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요즘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싸복이 남매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내 삶에서 싸복이 남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아,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곁다리로 뭉치도 살짝 껴준다. 싸복이 남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함께 지내는 6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없는 서로를 상상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기쁨을 알기 위해서는, 삶의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필수적이다. 특히 싱글족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삶의 진리 중 하나, 기쁨이나 행복은 절대로 공짜로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 이 공식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에도 당연하게 적용된다.
고백건대, 나는 반려동물 무식자(?)였다. 한 생명을 돌보고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그저 '마당 있는 집 + 골든 리트리버' 라는, 싱글족이 이루기 쉽지 않은 저 로망을 실현하고 싶었다. 분양받은 새끼 강아지가 이십일만에 홍역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비로소 나는 현실에 눈을 떴다. 한 생명과 반려를 결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싱글족이 반려동물을 맞이 할 때는 어떤 각오여야 하는지. 첫 번째 강아지 루나를 떠나보낸 뒤, 4개월 후에 싸복이 남매를 데려왔다. 그 4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다. '그래, 나는 진정한 반려동물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이 첫 번째 각오였다. 주워들은 정보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내게 일어날 수 있는 힘든 모든 일을 상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죽을 때까지 함께하며 스스로 책임지기로. 두 번째는 사실 상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포기하겠다는 각오였다. 혼자 사는 사람은 강아지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싱글족으로서 백 프로 공감한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일도, 주말에 어디 멀리 놀러 가는 것도, 장기간 여행을 가는 것도 다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언제 해외여행을 또 가볼까 싶어 그 당시 여유돈도 없었는데 무리를 해서 친구와 세부를 갔다 오기도 했다. 당분간 비행기 탈 일은 없을 거라면서. 아쉽지 않게 지금 갔다 와야 한다면서.
실제 지금의 나는 저녁 약속은 절대 잡지 않는다. 아니 아예 몇 년 전부터는 저녁을 안 먹는다(사람은 두 끼만 먹고도 잘 살 수 있다. 저녁 준비하는 시간도 아깝다). 여섯 시 칼퇴근, 집에 여섯 시 15분 도착. 저녁시간은 무조건 강아지들을 위한 시간이다. 물론 아침시간도 그렇다. 나는 강아지들 자는 시간에 맞춰 일찍 자고(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시간 9시),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집을 나서는 8시 반까지 강아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일요일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집에만 있는 날로 정했으며, 토요일엔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위해 가끔 한 번씩만 외출한다. 직장에서의 1박 2일 워크숍이나 저녁 회식 같은 건 당연히(?) 참석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내가 짬이 좀 돼서 아무도 이런 걸로 시비 걸지 않는다(좋은 직장이에요).
친구들도 밖에서 만나지 않고 주로 집으로 부른다. 맛있는 거 해 주겠다고 꼬셔서. 그래서 싸복이 남매와 함께한 후로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친구들만 자연스레 남았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집에 오는 것 자체가 나에게나 싸복이 남매에게나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에 갈 때도(명절날에도) 절대 1박은 하지 않는다. 내 새끼들 밥은 내손으로 챙겨줘야 하므로. 부모님이 개를 좋아하시지는 않는데 불가사의하게도(?) 이런 나를 전폭적으로 이해해주신다.
야근할 땐(칼퇴근이긴 해도 도서관은 학기 중엔 8시까지여서 주기적으로 야근을 한다.) 중간에 외출 달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꼭 챙겨준다. 부득불 집을 장기간 비워야 할 때는 알바생을 집으로 부른다. 다행히도 내가 대학에 있어서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이 좀 있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가 강아지를 좋아하기 마련이어서, 돈도 벌고 강아지랑도 지내고 할 수 있어 학생들도 좋아한다. 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때도, 해외여행을 갈 때도 알바를 불러놓고 갔다. 어디 다른 곳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마음도 편하다. 모두가 싸복이 남매가 까탈스럽게 낯을 가리지 않아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나에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집에만 매여있어서야 되겠냐'고도했다. 당연히 불편하다. 나도 어쩌다 한 번씩은 저녁때 누군가와 술 한잔 하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혹여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 싸복이 남매 걱정에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다. 보이진 않아도 등에 늘 싸복이 남매를 업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내가 좋아서 데려온 아이들이라고. 잘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불편함은 응당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게 생명을 대하는 참된 자세가 아닐까.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해서 무르거나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나 마저도 그럴 순 없으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매일 잠에서 깨는 순간 내게 달려들며 반가워하는 싸이에게 말한다. "매일 보는 어멍이 뭐 그렇게 좋아 ~ 누가 보면 같이 안 잔 줄 알겠어 ~" 모든 반려동물이 그렇겠지만, 싸복이 남매 세상은 그저 어멍뿐이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싸복이 남매는 내 존재를 매일 매 순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 마법일까. 좀 불편한 게 대수일까. 매일 이렇게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고 있는데.
싸복이 남매+뭉치야 고마워~ 어멍을 이렇게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