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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쿵이' 이야기

첫 번째

by 달의 깃털

누군가네 집냥이➜길냥이➜우리 집 냥이➜외출 냥이로 화려하게(?) 변신을 거듭한 뭉치에게는 길냥이 시절 낳은 세 마리 새끼가 있다.


남아 몽이와 여아 쿵이와 심이. '심장을 쿵하게 할 만큼 예쁜 고양이'라는 의미에서 이 삼 남매에게 '몽이, 쿵이, 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집냥이로 거둘 수 없는 대신, 쿵이와 심이를 중성화 수술시켜줄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바 있다. 그 당시 글을 쓰며, 중성화 수술시켜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사실 나는 쿵이와 심이를 잡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코빼기도 보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얼굴을 봐야, 잡든지 뭘 하든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KakaoTalk_20180518_170009956.jpg 뭉치와 새끼 몽이예요. 길냥이들 아침 줄 때 어디선가 뭉치가 쓰윽 나타나 훼방을 놓을 때가 많아요 ㅠㅠ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아니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움직인다고 했던가. 시간이 흐르자, 몽이와는 어느덧 절친이 되었고, 그렇게 도통 눈에 띄지 않던 심이도 뒤꽁무니라도 몇 번 볼 수 있게 되었다. 쿵이는 어느 구석에 짱 박힌 건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 쿵이는 몽이와 아주 똑 닮았다.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어쩌면 몽이랑 헷갈려서 쿵이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몽이와 친해져 목에 이름표를 채워놓은 덕에 나는 몽이와 쿵이를 잘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첫 번째 타깃은 쿵이로 정하자.


KakaoTalk_20180518_165146255.jpg 앞에가 몽이, 뒤에가 쿵이랍니다. 앞발에 덧신, 뒷발에 양말 신은 것도 똑같아요. 구별이 힘들만하죠^^

한 이 주 전일까. 늘 그랬듯, 아침나절에 몽이와 통조림을 앞에 두고 노닥거리는 중이었다. 어디선가 쿵이가 쓰윽 나타난다. 통조림에 관심을 보인다. 이때다 싶어 재빠른 동작으로 통조림을 하나 가져왔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지 않는다. 조짐이 좋다. 아니, 역시 통조림은 위대한 것일까. 그렇게 한 두세 번 쿵이에게 통조림을 진상(?) 했다. 마지막엔,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기에 과감히 스킨십을 시도해 보았다. 와우~ 하악질이 장난이 아니다. 몽이는 동글동글하고 애교 많은 성격인데, 쿵이는 성격이 딴판이다. 저런 애를 어찌 잡아 수술시켜주지. 나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지난 일요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침에 보일러실에서 길냥이들 밥을 세팅하고 있었다. 문 밖에 쿵이가 보였다. 그런데 배가 많이 고팠는지 제 발로 보일러 실로 들어온다. '신이시여~ 좋은 일한다고 저한테 상을 주시는 건가요?' 싶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일단 문을 살금살금 닫았다. 1단계 성공. 캐리어에 통조림을 놓으니 주저주저하면서도 고개를 집어넣는다.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궁둥이를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잡았다. 드디어 쿵이를 잡은 것이다. 잡힌 후에도 쿵이는 다른 냥이들과 달랐다. 어찌나 하악거리고 문을 열려고 발악을 하는지 성격 장난 아니다 싶었다. 그러나 때는 일요일, 병원이 쉬는 날이다. 어쩔 수 없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KakaoTalk_20180518_165145859.jpg 쿵이가 몽이보다 덩치가 작고, 얼굴 쪽에 흰 무늬가 조금 달라요. 어쨌든 엄마 뭉치와는 둘 다 ' 1' 도 닮지 않았습니다 ㅎㅎ

그. 런. 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한 시간 뒤쯤 잘 있나 싶어 보일러실에 가 봤는데, 어머낫~ 쪼깐한 것이 무슨 용을 썼는지 문을 부수고 도망을 간 것이다. 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캐리어가 그렇게 부실하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쿵이를 잡기는 틀렸구나 싶은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후회가 막심이었다. 왜 좀 더 완벽을 기하지 못했던 것일까. 도망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한 내가 너무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KakaoTalk_20180518_165145421.jpg 병원에 온 쿵이 모습이에요~

이렇게 새드엔딩으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면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겠지요.

때는 수요일 아침, 쿵이가 다시 나타났다. 설마 보일러실로 또 유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인데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때 몽이도 마침 함께였다. 그 전보다 경계가 심하긴 했지만, 몽이와 함께여서인지 주저주저하면서도 보일러실로 들어온다. 두 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보일러실 문은 닫았다. 하지만 배고프다고 울면서도 캐리어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통조림이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이전에 갇혔던 걸 기억하고 있는 것일 테다.


몇 분간, 나름의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겠다 싶어서 재빠른 동작으로 그냥 쿵이를 들어서 캐리어에 집어넣었다. 앗싸, 성공이었다. 눈물이 날만큼 기뻤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재빨리 스카치테이프를 가져와 부수지 못하도록 캐리어를 칭칭 동여맸다. 그렇게 병원으로 쿵이를 데려갈 수 있었고 무사히 중성화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 2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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