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완벽히 해내고픈 너의 그 마음이 멋져. 그 마음은 뭐든 해내게 하는 원동력이 돼 줄 거야. 방법은 여러가지야. 꼭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아도 돼. 대신 너만의 방식을 연구해 봐. 엄마가 너를 믿을 수 있게, 그보다 네가 너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너만의 방식으로 성취를 보여 봐. 결정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는 거야. 이런 연습들이 너를 성장시킬 거야.”
영유아기는 자율성과 주도성이 발달하는 시기다. ‘내가! 내가!’라며 뭐든지 자기가 하겠다고 떼써서 엄마가 힘들어지곤 하는데, 그때 이상적인 양육법은 아이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존중해주고 스스로 해 볼 수 있도록 기다려 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발을 혼자 신겠다고 낑낑댈 때, 집안일을 돕겠다며 난장판을 만들 때, 재촉하거나 저지하지 말고 인내하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에게는 이런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에 대해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기질검사상 ‘완벽주의’와 ‘성취욕’은 높은데 그에 비해 ‘근면’과 ‘끈기’ 요소가 따라와 주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이상은 높지만 쉽게 포기하는 기질을 타고났던 것이다. 게다가 발달검사상 인지능력에 비해 몸을 쓰는 능력이 떨어졌기에 많은 것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좌절을 겪곤 했다. 결과적으로 뭐든 엄마가 해달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자조능력도 또래에 비해 많이 느렸다.
다행히도 아이의 심리와 발달을 이해했기에 아이를 비난하거나 채근하지 않고 섬세히 도울 수 있었다. 실은 나도 많이 좌절했었다. 타고난 완벽주의와 성취욕이 높은 건 어떻게든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겠는데, 근면과 끈기가 받쳐주지 않는다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기질은 좋고 나쁨이 없으며 다만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발휘될 수 있다고 배웠으므로, 열정은 있지만 끈기가 없는 이 기질에도 과연 장점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좌절 반응을 의미하는 지구력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결정해요. 지구력이 높은 경우에는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도 해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요. 반면 지구력이 낮은 경우에는 쉽게 포기하죠. 대신에 다양한 해결방법들을 탐색하려는 반응을 보여요. 사람마다 경험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른 거죠.
그런데 사람마다 기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면 행동에 대한 평가만 하기 쉬워요. 지구력이 높은 사람은 될 때까지 과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의지가 강하다거나 성실하다고 평가하죠. 반대로 지구력이 낮은 사람은 과제를 쉽게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의지가 부족하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거죠.”
김도인의 심리서 <숨쉬듯 가볍게>라는 책에 실린 내용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에 따르면 지구력이 높은 사람은 오랜 시간 노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렵다. 반면 지구력이 낮은 사람은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방안들을 찾는 장점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같은 시간 동안에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끈기가 없는 것도 장점이 있다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사람은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과제를 교대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싶어서 나만의 방법들을 계발해 냈다. 시험공부를 할 때에도 엉덩이 힘은 없었지만 빠르게 외우는 벼락치기에 능했다. 고등학교 때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야자 시간에도 중간에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자거나 잠깐 외출하는 등 나만의 휴식을 취하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 업무를 할 때도 한가지에 진득히 매달리기보다는 서너가지 업무를 오가며 처리하는 것이 훨씬 능률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정신없어 보이겠지만 내겐 그 방식이 잘 맞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하나의 정석적인 길을 쭉 따르기보다는 내 관심사를 따라 여러 루트를 구축했다. 임용고시와 대기업 대신 프리랜서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부모님은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이것들을 통합하여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부모님의 나를 믿어 주셨기 때문이다. 내 기질껏, 내 재량껏 날개를 펼치도록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내게 자율권을 주셨기에 오히려 더 책임감 있게 나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물론 인내력은 살아 가는 데에 중요한 요소다. 그건 나의 중요한 육아 목표기도 하다. 그런데 클로닝거의 기질이론에 따르면 인내력은 근면과 끈기, 그리고 완벽주의와 성취욕의 합이다. 근면과 끈기는 인내의 한 부분일 뿐, 끈기가 없어도 해내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어떻게든 인내하여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성취욕이 있는 아이니까 무작정 힘들다고 포기하진 않을 걸 믿는다. 내 부모님이 내게 그랬던 거처럼 나도 아이에게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기회를 주고 싶다. 모든 아이들이 덧셈 문제를 100개 풀어야 하는 건 아니다. 10개만 풀고도 완벽히 익힐 수 있다면 거기서 끝내도 된다. 불필요한 반복과 압력은 아이의 성취욕마저 꺾을 수 있다. 잘하고 싶지만 성실하지 않은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심어주고 싶다. 노력해야 이룰 수 있다, 다만 네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아 보라고 말이다. 결국은 내적동기가 아니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