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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Nov 15. 2020

엄마, 우울의 바다에 빠지다

내 힘으로 헤어나올 수 없는





딱히 우울하지는 않았다. 다만 감정조절이 어렵고, 심히 무기력했다. 걸핏하면 아이에게 화가 났다. 왜 이럴까? 그토록 모성애가 지극했던 나인데, 여전히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내내 화를 겨우 참는 지경까지 왔다. 단순히 육아가 장기화되면서 본래 성질이 나오는 걸까? 아이가 자라면서 덜 귀여워져서 그런가? 코로나 상황이라 더 힘든 걸까? 알고보니 이 아이와 나는 성격이 안 맞는 건 아니겠지.


1년 이상 지속된 이러한 고민들이, 우울 증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 우울증에 걸렸구나!’를 처음 깨닫고 어찌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게 아니었구나, 나는 병에 걸린 거구나. 안도감에 눈물이 났다.


엄밀히 말하면 육아 자체로 인한 우울증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를 키운다는 정신없는 상황에 처해있기에 일상을 관리할 여력이 없었다. 원래의 나라면 잘 다독였을 스트레스, 잘 처리했을 갈등, 잘 감당했을 문제들인데, 엄마인 나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저 덮어놓고, 회피하고, 대충 참고. 그러는동안 몸도 마음도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일반적인 우울감은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이 가능한 데 반해, 우울증은 ‘우울의 바다’에 빠져 자기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처음에는 물밖으로 간신히 얼굴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증상이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정신은커녕 몸까지 가누기 힘들만큼 심한 우울의 바다에 빠졌다. 나는 내 멘탈에 신뢰가 있었는데.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어도 남들보다 잘 이겨냈는데. 그런데 이 기간의 스트레스는 나의 탄성 역치를 넘어갔나 보다. 변해가는 내 모습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고 싶던 거,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우울증이었다. 점점 감정조절이 안 되던 거, 단순히 예민한 게 아니라 우울증이었다. 단기간에 너무 살이 쪘던 거, 단순히 아줌마가 된 게 아니라 우울증이었다. 집중이 안 되고 건망증이 심해졌던 거, 단순히 산만한 게 아니라 우울증이었다. 나는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상태가 이러한데도 정신과의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정신과 약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무기력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아갈 에너지조차 없었다. 기운없이 누워 손만 까딱이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우울증에 관한 자료를 샅샅히 뒤지는 것뿐이었다.


“우울증이 왔다는 것은 지금까지 하던 방법으로는 더 이상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때 도움을 받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이 현재까지 해오던 방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정신과의사 전홍진 선님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아, 더는 노력으로 안 되는 상태구나. 그동안 나를 지켜온 방법들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지경이구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구나.


“우울증에 걸린 엄마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우울증에 방치된 엄마는 아이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문제가 된다.”


정신과의사 정우열 선생님의 <엄마니까 느끼는 감정>에 나오는 설명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나와 아이를 방치하고 있었구나. 길로 바로 정신과의 도움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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