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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Oct 28. 2020

아이가 엄마를 골라 온다는 말

네가 나를 선택했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생명의 신비, 우주의 신비를 느낀다. 시력이 약한 갓난아이를 위해 엄마의 유두가 까매지고, 처음 만난 세상이 두려운 아기를 위해 모유에 진정성분이 들어있다니.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 새삼 조물주의 센스에 감탄하곤 했다. 아기도 생존에 필요한 여러가지 반사들을 타고나는지라 무언가 입에 닿으면 쪽쪽 빨고 발이 땅에 닿으면 걷는 시늉을 한다. 자연스럽게 알아서 세상 탐색을 시작한다.


그놈의 등센서에도 다 이유가 있다. 아기는 누워있기를 좋아하면 안 된다. 끊임없이 어른의 관심을 받아야 살 수 있고, 계속 움직이려고 노력해야 뒤집기도 하고 배밀이도 하고 점점 사람으로 자라나니까. 그건 아기의 본능에 내재된 생존전략이다. 유난히 잠 못 자는 아이에게도 사정이 있다. 특히 원시적 뇌인 편도체가 발달되어 있는 경우 늘 위험을 감지할 준비태세를 유지하기 때문에 깊은 잠에 들기 어렵다. 언제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던 원시시대에서는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잠자리에서 아기가 자연스레 엄마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단순히 ‘나쁜 버릇’이라 생각하는 건 정말 틀린 말이다.


갓난쟁이를 키우며 공부했던 육아의 ‘기술’들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내 식대로 자연스럽게 아이와 맞춰가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정해진 스케줄을 따르지 못하면 엄마의 잘못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1950년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기질 연구에 의하면 아기의 ‘규칙성’은 날때부터 타고나는 기질 요소다. 먹고 자는 시간이나 양이 얼마나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지, 사회적 규칙에 얼마나 순응적인지를 나타내는 규칙성은 이미 영아기부터 개인차를 보인다. 규칙성이 낮은 기질의 아기들은 절대 로봇처럼 틀에 맞춰 키울 수 없다. 반대로 가장 인간적인 육아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키울 때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자극민감성’도 아이마다 다르다.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은 아이는 보통의 일상에서도 남들보다 쉬이 지치고 각성되어 힘들어한다. ‘반응강도’도 신기하게 아이마다 다르다. 졸리거나 배고플 때 살짝 칭얼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고강도로 폭발하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 기본적인 ‘기분의 질’도 타고난다. 기본 정서가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시종일관 심각한 아이도 있다. ‘적응성’이나 ‘접근성’도 타고나는 기질 요소이므로 아이의 낯가림이나 등원거부를 전적으로 양육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바아보다.


아기는 자기만의 속도대로 때가 되면 울지 않고 자고, 때가 되면 웃으며 엄마와 떨어질 수 있다. 사실 아이가 자란다는 건 그냥 자연스럽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아기가 울면 안아주고, 졸리면 재워주고, 불안해하면 젖을 물리는 자연스러운 모습. 육아는 엄마의 본능에 내재돼 있는데 굳이 그걸 거스를 이유가 있을까. 책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도 모성은 존재했을 텐데 말이다. 내 식대로 자연스럽게, 아이의 속도에 맞게 키우면 된다. 모든 아이도 다르고, 모든 엄마도 다르니까.


엄마란 이유로 별게 다 죄책감이 든다. 언제부터 아이를 안아주고 재워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죄가 되었나. 심지어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것조차 죄스러워진 세상 속에서, 나는 그저 내 안의 모성 본능대로 이것저것 재지 않고 널 충실히 사랑할 뿐. 아이는 부모를 닮기 마련이고,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게 무언지 우리가 삶으로 이미 느꼈을 터. 이런 우리에게 이런 네가 온 건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아이가 엄마를 골라서 세상에 나온다’는 말이 나는 참 좋더라. 그렇다면 모든 엄마들이 비교하지 말고 죄책감 갖지 말고 자기 식대로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면 될 텐데. 내 아이는 아무래도 모성애가 극진한 나를 골라온 것 같다. 많이 안겨있고 싶어서, 24시간 붙어있고 싶어서, 잘 때도 항상 함께 있고 싶고, 눈 떴을 때도 항상 엄마가 옆에 있길 바라서.


대체 어디다 써먹나 싶던 나의 쓸데없이 특별한 능력들. 과도한 공감력, 못말리는 애정 표현, 지나치다 싶은 감성,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력… 쓸데없이 에너지만 소모한다고 여겼던 나의 이런 성향들이, 다 너를 위해서였나 보다. 그동안 너를 키우기 위해 그토록 단련했었나 보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참 잘 어울린다. 나에겐 네가 딱이야. 그리고 너에게도 내가 딱이야. 엄마 잘 찾아왔다.


내 식대로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이 아이와 나는, 참 잘 맞는 한쌍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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