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다음 날 쿵이를 데리러 갔다. 의사쌤의 첫마디가 대뜸 빨리 풀어주라고 하신다. 보통은 하루쯤 데리고 있다가 풀어주라고 하는데, 왜? 새끼를 이미 낳았단다. 젖을 물린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쿵이는 이제 10개월 정도밖에 안 됐는데ㅠㅠ 이미 출산을 했던 것이다. 홀가분해졌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그렇다면 어디에다 새끼를 낳은 것일까. 쿵이가 하루 동안 집을 비운 사이, 아직 어린 새끼들이 굶어 죽진 않았을까. 뭉치를 집으로 데려올 때, 새끼들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어야 했던 걸까. 살아있다면, 쿵이의 새끼들은 또 어찌 되는 것일까.
사실 뭉치의 또 다른 새끼 '심이'도 임신한 듯 보인다. 나는 다시 얼굴도 모르는 뭉치의 원래 주인이 원망스러워졌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진지한 고민 없이 고양이를 덜컥 들였던, 그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뭉치를 보냈을 그 여자가. 뭉치가 세 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중 쿵이가 또 새끼를 낳았다. 또 심이도 새끼를 낳겠지. 기하급수적인 번식이다. 저 생명들을 다 어찌한단 말인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라며 중성화 수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한때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인간의 지나친 개입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있을까. 여기는 약육강식의 원리대로 움직이는 밀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개체 조절은 이미 불가능하다. 더구나 강아지와 고양이는 반려동물로 살아온 역사가 길다. 자연에 사는 동물들과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볼 때, 중성화 수술만이 정답이 아닐까.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길냥이들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저 아이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아왔겠지. 저 아이들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런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다.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길냥이 TNR 사업이 있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이다. TNR은 지자체별로 시행을 하지 않는 곳이 많다. 인터넷 검색에서 나오질 않아서 우리 지역은 시행하지 않는 줄 알았다. 복잡하게 타 지역 신청절차를 밟느니, 그냥 내 돈을 쓰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길냥이들을 자꾸 데려가니 선생님이 TNR 이야기를 해 주신다. 더불어, 길냥이들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이제 다소 돈 걱정은 덜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추진력이 막 쏟아 오른다. 내친김에 통덫을 다시 구입했다.(이전 것은 먹이를 공중에 매다는 방식이어서 효과적이지 못했다.) 목표한 냥이가 아니라 엄한 애들이 잡힐 것 같아 고민이긴 한데(예를 들어 우리 뭉치가 잡힐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 번 시도해 볼 예정이다.
배가 불룩해 보이는 심이를 염두에 두고 의사쌤께 임신 중인 아이를 중성화 수술시켜도 되는 건지 물었다. 쌤이 말한다. '자기는 그냥 다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생명들을 다 어찌할 거냐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평소 유기동물의 복지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다. 누군가는 잔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의사쌤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 무분별하게 태어나는 아이들, 자꾸만 개체수가 늘어나 문제가 되는 길냥이들, 그 가운데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생명이 찬 밥 대접을 받는 현실 속에서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임신한 심이를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하는 건지 많이 혼란스럽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배곯는 아이들이 불쌍해 사료를 주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까지 이르렀다. 확신을 가지긴 어렵지만, 다른 건 모르겠고, 그저 내 집에서, 내 집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삶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어.쨌.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쿵이를 잡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알콩이를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내 손을 타지 않는 아이였던 걸 생각하면, 하느님이 살피셨다고 볼 수밖에 없을 듯싶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온 기운이 그 일을 이루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소설 연금술사에 나왔던 말이다. 저 말을 참 좋아했었는데, 한 번도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저 말을 믿는다. 아니 믿게 됐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기적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이젠 심이도 잡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긴다. 더불어 우리 집 밥을 먹는 다른 암컷 길냥이 들도. 우리 집 암컷 냥이들, 기다려~ 너희들은 모두 나의 새로운 타깃이다.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내 마음이 다시 기적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