게 집에 도착했다. 당연히 싸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어라? 싸이가 집에 없다. 이건 뭐지? 딴 데로 샌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려오겠지 싶어 잠깐 기다렸다. 그런데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나는 동네를 뒤져봤다. 누구도 강아지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 다급해진 나는 다시 산 초입까지 올라가 본다. 그림자도 안 보인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불길한 생각이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절대 집을 못 찾을 아이가 아닌데, 가출할 아이가 아닌데, 어떻게 된 것 아닐까. 상상은 '산짐승에게 물려간 게 틀림없다'까지 뻗었을 무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별하게 사진 좀 찍어보자고 리본을 매 주었더니 입이 댓발 나왔다 ㅋㅋ

어떻게든 애를 찾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울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그제야 싸이가 산에서 내려온다. 궁둥이를 팡팡 때렸다. 그것도 나름(?) 아주 세게. 집에 데리고 들어가서 단호하게 혼을 냈다.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뭐하다가 내려온 것일까. 추정해 구성해 본 스토리는 이렇다. 싸복이 남매는 산에서 고라니를 보면 미친 듯이 쫓아간다. 대개는 어느 정도 쫓아가다가 내가 부르면 돌아오기 마련인데, 아마 그날은 내가 보지 않을 때 쫓아간 모양이다. 너무 쫓아가다 보니 길을 잃은 거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눈물 콧물 바람으로 싸이를 혼내던 내 모습을 지금은 웃으면서 추억한다. 하지만 그 길로 나는 산에 발길을 끊었다. 안 그래도 관절이 안 좋은 행복이가 산에 다녀오면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여 마음에 걸리기도 했던 터였다. 고라니가 뛰어노는 산에는, 이제 절대 다시는 안 갈란다.


애정 뿜 뿜, 꽁냥꽁냥, 누가 뭐라 해도 언제나 다정한 싸복이 남매~

싸복이 남매+뭉치와 함께하며 별의별 일들을 다 경험한다. 행복했던 순간도 많고, 마음 졸이거나 속상했던 기억 또한 많다. 혼자 살았더라면 그날이 그날 같은 단조로운 일상이었을 텐데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내 삶의 결을 더 풍성하게 해 주었다. 나쁜 일은 하나도 없고, 늘 좋은 일만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인생이라는 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또 묘미가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우리 앞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좋은 일은 많이, 나쁜 일은 가뭄에 콩 나듯 조금만 있었으면 좋겠다. 


넷이서 알콩달콩 쿵짝쿵짝 만들어 갈 일상이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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