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Jan 13. 2022

두고 봐라, 내가 집에 가나

짤릴 뻔한 아르바이트 버티는 법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

뭐가됐든 방송은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대학교 방송국을 다녔지만

사실 당시 방송작가가 (예능, 교양 작가는) 유망한 직업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순수문학에 비해 방송글을

세속적이라고 낮춰보는 일이 많았고.

외부로 알려진 정보도 적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작가가 하는 구체적인 업무를 알기 어려웠다.

잡지사 기자언니들 본 것 처럼 보면 좋을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무작정 방송 관련 글을 뒤지다가 '프리뷰 구합니다' 라는 글을 보게 됐다.

여의도에 있는,  A프로덕션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여의도' 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상당했다.

지금은 상암동으로 이사한.증권가와 방송가가 모두 모여 유독 빛나던 도시.

나는 그 '여의도' 에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을 구하기 위해

프리뷰어 구인글을 올린 프로덕션을 찾아갔다.

맞이한 사람은 부산 사투리를 억세게 쓰는

보이시한 스타일의 해외 다큐팀 여자조연출이었다.

"프리뷰 해 본적 있어요?"


아. 없는데요, 한 번 알려주시면 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 언니와는 나중에 아주 친해졌다.

그러나 첫 날 언니 얼굴에 써 있는 말은 분명.

'급해 죽겠는데  어디서 이딴 게 왔어 짜증나' 였다.


" 뭐... 일단 왔으니까, 해 보고.

안 되면 빨리 말해요. 계속 잡고 있지 말고.

우리도 다른 사람 바로 구하는 게 나으니까.

지금 한 번 딱 말할테니까 제대로 들어요.

해외 촬영분이고 분량 많아서 우리가 다시 볼 시간 없으니까

최대한 그림을 글로 옮긴다 생각하고

자세히 다 써야 돼요, 알았죠."


자존심 상해. 오자마자 빨리 그만 두는게 낫다고?

기필코 당신 마음에 드는 프리뷰를 내밀어 주지.

눈으로 본 거 손으로 옮기는 걸 못 할 까봐..?

하고 기세 등등하게 수첩을 꺼냈는데.

그 날 처음으로 '방송용어 랩'을 들었다.

"이게 줌인.이거 트래킹. 틸다운. 컷인컷아웃, 페이드인아웃...됐죠?"


저기. 처음 듣는 거라고 했잖아요.....

멍하고 선 나에게 그녀는 마지막 쐐길 박았다.

"편집하러 가니까. 테이프 하나 끝내고 전화해요. "


아, 어쩌지.. 진짜 그냥 갈까. 하는데

한 여자가 내 옆으로 오더니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바로 앉는 남자.

처음으로 본 작가와 피디의 회의장면이었다.


그치. 나 저거 보러 왔지. 근데 오자마자 갈 수는 없잖아.

오늘은 어떻게든 있어보자 싶어서

간신히 들은 걸 떠올려 주섬주섬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 프리뷰.

 

고백한다. 사실 쉽게 봤다..

글도 좀 써, 대학교 방송국에서 피디도 했어..

타자도 제법 치니 금방 할 수 있겠지 뭐.

그런데.... 이게 1분 옮기는 데 20분 걸리는 일일 줄이야.

한 시간 쯤 지나 조연출 언니가 찾아왔다.

"아직 7분 밖에 못 했어요? 그냥 여기까지 할래요?"


오기가 났다. 아뇨. 이거 다 해볼게요.

그리고 생각했다.

두고봐라. 내가 집에 가나.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프리뷰는 엉망진창이었고

헤매고 있을 때 마다 와서

"이거 트래킹이라 했자나요! 이건 안 써도 되고!!"

하면서 사투리로 혼내는 언니가 엄청 무서웠다는 것.

그렇게 아침10시부터 밤 9시 까지

1시간 짜리 테이프 꼴랑 두 개를 끝내고

녹초가 되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언니는 날 보고 한숨을 쉬었지만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뻔뻔하게도 나는 일찍 출근했다.

그리고 혼쭐나며 적은 종이를 외우기 시작했다..

욕 먹어도 할 수 없다, 오늘 목표는 어제의 두 배야.


두 번째 날 언니는 책상에 와서 초콜렛과 소시지를 놓고 갔고

나는 네 개의 테이프를 끝냈다.

그렇게 4일이 지나자 언니가 지독한 년이라면서 웃었고

혼자 점심으로 삼각김밥을 먹었던 나는

일주일 지났을 때 피디 작가들과 스파게띠아에 같이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팀에서 찍어온 마흔 개의 테이프 프리뷰를 다 끝냈다.

수시로 욕은 좀 먹었지만 그림을 볼 줄 알게 되었고

방송 만드는 프로덕션의 분위기를 익힌 게 소득이었다.

작가는 와서 노트북에 앉아 대본을 썼고

섭외 전화를 했고, 피디와 회의를 했다.

피디는 카메라와 테이프를 챙겨 들고 나갔고

돌아와선 편집실 좀비가 되었다.  

작가를 하게되면, 피디를 하게되면 저렇겠다. 를

어렴풋이 알고 난 뒤에 나는

프리뷰를 해서 번 돈으로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했다.


처음 만난 조연출,  곧 다큐 피디가 된 Y언니는

프로덕션을 옮긴 뒤에도 나에게 연락을 했다.

" 나 다른 프로덕션 왔는데 너 와서 프리뷰 해줄 수 있어?.

   내 거 그냥 니가 다 해. 내 스타일 알잖아"


언니는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당시 귀했던 프리뷰 데크 한대를 빌려줬다.

돈을 번 것 보다 기쁜 건 인정받았다는 기분이었고.

그것 만으로도 언니는 내가 방송을 하기 위해 직접 찾은

은인으로 충분했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어쩌면

그 때 프리뷰를 무사히 끝낼 수 있어서가 아닐까.

부족하고 답답해도 자르지 않은 언니가

계속 믿어주었던 덕분에 나는

막내작가를 하면서 부족한 월급을 프리뷰 알바로 채울 수 있었고

그 시간을 버티면서 여의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쌀쌀맞은 상황에 힘겨워도

쉽게 도망치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던

언니의 소식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