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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Jan 13. 2022

다짜고짜 선배님

무모했던 방송작가 취업기


프리뷰로 번 60만원을 들고 대학교 4학년의 나는

4월, 작가 교육원에 등록했다.

당시 비드라마반(구성작가과정)은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과정이었는데

9월 정도 되었을 때 취업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이제와 말하지만 나는 신기하게도 조급함이 없었.

그저 졸업논문과 시험을 마음에 들게 마무리 해 놓 다음

취업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있어서

중간에 찾아오는 기회들은 미련없이 패스했다.

그렇게 졸업논문과 시험을 통과하고 작가교육원을 수료하자 10월 말.

이제 취업을 좀 해볼까 하는데...

세상에.. 자리가 하나도 없네...?


인정하자. 오만의 결과였다. 

방송작가는 공채가 아니었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경력 0인 가의 취업은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지금처럼 채널이 많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날린 기회은 원할 때다 생길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다.

갈 수 있는 곳은 정말 하나도 없었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무작정 기다릴 도 없었다.


대학교 4학년의 10월 말.

교실마다 수업을 듣는 사람이 줄어들고 남은 사람들은 패배감을 느낀다.

아직 학생인데?라는 뻔뻔함은 남아있지만 불안함이 자라나던 찰나.

학교 홈페이지 메인에서 '이달의 선배님' 로 올라온 얼굴을 보았다.

학보사에서 인터뷰한 같은 과 동문 선배였고,

당시 KBS에서 유명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가님이었다.

그래, 이거라도 잡자. 나는  학보사로 전화를 걸었다.

, ○○○ 선배님 연락처를 좀 알고 싶은데요.


학보사 담당자는 선배님이 원치 않으실 수 있으니

의견을 여쭤보고 답을 주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흔쾌히 알려주라셨다며 번호를 주었고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처음 본 선배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보에서 선배님 기사를 보고 연락드렸어요.

작가가 되고 싶어서 교육원을 나왔는데

교육원에서는 취업처 연결이 안 된대서요.

선배님께 구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건 아닙니다

다른 방법은 어떤 게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선배님은 막 웃으셨다. 너 되게 재밌는 애구나 라면서.

주변에서 작가를 구하는 곳이 있으면 연락주시겠다고 하셨다.

감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기대는 없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그날 선배님은 후배와 미용실에 계셨는데

옆 자리에 있던 분이 맹랑한 애

아는 프로덕션에서 막내작가를 구한다는데

거기 보내자고 했다는 거였다.

회사가 좀 작아도 갈래? 피디는 좋은 사람인데.

그럼요. 감사합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졸업 하기 전,

대학교 4학년 겨울에 작가가 되었다.

교양 PD 출신 대표님과 상주하는 피디 한 명.

나까지 세 명이 정직원인 아담한 첫 회사에서.


사람들은  드라마틱하다고들 한다.

언니와의 인연도 신기하지만

지금 와서 정말 신기한 것은  당시의 나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길이 막혀 조급했지만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 없었지만 기죽지도 않았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중파 방송국에 취업한 친구들 비교해

작은 직장이 불만이라거나 부끄럽지도 않았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기회가 진심으로 감사했다.

다짜고짜 연락한 선배님이 잊지 않고 떠올려 준 것게 어디냐면서.


첫 월급이 없이 적어서 자괴감이 몰려와도

주는 입장을 생각해 보면 내가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많은 돈을 주면서 나를 쓰고 싶은 날이 오게 하려면

열심히 일을 배우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과거의 나는 어떻게 그랬을까.


작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작가가 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지금

입장을 바꿔보면 결론은 심플하다.

그 때는 열심히 일을 배워야 했고

지금은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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