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Mar 31. 2021

요즘 엄마들




우리는 아이들의 감정을 수용해 주라고 배웠다. 훈육할 때도 행동은 제한하되 감정은 수용해 줘야 한다는 거, 아마 엄마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감정에는 옳고그름이 없고, 모든 감정은 건강하게 수용되고 소화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건강한 자아상이 자랄 수 있다고 말이다. 억압된 감정이 쌓이면 가슴속에 평생 남아 주인을 괴롭힌다지. 심리학과 뇌과학이 발달한 덕에 우리는 감사하게도 바르고 검증된 방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이렇게 존중받으며 자존감 높게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게 될지 기대가 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편안하게 자기답게 살 수 있겠지. 그런데 엄마들은 어쩐담?


우리는 사랑하는 자식의 마음을 돌보고 기질대로 인정하며 키울 수 있는 축복 받은 첫 세대이자, 한편으로는 나는 받아보지 못한 그것을 죽어라 배워서 행해야 하는, 그로 인해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저주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요즘 엄마들이 너무 힘든 이유 중 하나겠지. 육아서에서 강조하는 내용과 주변 어른들의 가이드가 너무 달라서 불안하고, 머리와 마음이 따로놀아 갈팡질팡하다 죄책감이 든다. 배운대로 해놓고도 이것도 어떤 영향을 미칠까 확신이 없어 걱정스럽다. 한마디로 육아에 자신감이 없다. 육아효능감이 떨어지고, 자존감마저 낮아지고, 우울증은 이제 엄마들의 친구다.


우리는 예민한 걸 잘못이라 여기며 살았는데, 이제는 아이의 예민함은 긍정적으로 봐 줘야 하는 시대. 우리는 불안한 걸 말도 못하고 자랐는데, 이제는 아이의 불안을 들어주고 코칭까지 해 줘야 하는 시대. 우리는 산만해서 혼나고 살았는데, 이제는 아이의 산만함은 개성으로 봐 줘야 하는 시대. 우리는 찍소리 못하고 부모님 말에 순종해야 착한 아이었는데, 이제는 아이의 자기주장을 격려해 줘야 하는 시대.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개척자다. 이게 쉬울 수가 있나.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감정을 읽어 주라고 배운다. ‘어떤 기분이었어?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어?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맙소사, 이건 심리상담 선생님이 내게 해 주는 코칭과 다를 바가 없다. 전국의 엄마들이 상담학을 공부해야 할 판이다. 위로를 받아야 할 엄마들이 이를 악 물고 아이들의 상담 선생님이 되어 주고 있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오로지 모성애 하나로 버틴다.


엄마들은 육아의 시작부터 복잡한 마음을 안고 출발선에 선다. 어려서부터 ‘이건 잘못된 마음이야’라며 차곡차곡 억압해서 숨겨놓은 감정들을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나 꽉꽉 눌러놨는지 스스로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소용돌이. 해소하지 못한 나의 감정들 위에 내가 삼킨 아이의 감정들이 하나둘 얹어진다. 쌓아 놓은 게 많은 엄마일수록 금방 포화상태가 될 수밖에. 엄마는 더 이상 아이의 감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고, 참다 참다 우울해지거나 버럭 화를 내는 일상이 반복된다. 엄마들의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고 성격이 더러울까,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걸까, 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큰일이다.’


흔히들 육아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기 힘든 영유아기를 예로 들지만, 내 생각에 육아의 팔할은 ‘아이의 감정 받아주기’가 아닐까 싶다. 배고프다고 졸리다고 응애응애 우는 갓난아이부터 시작되는 감정 받아주기는 떼쓰기와 말대꾸를 지나 학업 뒷바라지까지 쭉 이어진다. 아이의 감정만 내 몫인가? 회사 일에 지친 남편, 나이 들어가는 외로운 어른들의 감정 출구도 되어 줘야 한다. 엄마는 한 가정의 정서적 가장이 된다. 정작 내 감정은 느낄 새도 없이, 내 마음은 돌볼 새도 없이, 한해한해 바람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비워내야 한다. 꽉꽉 차서 터져버리기 전에, 엄마들은 끊임없이 틈만 나면 기를 쓰고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표현이 있다. 음식이 소화될 틈도 없이 먹고 또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감정도 소화하고 흘려보내야만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 나도 이걸 못해서 힘들었다. 누르고 눌러 압축할 줄만 알았지, 비워내는 법을 몰랐다. 결국 조금의 여유도 남지 않을 만큼 마음이 꽉 차 버렸다 아이의 징징 소리에 가슴이 터질 거 같아서, 그래서 핑퐁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아이는 더 불어난 부정 덩어리를 또다시 던지고. 오갈데 없는 그 불쾌한 기운은 집안을 둥둥 떠나니며 분위기를 잠식했다.


이제부턴 내가 만들어간다.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아껴주고 사랑할테다. 내가 받고싶은 사랑대로, 나부터 나를 위로하고 보듬고 챙겨보자. 그리고 비워낸다, 말로 글로 기도로. 누구보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 나. 우린 모두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 내 아이에게 웃어 주고 싶다는, 세상 무엇보다 강력한 동력이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내 부모를 원망했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