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심이' 이야기
우리 집에서 밥을 대 놓고(?) 먹는 '암컷 길냥이 중성화 수술 프로젝트'는 일사 철리로 진행 중이다.
뭉치의 남은 암컷 새끼 '심이'와 암컷임이 확실한 '태희'를 타깃으로 삼았다. 눈에 불을 켜고(?)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밥을 먹는 길냥이 중 수술하지 않은 암컷은 이 두 마리뿐인 듯하다. 태희는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여 조금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젖먹이 새끼를 두고 엄마 냥이가 자리를 비우는 건, 새끼들에게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급한 건 심이었다. 임신하기 전에, 혹 임신했다면 더 배가 불러오기 전에 '심이'를 잡아야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심이는 남매인 '몽이'나 '쿵이'와 달랐다. 몽이는 처음부터 경계가 없었고 붙임성 좋았고, 쿵이는 그렇진 않았어도 통조림으로 유혹이 쉬웠다. 하지만 심이는 나만 보면 바로 줄행랑치기 일쑤였다. 멀찍이서 뒤꽁무니를 몇 차례 본 정도다. 경계심이 많은 '심이'를 잡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쿵이나 알콩이처럼 보일러실에 가두어 잡는 것은 어림 반푼 어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의사샘의 조언대로 덫을 놓기로 했다. 통덫을 놓아 길냥이 잡는 법에 이렇게 나와있다. 1. 사료를 싹 끊는다. 2. 다른 길냥이들을 배불리 먹인다(안 그러면 엉뚱한 길냥이가 잡힐 우려가 있다). 문제는 2번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떤 냥이가 와서 밥을 먹는지도 잘 모르는데 저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심이가 통덫에 들어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는 심이를 잡을 수 있을까?
때는 토요일 아침. 평소처럼 길냥이 밥을 챙겨주고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심이의 뒤꽁무니가 보인다. 빈 통조림 그릇에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도망가긴 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담 밑에 숨어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조짐이 좋다. 주변에 있던 몇몇 고양이들은 이미 통조림과 사료를 배불리 먹은 상태다. 게다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다들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다. 지금 덫을 놓으면 심이가 들어갈 확률이 높다. 어제 도착한 덫은 집안에 있다. 최대한 심이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덫을 가져왔다. 아직 도망가지 않았다. 덫을 놓고 심이 눈에 띄지 않는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나의 예상대로 심이가 들어가려 한다. 그런데 아뿔싸~ 어디선가 뭉치가 불쑥 나타난다. 아, 이런. 도움이 안 되는 꼴통시키. 평소에도 얄미운 짓만 골라하더니, 결정적 순간에 초를 친다. 낭패다 싶은 순간,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에 엄마를 본 심이가 동요한다. 엄마와 자주 마주치는 몽이와 다르게, 아마 심이는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는 것일 테다. 지켜보는 나는 심장이 조마조마하다. 다행히도 새끼 내친 어미답게 뭉치가 심이를 외면한다. 휴우~ 그렇게 심이는 덫에 걸렸다. 그 길로 병원으로 직행,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타깃을 삼은'(?) 길냥이를 잡는데 도가 터가는 것 같다. 정말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심이'를 잡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기적을 불러온 것일까. 뒤꽁무니도 보기 쉽지 않았던 '심이'가 정말 운 좋게 그 시간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섭리라고 볼 수밖에.
이젠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훨씬 가볍다. 남은 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태희뿐이다. 어쩌면 새로운 암컷 길냥이가 우리 집에 나타날 수도 있겠다. 새로운 아이가 나타난다면 그 아이 또한 나와의 인연일 것이다. 오래 살고 싶어 우리 집을 찾아왔다고 생각하련다. 길냥이 었던 우리 뭉치를 만나면서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생각할수록 뭉치와 내가 '특별한 인연'이구나 싶다. 뭉치를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깊숙이 길냥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뭉치를 만나면서 길냥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때론 어깨가 무겁고 버겁지만, 때론 보람되고 행복하다. 이 아이러니한 감정이 나쁘지 않다.
모든 게 운명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