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달의 깃털 Jul 26. 2018

반려동물 이야기 51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얼마 전에 뭉치가 각막에 상처가 나서 열흘 넘게 고생을 했다. 문제는 내가 병원에 입원한 엄마 간병 때문에 제대로 케어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졸지에 뭉치는 5일 동안 남의 집 살이를 해야 했다. 외출 냥이로 산과 들로 쏘다니며 자유롭게 지내다가 '넥카라'를 쓴 채로, 보도 듣도 못한 낯선 집에 갇혀 있어야 했던 뭉치는 제법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픈 엄마 만으로도 복잡했던 마음에 뭉치가 숟가락을 얹은 격이었다. 함께 하는 반려동물이 아플 때,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같이 아프다. 말 못 하는 짐승이기에 안쓰러움은 배가 되는 법이다.


뭉치가 원래의 생활로 돌아온 어느 금요일 저녁, 문득 싸이를 보니 입 주변이 살짝 벌겋다. 어라, 이건 뭐지? 어디 부딪혔나?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아 조금 지켜보자 싶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보니 한쪽 눈에서 눈물이 좀 나온다. 그때까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저녁때 보니 눈이 제법 부어있다. 그런데 눈뿐이 아니다. 입 주변 몇 군데가 혹 난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 저녁이었기에 가던 병원이 아니라 다른 병원을 찾았다. 벌레에 물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내일도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병원을 방문하란다.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이 되었다. 더하진 않지만 차도가 영 없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월요일에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가보기로 한다.


싸이 얼굴이 이 지경 이었더랬어요 ㅠㅠ 이 와중에도 어멍눈에 예쁘기만 하네요 ㅎㅎ

이 선생님은 알레르기 반응이란다. 그나마 이틀 후에 갔을 때는 피부염이라고 하고. 가뜩이나 뭉치를 오진했던 샘이라 신뢰도가 바닥을 친데다, 무슨 큰 병이 난 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 한데, 병원에서는 정확히 진단을 못 내리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얼굴은 저 지경인데, 애는 무척(?) 멀쩡했다는 사실이다. 활력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혹은 영 없어질 기미가 없더니 며칠 지나니 딱쟁이가 떨어져 나가면서 피부가 빨개졌다. 약을 보름을 먹었고, 현재는 많이 나아진 상태다. 약 때문에 나은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은 듯 싶다. 아마도 벌레에 물린 것 같다. 그게 가능성이 제일 커 보인다. 산책할 때 풀숲에 얼굴을 박는 게 일상이다 보니 운 나쁘게 독충에 쏘인 것 같다. 시골살이가 강아지들과 함께하기에 장점이 참 많은데, 저런 일을 당하고 보니 단점도 꽤 많구나 싶다. 하긴, 예전에 행복이는 발바닥에 벌을 쏘인적도 있었다. 


어때요? 많이 나아 졌지요? 이제 새 털(?)만 다시 나면 될 것 같아요. 

한 번도 아파서 병원에 간 일이 없었던 싸이가 아프니 많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얼굴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볼 때마다 속상하지 그지없었다. 잘생긴 내 자식 얼굴에 이게 웬일(?)인가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함께 사는 동물이 셋이다. 싸이, 행복이, 뭉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했다. 셋이 되고 보니, 둘 일 때보다 손도 더 가고 사건사고도 많다. 농담처럼 친구에게 말해본다. '이제 행복이가 아플 차례야. 쟤만 아프면 돼' 하고. 생각해보니 어디 셋뿐인가. 내가 밥을 주는 길냥이들은 몇이던가. 열 손가락으로 세기도 힘들다. 자식이 여럿이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겠지만, 여럿을 키울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둘에서 셋이, 또 열 손가락을 넘어가고 보니 한층 고되긴 한데, 보람은 더 커졌다. 두배가 아니라 한 다섯 배쯤이랄까. 힘든 것도 다섯 배라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 


이제 우리집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날이 더워서 거실에서 자려고 이불을 깔아 보았답니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아프지 않을 순 없다. 사람도 동물도 나고, 늙고, 죽는 과정을 똑같이 거친다. 난생처음 아픈 싸이를 바라보면 다시 한번 '생로병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이가 내 곁을 떠나가는 일'이다. 그게 물리적인 이별이든,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든. 가끔은 두렵다. 언젠가는 싸복이 남매가 아파 눕는 순간이 올 것이고, 순리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뭉치는 또한 어떠한가.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작별인사도 없는 갑작스런 이별이 될 것이다. 그 모든 이별이 많이 두렵지만, 애써 가볍게 생각해 본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고. 미리 고통스러워하지 말자고. 지금 이 순간, 함께 있어 서로가 행복한 것만 생각하자고. 삶은 작고 큰 이별로 이루어진 총합 같은 거라고. 이별은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나니엄마님댁 강아지 '나니'가 많이 아프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사람이고 동물이건 사는 동안 아프거나 힘들지 않고 행복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삶의 이치가 그렇지 않으니 이 또한 참 슬프다.


나니가 무지개다리 저 건너에서는 고통없이 행복하기를 빈다. 


이래도 저래도 삶은 슬플때보나 행복할 때가 많았으면 해요. 그저 자는 건데도 보는 사람 행복해지는 행복이처럼요 ㅎㅎ


keyword
나의삶을 글로 기록하고싶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