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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18. 2021

엄마 나이 7살




일곱살. 팔다리가 제법 길고 단단해진 너와, 점점 친구가 되어 간다. 물론 아직 어리디 어린 너이기에, 너의 욕구와 나의 욕구가 충돌할 때 넌 언제나 너의 편이지만. 너의 욕구와 상충하지 않을 때는 제법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네가 어떤 소년으로 자랄지, 어떤 청년으로 자랄지, 조금은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좋은 소식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전하고 싶은 사람이 네가 되었다. 너는 나의 일을 누구보다 기뻐해 준다. 어른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는 부끄러운 얘기들도 너에게는 개의치 않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만큼 친하고, 너는 내게 그만큼 안전한 존재이다.

 

우리 사이에 점점 물리적 거리가 생긴다. 엄마 곁에서 떠날줄 모르던 어린 너는 어느새 방에서 혼자 뒹굴거리며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본다. 잘 맞는 친구가 있으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유치원을 너무 재밌어해서 하원시간이 늦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몸이 멀어진다. 나는 편하면서도 가끔 허전하여 너에게 추근대곤 한다.


한시도 엄마를 놔주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너무도 진부한 이 말이, 매일 가슴에 사무친다. 나는 뭐가 그리도 힘들었을까? 나는 뭐가 그리도 버거웠을까? 무얼 그리고 걱정했을까? 그토록 짧은 몇 년일 뿐인데. 이렇게 우린 자연스레 분리되었을 텐데.


그동안의 사진들을 보며, 문득 추억에 젖는다.참 힘들었지만, 참 행복했구나. 나를 돌보지 않고 너에게만 집중하던 시절. 그래서 이후 무너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은 평생 내 맘 속 가장 행복한 시절로 남아 백발할머니가 되어서도 나를 웃게 할 것이다. 아마 시간을 돌린다해도 너에게 집중하느라 나를 잃어버리는, 내가 무너져내리는 그 미련한 짓을, 또 택해버리지 않을까? 알면서도, 내가 무너질걸 알면서도, 그날의 작은 너를 놓칠 수 없어서.


엄마 나이 일곱살, 다시 내 생활을 되찾는 한해를 보내고 있다. 엄마 이전의 삶과 엄마 이후의 삶이 통합되는 중요한 시기. 절반의 자유와 절반의 부자유의 통합. 절반의 나와 절반의 너의 통합. 그렇게 나와 너는 어우러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여전히 나지만, 그러나 엄마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엄마지만, 그러나 이제 다시 나다.


여덟살, 아홉살, 사춘기… 한해 한해 갈수록 우리 사이에 심리적 거리가 생길 것이다. 우린 따로 또 같이 걷다가, 때로는 같이 걷다가, 점점 따로 걸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엄마로서의 사랑일 테다. 네가 내게 쏟아 준 사랑만큼, 나도 평생 너에게 보답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거리에서, 네가 원하는 만큼만,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필요할 때 언제든 손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의 삶을 살고 있을게. 조용히, 깊이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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