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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Mar 31. 2021

내가 내 부모를 원망했듯




난 포도를 싫어하지만 아이와 남편을 위해 포도를 자주 산다.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당연한 일상.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 이 진부한 문장이 이제서야 내게 스며든다.
 
 오늘은 왠지 찌개를 끓이며 엄마 생각이 났다. 유난히 섬세한 나의 기질을 이해 못했다는, 나와 감수성의 크기가 맞지 않았다는, 나의 환상 속 완벽한 엄마상과 다르단 이유로, 그런 거창한 이유들로 엄마에게 늘 서운했었다. 이젠 안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항상 날 사랑했고 늘 내게 최선을 다했었다는 거. 그저 나와 방식이 달랐을 뿐.


 워킹맘으로서 이삼십년을 매일 밥을 차려주고 방을 치워주고 성질머리를 받아주고 철부지 딸의 잘난척과 뾰족한 말들을 받아내고, 아무 공 없는 그 많은 역할을 해내며 동시에 본인의 삶까지 살아내야 했던 거. 하루하루 마음을 지키느라 안간힘을 썼을 텐데, 늘 부족하다는 듯한 자식들의 눈빛에 얼마나 많은 설움을 삼켜야 했을까. 그 외롭고 억울하고 막막한 감정들을 혼자서 감당하기 얼마나 어려웠을까. 엄마도 나처럼 어쩌다보니 엄마가 됐을 텐데. 하루하루 살다보니 세월이 흘렀을 텐데. 자식으로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일상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그 위대한 역할을 얼마나 잘 버텨냈는지 새삼 깨닫고는 존경스런 마음이 차오른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면 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던데, 나는 오히려 반대였었다. 아기라는 존재는 이토록 견딜수없이 사랑스러운데, 왜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만큼 엄마는 날 격하게 사랑해주지 않았지? 왜 나처럼 수천번 뽀뽀하고 수만번 안아주지 않았어? 왜 난 엄마에게 사랑한단 말을 들은 기억이 없지? 어쩜 그럴 수 있어!


한해한해 지날수록 깨닫는다. 난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오랜 인고의 세월을, 그 격동의 관계를, 그 깊디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나는 엄마가 된 지 고작해야 몇 년이다. 그것도 평생의 효도를 다한다는 어린시절을 거치고 있다. 그런데도 벌써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성장기를 겪었다며 난리부르스를 친다. 유아기만 해도 영아기와 다르다. 더 묵직해진 책임감, 조금씩 어려워지는 아이와의 관계, 추스리기 힘든 다양한 감정들, 그리고 슬슬 시작되는 현실적인 고민들. 벌써 이런데, 질풍의 십대는 어떨 것이며 노도의 이십대는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때의 난 지금의 환상만큼 아이와 사이가 좋은 끝내주게 다정하고도 쿨한 엄마가 아닐 것이다. 십년 뒤의 나는, 우리 엄마가 그랬던 거처럼 묵묵히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봐줄 수 있을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외침을 누르며 아이를 믿어줄 수 있을까. 숱한 감정을 삭이며 '밥 먹어'란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예민했던 나, 아마도 쉬운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을 채워주기 어려운, 복잡하고 어딘가 어려운 아이었을 것이다. 자기 자식이지만 편하지 않았을 거 같다.


‘나도 엄마가 되어 보니-‘라는 알량한 나의 말이, 엄마로 산 세월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은 우리엄마에겐 얼마나 우스웠을지. 여전히 철없는 딸의 잘난척에, 엄마는 그저 멋쩍은 미소로 많은 말을 삼켰겠지.


나는 요즘에서야 친정엄마와 마음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엄마로서 경험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며 가능해졌다. 가끔 일부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묻곤 한다. ‘엄마는 이럴 때 어땠어? 어떻게 했어?’라고 말하며 엄마의 입을 연다. 엄마도 못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나의 못나고 복잡한 마음이 엄마에게 닿기를. 시간이 흘러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남은 세월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그때까지 우리 엄마 건강히 내 곁에 있기를.


 배은망덕한 나처럼 훗날 언젠가 내 아들도 분명 내게 원망을 느낄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만큼
 완벽한 엄마가 될 순 없으니 말이다. 아이와 나는 다르고 내가 아무리 애써도 분명 핀트가 엇나가는 부분이 있을 것. 그때 그 먹먹한 마음을, 담담히 이겨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마음 준비를 해야겠다. 운이 좋으면 더 시간이 지나 다시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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