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아우울증이란 말이 와닿지 않던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는 게 행복했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했고, 육아는 내 천직처럼 느껴졌다. 물론 힘들 때도 많았지만, 대체로 나는 엄마라는 자리가 행복하고 감사했다. 민감한 엄마들이 워낙 그렇다. 누군가를 돕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참 행복한 사람들. 그런 사람이 엄마가 되었으니, 작고 연약한 아기를 키우며 얼마나 큰 보람과 감동을 느끼겠는가. 아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쉽지 않은 기질의 아이를 키우며 에너지가 소진될 만도 한데, 늘 ‘육아체질이다!’라고 외치는 나를 보며 다들 신기해했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자기세뇌였다. 보석같은 내 자식을 키우는 게 고통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기에. 너무 힘들다고 일기를 쓰고도 마지막은 ‘하지만 행복해’로 끝내야만 마음이 편한 나였다. 완전한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러한 긍정적인 마인드는 효과가 좋았다. 어둠속에서도 빛을 찾아내곤 했으니.
일평생 민감한 사람으로 살아온 나는 마음의 자원을 풍족히 가지고 육아를 시작했었다. 늘 스트레스에 취약했기에 역으로 조절력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하는지 익히 알고 스트레스 요인을 잘 관리하며 살아왔다. 워낙 많은 생각과 감정 속에 사는지라 내면 성찰에 능했고 그 덕에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발달했을 테다. 그러한 내공이 있었기에 에너지가 바닥나기까지 남들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아이가 밉다는 마음을 처음 느꼈을 때 화들짝 놀랐다. 나는 미움이란 감정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를 애써 부정하고 회피하다 때로는 일을 더 키울 때도 있었다. 민감한 사람들은 양심이 발달했다고 한다. 아마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할 테지.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미워보이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아이에게 화가 났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이상하다, 객관적으로 육아는 훨씬 편해졌는데. 아이는 이전에 비할수도 없이 다루기 수월해졌는데. 알았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였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정신건강 지표로 꼽았다. 육아란 그 두가지를 다 충족시킨다. 더없이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더없이 뜻깊은 일.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육아가 제일 힘들다고 말할까? 일과 사랑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두가지가 분리되지 않고 같이 가기 때문에 그 둘이 충돌하고 내적갈등을 일으키고 나아가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결국 좌절감에 휩쌓이고 만다. 정신과의사 정우열 선생님의 <엄마니까 느끼는 감정>에서는 때로 이 두가지를 정확하게 구분해야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너무 힘들 때는 잠시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사랑’을 멈추더라도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계속할 수 있으며, 오히려 잠시 사랑하지 않아야 더 빨리 사랑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다. 내 아이를 잠시 사랑하지 않는, 미운 마음까지도.
그때서야 깨달았다. 감정을 얼마나 억압하며 살아왔는지. 감정을 조절한다는 명목 하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억누르고 외면했던가. 어릴 적부터 민감했던 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에 기특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로 통하곤 한다. 그런 얘기를 자주 듣다 보니 어느새 그게 내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게 성숙한 사람의 자세라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했다.
민감한 엄마는 책임감이 강하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하고, 회사 일에 지친 남편 마음도 돌아봐야 한다. 정작 나 자신을 챙기는 것을 잊는다. 타고난 공감능력으로 가족들의 지친 마음을 일어주고 돌보지만, 정작 내 마음을 읽는 법은 잊는다.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에 남아 평생 사람을 괴롭힌다고 한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많은 감정이 실은 상당 부분 어릴적 경험에서 비롯된다지. 풀리지 않은 감정의 실타래가 마음속 블랙홀이 되어 힘든 순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고 한다. 억압의 달인이었던 내 가슴 속에는 셀수없이 많은 블랙홀이 존재했을 테다.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내 감정을 바라봐야 한다. 내 마음을 힘껏 챙겨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잊지 않는 것, 내게 육아란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