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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18. 2021

축 출산, 난산했어요!


- 출산일 아침


굴욕으로 유명한 관장이고 뭐고

워낙 초조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유도제를 맞기 시작했다.

바로 아파질까봐 겁먹었는데

오후는 돼야 진통 시작될 거라고 하시네.

내일로 넘어갈수도 있다고 미리 알려주신다.

아이고야.


남편에게 "둘째는 없다"고 선전포고해 보았다.

뭘 했다고 벌써부터.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어억~ 갑자기 배가 스르르 아프다.

심한건 아니지만 급 공포가 밀려온다.

"배불뚝이 마지막 날" 따위의 감성은

새카맣게 잊혀진 지 오래.



- 출산일 낮


내진 이후 갑자기

초강력 진진통이 1분 간격으로 몰려왔다.

"짐승소리"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더라.

속에서 누군가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자궁을 걸레 짜듯 있는힘껏 비틀어짜는 느낌?

섬뜩한 묘사지만 딱 이 느낌이었다.


유도제 때문에 휴지기가 거의 없이

휘몰아치고 또 휘몰아치고.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진통이 도대체 얼마나 아픈지 궁금했는데

호기심 이백프로 충족.

고작 1분뿐인 휴지기에 잠깐씩 정신을 잃는다.


무통 시술은 척추에 관을 꼽아 주사를 놓는다.

이와중에도 쉴새없이 진통이 몰려오므로

자세 취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등에 주사 꼽을 때도 아프다.

하지만 진통에 비할 바 없지!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런데 맙소사, 주사액이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 뻑뻑한 느낌? 잘 안 들어간다.

주사액이 주입될 때마다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마비가 온다.

진통보다 더 아프다.

뭔가 잘못된거 같다.

다리가 터질 거 같다.

이성을 잃고 나도 모르게 마구 소리를 지른다.


마취쌤이 주입을 멈춘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한다.

무통액 들어갈 공간이 부족한 경우란다.

이럴수가.

할 수 없이 주입을 멈춘다

헉! 뭐지?

무통이 안 듣는 저주받은 체질이 있다더니

그게 나였나 보다. 미치겠네 ㅠㅠ



- 출산일 저녁


이놈의 자궁문이 열리질 않네.

그지같은 몸뚱아리!!


게다가 아기도 아래로 안 내려오고

위에 아주 딱 붙어 있다네?

‘아기가 나오기 싫은가 봐요 호호호’

라는 말에 지금 제가 웃어야 하나요?


미치겠다!

진짜 미치겠다!


조금이라도 진행이 됐다면 참을 수 있었을까?

남편 말로는 내가 이때부터

이성의 끈을 놓았다고 한다.

땀 범벅 눈물 범벅.


수술하겠다고 말해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며 나만큼이나 맘고생한 남편은

결코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의료진 역시 진행도 늦고 아기도 위에 있고

심지어 골반도 작고 무통도 안 드니

내일까지 고생하다 결국 수술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냥 수술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설명.


말리는 사람도 없고

난 이미 이성을 잃었고-


결국 반은 기절한 채로 수술대에 오른다.

아아아 이래도 되는 건가.

자연분만 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갈팡질팡 하는 사이

마취제가 들어가고, 난 잠이 들고,

일어나 보니 회복실.


순식간이었다.



- 출산일 밤


"여기가 어디에요?"

"회복실이에요. 아가 보여드릴까요?"

"네? 아가요? 아..."


비몽사몽간에 머리가 멍하다가

퍼뜩! 정신이 차려진다.


"네! 보여주세요!!!"


내 눈 앞에 낯선 아가가 나타난다



안녕

너구나

안녕

안녕

세상에...


눈물이 막 쏟아진다.



"한번만 안아보게 해주세요"

"산모님 몸이 아프실텐데..."

"괜찮아요, 제발요"


마취에서 덜 깨서 움직일 수도 없는

내 옆으로 아가가 눕는다.

눈물이 주체가 안 돼서 급기야 엉엉 울어 버렸다.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


뭐가 그리 미안한지.

아이를 만난 기쁨보다 미안함이 더 컸다.

수술하는 바람에

이 작은 아기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침대에 실려 회복실을 나왔는데

남편 얼굴 보고, 친정엄마 얼굴 보니,

이건 뭐 완전 끄억끄억 오열 상태.

난 남들도 아기 보면 다 울겠거니 했는데

간호사쌤들이 한참 웃으시는 거 보니 아닌갑다.



울탱이 터지는 솔직한 출산후기지만

어쨌든 그 끝엔 크나큰 기쁨이 있다는 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있다는 거-


그렇게 만난 나의 아가.

매순간이 벅차고 행복하다.


생후 며칠만에

벌써 너무 많이 큰 거 같다.

수유실에서 생후1일 아가를 보았는데

벌써 샘이 난다.

역시 난 미쳤어.



어이 쪼꼬미!

앞으로 징글나게 사랑받을 준비하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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