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
때는 바야흐로 중학생 때 사생대회 날 화창한 가을, 올림픽공원에서 그림 그리기와 글 짓기를 했었다.
그림에는 영 관심이 없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대충 스케치하고
수채화 물감으로 슥슥 색칠하고 흙을 그린곳에 진짜 흙을 뿌리고 빠르게 제출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김밥과 사이다를 먹으며 신나게 웃고 떠들다 각자 종이를 들고 글을 쓰러 자리를 잡았다.
괜히 서로 한 발 멀찌감치 떨어져서 꽤나 진지한 작업이었다. 아니면 김밥을 먹고 졸렸거나.
나는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다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잔잔한 호수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 같다.'
어렴풋이 이런 식으로 첫 문장을 썼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호수를 바라보던 주인공이 판타지 장르로 바뀌어 물속에 들어가서 어떤 친구를 만나고 놀다 갑자기 오염된 물을 느끼며 괴로워하다 꿈에서 깨어나는 어쩌다 보니 환경보호 교훈을 주는 글로 마무리했다.
며칠 뒤 글짓기 장려상으로 뽑혀 국어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앞에서 그 글을 읽어보라고 시키셨다.
주인공이 괴로워하는 대목을 아이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야 했다.
으으으 연기를 하며.
아이들은 웃었고 선생님의 칭찬으로 부끄러움과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것이 나의 정식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그다음은 대학 수업 '명시를 찾아서'라는 교양 과목을 들었을 때다. 첫 수업날 교수님은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곧바로 창문 쪽으로 향하시더니 담배를 꺼내 피우시며 뭔가 우수에 찬 시인의 말투로 "날 감동시키는 글을 쓰면 수업에 빠져도 A+다"라고 하셨다.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나는 실제로 수업에 몇 번 빠지고 놀고 시험시간에는 열심히 써 내려갔다. 그리고 A+을 받았다. 교수님을 감동시켰다니 어깨가 으쓱했다.
그 시절 싸이월드가 유행인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일기나 감성에 젖은 글을 쓰곤 했다. 그러다 어느새 어른이 된 나는 살기에 바빴고 이십 대까지 갖고 있던 감성은 메말라갔다.
그리고 지금 다시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를 십 분만 둘러봐도 감탄할 만한 글이 많다. 내 글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 십 주년을 맞아 낸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공고를 보고 어떻게 왜 내가 글을 쓸 생각을 시작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만약 중학생 때 선생님께서 그림에 흙을 뿌릴 생각을 했다니 대단해하면서 칭찬하셨다면 지금 나는 어디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생 때 교수님께서 수업에도 빠지고 글도 엉망이야 하면서 낙제점수를 주셨다면 나에게는 글 쓰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거나 두려웠을 것이다. 칭찬을 받은 기억이 나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읽을까를 생각하면 글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고 웃음을 주고 싶고 함께 공감하고 싶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특별하고 황당하고 신기하고 때론 슬프고 재밌는 나만의 이야기가 생긴다. 그 이야기를 공유하고 기억하고 싶기에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스승님들처럼 날 작가라고 불러주며 칭찬해 주는 브런치스토리에는 편안하게 나의 이야기를 계속 쓸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