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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Nov 23. 2020

육아우울증, 약을 먹을까 말까





다른 어떤 병원보다 가기 힘든 곳, 정신과다. 다른 어떤 약보다 내키지 않는 약, 정신과약이다. 나 역시 그랬다. 약의 도움 없이 극복해보고자 반년 정도 시간을 끌었다. 까짓거, 내가 바보 천치도 아니고, 내 기분 하나 조절 못하겠어?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한번 부정적 하강나선에 들어선 호르몬 시스템은 의지만으로 회복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짐만으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건 우울증이 아닌 것을. ‘운동도 하고, 좋은 생각만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 지금은 저 말을 가장 싫어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건넬 수 있는 최악의 조언이었다.


꾸준히 운동하라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는데 운동은 무슨 운동.

잠을 잘 자야 한다고?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뭐가 문제겠나.

푹 쉬라고? 애는 누가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장난하나.


약의 도움 없이 회복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옆에서 아주 건강한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상상해 보자. 만약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남편이 늘 곁에서 사랑으로 이끌어주며 매일 같이 산책해 주고, 모든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매일 웃음을 준다면, 약 없이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었으면 애초에 육아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겠지. 엄마가 된 내 곁에는 바쁘고 지친 남편 대신 아이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자식이지만, 아이는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지도, 스트레스를 없애 주지도 못한다. 나도 돌봄이 필요한 상태인데, 이를 악물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러면서 육아우울증은 더욱 깊어진다.


엄마로서 사는 우리에게는 우울감을 극복할 자원이 너무 없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해소하며 살아왔던, 그럴 수 있었던 이전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 게다가 상황이 얼마나 열악해졌는가. 거울만 봐도 기분 좋던 날씬하고 예쁜 아가씨는 온데간데 없고, 함께 깔깔거리며 행복 바이러스를 나누던 친구들도 다 멀어지고, 사회에서 인정받던 성취감과 당당함도 사라지고, 주말에 하루 푹 쉬는 것도 사치니까 말이다. 스트레스가 쌓일 일은 많은데, 해소할 시간이 없다. 엄마가 된 우리에겐, 어떠한 자유도 없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예전과 똑같이 노력해서는 그때처럼 행복할 수 없다.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잘 살아내려면, 이전보다 열배 스무배로 애써야 한다. 기를 쓰고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우울증 환자는 노력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내가 두발로 일어서야 하지만, 그 최소한의 힘조차 없다면 우울증약이 부목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평생 약에 의존하라는 것이 아니다. 약의 도움을 받아 움직일 에너지가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필사적으로 일상을 관리해야 한다.


우울증은 뇌의 호르몬 시스템이 고장난 것이다. 우울의 바다에 빠진 상태라면 용기 내어 정신과를 찾아가보자.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환자에게 우울증약은 구원의 튜브와도 같다. 튜브를 잡고 헤엄치면 훨씬 편하고 빠르게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만약 아직 물밖으로 머리가 나와 있는 상태라면 그나마 스스로 노력해 볼 여지가 있지만, 나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면 너무 오래 끌지 말자. 어쩌면 당신은 튜브를 잡기 위해 손을 뻗는 일조차 버거운 상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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